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일상] 차림식 : 개명, 삶의 무게 중심을 옮기는 일
이틀 전 셀프 개명을 마쳤다.
개명 절차도 홀로 해냈고, 이름마저 스스로 지었다.
이름은 부모님이 자식에게 주는 첫 번째 선물이다.
내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 철학관에 가지 않았다.
보고만 있어도 예쁜 아이의 첫 선물은
내 손으로 골라주고 싶었다.
이름이 불릴 때마다 앞으로 걸어갈 삶의 방향을 잃지
않길 바랐다. 그래서 그 마음으로 직접 지었다.
부모님도 그러셨을 거라는 걸 알기에 개명 선언도
조심스러웠다. 그 선물을 제 손으로 지우겠다 하니
당연히 서운하시리라 생각했는데, 감사하게도 결정을
내 몫으로 인정해 주셨다.
네 인생은 네가 사는 것이니 원하면 그리해야 한다고.
힘을 얻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개명 절차를 밟았다.
이름은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정체성이자,
세상에 나를 증명하는 가장 쉬운 방식이었다.
죽기 전에 이름 석자를 남기고 간다는데
살면서 두 개의 이름을 가졌으니
여섯 자를 남기게 되겠지.
기존의 내 이름은 감수성 짙은 학창 시절에도
놀림받은 적 없는 지극히 평범한 이름이었다.
그래도 내가 살아온 자국이라고,
꾹 눌려 흉터처럼 남은 곳들을 발견할 때면
이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 안에 갇혀있는 듯 답답하기도 했다.
다 벗어던지고
새로 시작한다는 강한 의미부여가 필요했다.
그리고 개명 이후 살아갈 많은 날들에
지금보다 좋은 일이 가득하길 바랐다.
처음에는 철학관에서 몇몇 이름을 받았다.
사주와 오행을 바탕으로 지었기에
하나당 오만 원이나 하는 귀한 그 이름들이,
도무지 맘에 들지 않았다.
만족할 이름을 찾으려면 백만 원은 써야 했다.
고민했다. 돈을 몇 백을 쓴들, 타인이 지어준 이름이
이제와 의미가 있을까.
차라리 의미 있게 직접 짓자.
오직 나를 위해, 내가 선택한 글자들로만.
그렇게 새 이름을 다시 차렸다.
개명은 운을 바꾸는 일이라고 들 하지만,
나는 그보다
삶의 무게 중심을 옮기는 일이라 생각한다.
내가 맡은 역할들이 아닌
오직 ‘나’에게 중심을 두는 일.
그렇게 온전히 나를 위한 선택만을 모았을 때
소위 말하는 운의 흐름이 바뀌기 시작한다고 믿는다.
내가 속해있는 이곳에서
나를 증명하는 모든 방법이 바뀌었다.
서류도, 통장도, 여권도 바뀌었으니
이제 나만 움직이면 된다.
그것이 무엇이든
나를 위해 선택하고,
그곳이 어디든
나를 위해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