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이 나를 집어삼킬 때

폭발하는 두려움을 가볍게 털어내는 법

by 차림식

아무렇지 않은 날들을 보내고 있다. 아침에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삶은 달걀과 감자를 먹고, 예정된 시간에 아이를 유치원 차에 태운다. 그리고 바로 매일 출근하는 카페로 향한다. 별일이 있는 날도 있지만, 별거 아니라 생각하며 넘기고 아무렇지 않은 날들을 보낸다. 그러다 ‘문득’ 숨을 들이켜야 하는 순간이 온다.


코로 깊게 들이마셔 본다. 보이지 않는 공기가 콧속으로 들어온다. 더 들이마시고 싶지만 4초 만에 숨이 가득 찬다. 마신 숨을 이제 길게 뱉어야 한다. 그런데 숨이 나오질 않는다. 더 마시는 법도 뱉는 법도 자연스럽게 되지 않는 그 순간, 갑자기 몰려오는 검은 두려움을 최근에 처음 느꼈다.


공황은 아니다. 다만 꽉 막힌 것처럼 가슴이 답답하고, 내 안의 무언가가 갈 곳을 잃고 헤매는 기분이다. 카페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했다. 왜 하필 평온한 오늘, 이 ‘문득’이라는 감각이 나를 집어삼키려 드는 걸까. 나는 원래 문제를 만나면 그것이 완전히 해소될 때까지 끝까지 파고드는 편이다. 가장 납득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을 때까지 마음의 빗장을 풀지 못하는 성격, 그 집요함이 때로는 숨 막히게 했다.


최근 나를 짓누르던 답답함의 실체는 부모님과의 합가였다.


내게는 엄마라는 역할로 충실해 온 지난 5년간 정성껏 쌓아 올린 ‘육아’라는 견고한 성벽이 있다. 성벽의 벽돌 하나하나에 내가 일관성을 가지고 쌓아온 인내가 있고,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는 우리의 신뢰가 가득하다. 그런데 그 성벽을 부모님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배려라는 명목으로 툭툭 건드리시는 거다. 손주를 위한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가 내 가치관과 다를 때, 성벽의 벽돌을 하나씩 빼내는 것만 같았다. 벽돌이 빠진 자리에 구멍이 숭숭 뚫리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마다 화가 났고, 그 화의 밑바닥에는 ‘내 성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지독한 불안이 깔려 있었다. 사실 그게 사랑이고, 나에 대한 미안함의 표현임을 안다. 손주만큼은 온전히 사랑으로만 돌보고 싶은 마음인 것을.


고요히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다. 벽돌 몇 장 빠진다고 성이 무너지지는 않는다. 성벽은 다시 쌓으면 그만이고, 깨진 벽돌은 나중에 다시 채워 넣으면 된다. 내가 이 성의 주인이라는 사실만 변하지 않는다면,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흔들려도 괜찮은 것이었다. 나의 불안은 육아만큼은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왔고, 그 강박이 결국 나를 숨 쉬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조금 ‘러프(Rough)’해지기로 한다. 아등바등 완벽한 성벽을 수호하려 애쓰는 대신, 구멍이 나면 나는 대로, 벽돌이 쪼개지면 쪼개지는 대로 내버려 두기로 한다. “이것쯤이야 나중에 다시 메우지 뭐”라고 가볍게 생각하는 마음. 내가 중심을 잡고 흔들리지 않는다면, 벽돌 한두 장의 빈자리는 오히려 바람이 잘 통하는 통로가 되어줄 것이다.


숨을 다시 쉬어본다. 4초가 넘어도 괜찮다. 조금 짧게 마시고 길게 뱉어도, 내 삶이라는 공기는 여전히 내 곁에 있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벽돌이 쪼개지면 쪼개지는 대로. 마음에 쌓여있는 먼지가 괜히 무거운 줄 착각하고 있었다. 가볍게 툭툭 털어낸다. 그리고 다시 내 일상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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