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성취의 차림
차림식 운영을 위한 실험의 일환으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한 지 어느덧 두 달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 구독자는 100명을 돌파했고, 우리 가족은 파티를 했다. 가장 좋아하는 와인을 마셨고, 꽃도 선물 받았다. 민망하면서도 우습기도 하고, 고작 100명으로 무슨 파티냐 싶기도 하겠지만 나에게는 나름의 의미가 크다. 긍정적인 의미 부여가 확실한 동기가 된다고 믿는 나에게, 구독자 100명은 기념비적인 숫자다.
'차림식'으로 거창한 성공을 하겠다거나 100억을 벌겠다는 공수표 같은 목표를 세우기보다, 아주 작은 성취부터 다시 맛보고 싶었다. 경력이 단절된 채 육아에만 전념했던 시간 동안, 나는 '나'라는 개인으로서 무언가를 해냈다는 감각을 잊고 지냈다. 엄마나 아내라는 수식어를 다 떼어내고, 오직 나의 이름으로 정한 목표를 내 힘으로 넘어서는 경험이 절실했다.
그게 아르바이트든 사소한 습관의 형성이든 상관없었다. 나만의 목표치를 정하고 그것을 이뤄냈을 때의 기쁨을 되찾고 싶었을 뿐이다. 아이에게는 "작은 것부터 하나씩 해보자"라고, "한 걸음 떼는 게 중요하다"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정작 나 자신에게는 왜 그 원칙을 적용하지 못했을까. 아이에게 가르치는 그 소중한 가치를 나에게도 선물해주고 싶었다. 100명이라는 숫자는 나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한 첫 번째 마침표였다.
온라인상의 숫자는 가끔 무기력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100이라는 숫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건 더 이상 데이터가 아니다. 내 차림에 찾아오기로 한 100명의 손님, 댓글이 있든 없든 조회수 하나하나의 발걸음에 감사하다.
내 공간에 100명의 사람이 모여 있다고 상상해 본다. 거실이 꽉 차서 발 디딜 틈도 없을 것이다. 그 많은 사람이 오직 내가 차려낸 무언가를 보기 위해 나를 찾아온다니. 언제든 나를 찾아올 수 있는 손님이 100명이나 생겼다는 사실은, 나의 기록이 더 이상 혼잣말이 아니라 세상과 연결되는 ‘살아있는 마음차림’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파티를 하던 날의 벅찬 마음을 뒤로하고 오늘 다시 화면을 보니 숫자는 어느덧 132가 되어 있다. 100명 돌파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숫자는 또 다른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숫자의 변화에 일희일비하기보다, 그날 가족들과 나누었던 케이크의 달콤함을 기억하려 한다.
다음 파티도 꿈꾼다. 500명, 3,000명, 그리고 10,000명. 그 숫자들이 언제 올진 알 수 없지만, 그때마다 나는 기꺼이 케이크를 사고 촛불을 켤 것이다. 거창한 성공을 기다리느라 오늘의 기쁨을 미루지 않기로 했다. 나를 위해 차린 이 작은 잔치들이 모여, 결국 흔들리지 않는 삶의 축을 만든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손님을 기다리는 주인장의 마음으로 식탁을 닦는다. 132명의 손님과 함께하는 이 매일의 만찬이 나를 또 어떤 뜻밖의 장소로 데려다 줄지,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 차림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