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문
필자는 본 글을 시작으로 '역사교육'이라는 어렵고도 민감한 주제에 대해 일련의 논의를 하고자 한다. 우선 필자를 간략히 소개하자면 사학을 전공하고 있는 평범한 학생이며, 더불어 역사교육 문제에도 관심이 많은 학생이다. 하지만 현재 재학 중인 사학과에는 교직 이수가 불가하여, 교육학을 수업으로 듣진 않았다. 단지 사설 학원에서 일을 해보며 교육과 관련한 경험을 쌓은 게 전부이다. 그래서 필자의 논의는 교육학에 근거한 '정통적인' 교육 논의와는 사뭇 결이 다를 것이다.
이런 질문을 할 것이다. '왜 교육을 전공으로 하지 않는 사람이 교육에 관한 얘기를 하는가?'라고 말이다. 맞다. 그래서 글을 쓰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 '과연 내가 교육이라는 주제를 논의해도 될 사람일까?'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교육에 관한 논의는 일평생을 교육에 몸담은 사람들 혹은 '명문대 코스'를 밟은 사람들이 하는 것을 암묵적인 룰로 삼고 있다. 즉, '공부를 잘하는 사람,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논의하는 영역이다. 그에 반해 필자는 교육 관련 일을 잠깐 해본 것에 불과하며, 명문대 코스를 밟은 사람도 아니다. 즉, 이런 사람이 교육에 관해 논의를 한다면 '저 사람 가방끈도 그리 길지 않은데 뭘 알아?'라며 핀잔이 돌아올 수도 있으리라는 것도 예상하고 있다. 그럼에도 글을 옮기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첫째, 교육을 '평범한 사람의 관점'에서 얘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교육의 단편적인 일상 이야기들, 예컨대 '저 친구는 맨날 전교권에서 놀더라'와 같은 부모님의 잔소리 같은 것들은 '뛰어난 사람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교육이다. 그 관점에서 얘기하는 교육은 많은 평범한 학생들에게는 와닿지 않는 이야기이다. 그것이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라면 문제라고 생각한다. 성적이 뛰어난 학생을 맹목적으로 따르라고 하지, 성적 말고 다른 게 뛰어날 수 있는 평범한 학생을 도야하는 가치가 실제 교육 현장에서는 잘 실현되지 않고 있다. 평범한 학생의 도야를 목적에 둔 학생부종합전형 제도도 '빽 있는 사람의 전형', '전교권 몰아주기', '자소설' 등의 병폐로 순기능이 퇴색되었다. '그럼에도 뛰어난 사람의 관점에서 얘기하는 교육이 과연 옳은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필자처럼 평범한 사람의 관점에서 교육을 얘기하면,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교육 현장의 실질적인 변화를 모색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둘째, 교육을 '소수자의 관점'에서 얘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필자가 주요하게 얘기할 주제와도 맞닿아 있다. 현재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편성되는 역사 교과목은 한국사, 동아시아사, 세계사가 있다. 한국사는 수능에서 필수적으로 응시해야 하며, '한국인은 한국사를 기본 소양으로 알아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에 맞물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에서 교육하고 있다. 이 경우, 교육에서 '연속성'이 발생하여 수월하게 학습할 수 있다. 반면, 동아시아사와 세계사는 찬밥 신세를 계속 면치 못하고 있다. 두 교과목의 경우, 한국사와 달리 '잠깐의 만남'이 끝이다. 한국사보다 진입 장벽이 있는 교과목이기에 어쩌면 교육에 있어서 더욱 연속성이 요구되는데도 불구하고, 현재 교육과정에서는 일회성 만남이 전부이다. 그 결과, 사학이나 역사교육학을 전공하려는 학생 그리고 대입을 마친 사학, 역사교육학 전공생 사이에서도 외면받는다. 그럼에도 두 교과목을 선택해서 공부하는 소수의 학생들은 계속 나오고 있다. 필자도 수험생 시절에 두 교과목을 공부하면서 느꼈지만, 이들을 위한 교육 여건이 정말 열악하다. 그리고 개념 공부와 교육 평가(특히 평가원 수능) 간의 괴리도 크다. 하지만 그 문제점에 사회적으로 주목하거나, 누군가 대표해서 말한 경우는 없었다. 그래서 소수자였던 필자가 총대를 메고 불편한 문제를 깊이 있게 얘기해보고 싶다.
셋째, 교육을 '피교육 세대의 관점'에서 얘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 세대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처음으로 적용된 세대이다. 즉, 가장 신식인 교육과정 하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을 받았다는 뜻이다. 신식 교육과정이 적용된 지 어느덧 5년차(2021학년도 6평, 9평, 수능을 기준으로)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위 문단에서 얘기한 역사 과목 소외 현상은 해결되지 않았다. 2015 개정 교육과정 동아시아사/세계사는 학습량 부담 경감을 목표로 교과서의 분량을 축소하였음에도 말이다. 이는 앞에서 밝힌 것처럼 고등학교 교육 이전의 동아시아사 및 세계사 교육의 연속성이 없고, 개념 공부와 교육 평가 사이의 학습 점검도 측정 과정에 대한 치밀한 설계가 없는 두 가지의 근본적인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은 것에서 기인한다. 단순한 교육과정 개정을 넘어, 학습 목표에 효과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이 필요하다. 필자가 몸담은 학원 일 또한, 개념 공부와 교육 평가 사이의 간극을 메워주는 교재, 실전 모의고사 등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 일이 역사 과목 소외 현상에서 비롯되는 문제점을 어느 정도 해결해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고, 실제로 맞아떨어졌다. 그렇기에 '피교육자였고, 피교육자였기에 진단했던 문제점'에 대해 논의하면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넷째, 교육을 '사학과의 관점'에서 얘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학과는 역사를 학문적으로 배우는 것에 초점을 둔 곳이다. 따라서 '역사를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교육하는가?'는 역사교육과의 목표이지 사학과의 목표가 아니기 때문에, 사학과 내부에서는 중등교육 문제에 대해 무관심한 편이다. 필자 대학의 사학과처럼 교직이수도 불가하다면 더더욱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단지 필자가 개인적으로 교육 문제에 관심을 가졌을 뿐이다. 하지만 학원 일을 해보면서 사학 전공생들도 교육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게 되었다. 사학 전공자가 역사교육 발달에 기여할 수 있는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 교육학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더라도, 사학 전공의 전문성을 교육에 녹여낼 수 있는 원리만 안다면 가능하다. 그 원리를 후속 글에서 상세히 밝힐 것인데, 그 이유는 이 원리를 개인이 아는 것보다 여럿이 알았을 때 장기적으로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 들어서이다. 알다시피, 사학과의 입지는 굉장히 위태롭다. '인문학의 위기'로 일컬어지는 인문 계열 학과 구조조정, 취업 문제 등으로 인해 사학 전공만으로는 먹고살기 어려운 세상이다.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 즉 풍토 변화가 필요하다. 이 풍토 변화의 근간에는 교육이 있다. 사학과의 존속을 위해서라도, 교육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논의하고 싶다.
이상이 필자가 어렵고도 민감한 역사교육 문제에 대해 당위성을 갖고 논의하고자 하는 이유이다. 모두가 그 논의에 동의하지 않아도 된다. 소수일지라도, 그 논의에 지지하고 동의한다면 목적을 달성한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본래 근본적인 변화라는 것은 공론장의 형성에서 시작된다. 지금껏 주목되지 않았던, 필자의 관점에서 밝히는 역사교육 문제에 대한 공론장이 생기는 하나의 단초가 되기를 바라며 논의를 본격적으로 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