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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술램프 Jan 25. 2024

주체적인 인간으로 산다는 것

노트북이 말썽을 부렸다. 얼마 전부터 한글 파일의 반응 속도가 느려졌다. 키보드 자판을 치는 속도를 컴퓨터가 따라오지 못했다. 한글 프로그램의 문젠가 싶어 프로그램을 지우고 다시 깔았다. 잠깐 정상적으로 작동하나 싶더니 다시 버벅대기 시작했다. 그래도 몇 번 전원을 껐 다 켜면 어찌어찌 쓸만해서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주 들어서는 작업하던 한글 파일이 갑자기 종료되고 저장한 파일도 어딘가로 사라져버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외장하드를 인식하지 못해 마우스를 사용할 수가 없었다. 원격서비스를 받아보니 전원을 꺼도 프로그램이 여전히 구동되는 문제가 발생해서 일어난 현상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무려 49일을 노트북이 꺼지지 않아 기계가 쉬지 못해 벌어진 일이라고 한다.



모든 작업물이 노트북에 들어있는데 먹통이 되니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일주일을 노트북 수리를 위해 전화 상담을 하고 서비스 센터를 찾아다니느라 시간을 허비했다. 



컴퓨터를 사용하면서부터 노트에 기록하지 않게 됐다. 저장된 파일만 있으면 무겁게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고 언제든지 수정과 첨삭이 가능하다는 이점은 점점 손글씨를 멀리하게 만들었다. 문명의 이기에 모든 것을 의존하다 보니 기계가 먹통이 되면 일상이 멈춰버리게 되는 것이다. 



노트북만이 아니라 네비게이션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어딘가 새로운 곳에 가려면 머릿속으로 가는 경로를 생각해보고 스스로 판단했는데 이제는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데로 아무 생각없이 운전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두 번째 차선으로 가라, 50m 앞에서 좌회전해라 따위의 네비게이션이 주문하는 대로 운전해서 목적지에 도착하면 지나온 길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네비게이션을 사용하면서부터 나는 길을 모르는 길치가 되어버린 것 같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우리 인간은 점점 인공지능의 기계로 전락하고 AI가 우리를 지배하는 날이 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운 생각이 든다. 과학자들이 두뇌 임플란트에 주목하여 노화된 뇌에 ‘신경 모방(neuromorphic) 칩’을 이식하는 방법을 동물 실험을 하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 방법은 기억 상실이나 치매 예방에 도움을 줄 수 있고 트라우마를 차단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일론 머스크도 인간의 지능을 증강시키기 위해 인간의 뇌에 칩을 이식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밝힌 바 있다. 또한, 그는 뇌신경 과학 스타트업 뉴럴링크를 통해 2022년부터 인간의 뇌에 마이크로 칩을 이식하는 실험을 진행한다고 발표기도 했다. 뇌에 칩을 이식한 인간에게 인간의 정체성이 있다고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일주일 만에 노트북을 포맷하고 윈도우를 다시 설치했다. 문제가 됐던 USB 포트도 교체했다. 새것이 된 노트북을 찾아 돌아오는 길에 기계가 없으면 일상의 리듬이 깨질 정도로 기계에 의존하는 삶을 주체적인 삶이라고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첨단의 기술을 능수능란하게 이용하는 것은 인간적인 측면에서의 성장이라고 볼 수는 없다. 주체적인 인간이란 자율성을 갖고 스스로를 발전시키기 위해 끝없이 자기를 계발하는 사람이다. 그것은 탄탄한 철학적 토대 위에서 자기 성찰을 꾸준히 할 때 가능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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