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차리는 삶에 대하여
2025년 한 해, 내 손에는 펜이 마를 날이 없었다. 작가로서 글을 쓰기 위한 펜이 아니라, 부동산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서명하기 위한 펜이었다.
다섯 번 모두 '매수'를 위한 서명이었다면 지금쯤 더 가벼운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월세에서 전세로, 다시 매도 두 번과 매수 한 번.
1년 동안 무려 다섯 번의 이사를 거치며 내 삶의 안녕은 이사 박스 안에 갇혀 떠돌았다.
다섯 번의 이사를 견디게 한 건 역설적으로 '희망 고문'이었다.
“이번에 이사하면 정말 예쁘게 살아야지."
SNS 속 모델하우스 같은 집들을 보며, 나도 정착만 하면 근사하게 꾸미고 살 거라 믿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삶을 통제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다섯 장의 계약서가 쌓이는 동안 내 취향과 에너지는 길 위에서 흩어졌고, 정작 '나'라는 사람은 낡은 짐짝처럼 구석으로 밀려나 있었다.
그리고 25년이 저무는 12월이 되어서야 마지막 이사를 마쳤다. 난장판인 거실 한복판, 무너질 것 같은 마음으로 이사 박스 하나를 끌어당겨 앉았다.
정갈한 식탁도, 근사한 조명도 없었다. 집은 분명 커졌는데 온통 짐들에 둘러싸여 있으니, 이번에도 '내 집 꾸미기'는 실패인가 싶어 눈앞이 캄캄했다. 한두 푼도 아닌데, 점점 집도 커지고 어쨌든 좋은 환경을 선택하고 있는데 불만족하는 이유가 뭘까.
그 순간, 번뜩 깨달음이 스쳤다.
"진짜 삶은 완벽한 공간이 갖춰졌을 때 시작되는 게 아니라, 지금 내가 가진 것 안에서 나를 대접하기로 결심하는 순간 시작된다."
집의 크기나 가구의 브랜드, 체리 몰딩이냐 무몰딩이냐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먼지 가득한 바닥을 닦고, 아직 풀지 못한 박스 틈에서 아끼는 컵 하나를 찾아내어 따뜻한 차 한 잔을 내리는 것. 그 행위 자체가 나의 편안함이자 내 집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갖고 싶었던 비싼 빈티지 식탁은 아니더라도,
내가 가진 것 안에서 최선을 다해 나를 위해 차려내면 그만이다.
내 집을 만드는데 또 한 달이라는 시간을 쏟고 나니 드디어 새해가 밝았다. 나는 이제 더 이상 흔들리지 않기로 했다. 노트북을 켜고, 주변을 정리하고 인생을 뒤집어엎느라 잠시 멈춰두었던 브런치를 다시 열었다.
나를 잘 차리고, 건강한 마음과 식탁을 차리고, 주변을 건강한 관계로 차려내는 일. ’ 차림식‘은 그렇게 다시 한번 새롭게 탄생할 것이다.
내가 가진 것 안에서 꾸미고, 정리하고, 나를 세우는 과정. 그 치열하고도 정갈한 기록을 이제 이곳에서 시작하려 한다.
- 짐 더미 사이에서 시작된 나의 첫 차림에,
당신을 초대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