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했던 해방이 아닌, 예고 없는 전쟁의 시작
아이를 유치원에 보낸 뒤 돌아온 집은 정적으로 가득했다. 커피 한 잔을 내리고, 고요함 속에서 앞으로의 일들을 설계할 나만의 시간. 멈췄던 내 시간을 다시 흐르게 할 '본부 복귀'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2025년을 버티며 배운 게 있다. 파도는 반드시 온다는 것. 평온한 날들이 계속되면, 곧 엄청난 파도가 몰아친다는 것. 그토록 기다렸던 유치원의 문이 열림과 동시에, 내 인생의 다른 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하나둘 닫히기 시작했다.
여유를 즐기는 건 사치였다. 가장 먼저 덮친 파도는 가족의 투병이었다. 투병은 가족 모두를 힘들게 했지만, 수반되는 경제적 문제는 현실 앞에 나의 밑바닥을 모조리 드러냈다.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던 내면 안의 모든 문제들을 티끌하나 남지 않게 탈탈 털어야만 했다. 그래야만 살 수 있었다.
곧이어 가족의 상실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덮쳤다. 막연히 생각해 왔던 슬픔과는 전혀 달랐다. 현실은 애도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연초에 매도했던 부동산은 인생의 파도를 겪는 동안 미친 듯이 폭등했고, 갈 곳을 잃은 나는 다섯 번의 이사를 거듭하며 짐을 싸고 풀었다. 그리고 예정에 없던 부모님과의 합가까지 하게 되었다.
자유를 꿈꿨던 오전 시간은 무더운 여름 내내 사망 신고서, 한정 승인, 주소 이전 같은 차가운 서류 뭉치로 채워졌다. 본부 복귀를 고대했던 육아 파견 요원은 무너진 폐허 위에서 서류 봉투를 껴안고 멍하니 서 있는 패잔병이 되었다. 그래도 어쩌겠나. 해야 할 일은 해야 하고, 인생은 계속되는 것을.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나를 무너뜨리기로 작정하고 덤벼드는 때였다. 그때 패잔병인 나를 구원한 건 뜨거운 눈물이 나 위로가 아니었다. 차가운 현실의 질서였다.
슬픔은 감정의 영역이지만, 생존은 이성의 영역이다. 당장 저녁에 무엇을 먹을지, 짐 박스 어디에 무엇이 들었는지조차 결정할 기운이 없는 상태에서 나를 지켜준 건 막연한 희망이 아니었다. 아주 작은 것부터 다시 차려내는 ’지독하게 정갈한 시스템‘이었다.
아수라장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2025년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감정을 배제하고, 우선순위를 깎아내며 나만의 식(式)을 세웠다.
인생의 모든 문이 닫혔다고 생각했을 때 비로소 내 삶을 운영하는 진짜 시스템을 배우게 된다. 차림식은 단순한 육아 휴직 복귀기가 아니다. 어쩌면 ‘모든 것을 잃어본 자가 남기는 처절하고도 정교한 생존 보고서’ 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