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히 공격적인 제목에 놀랐을지도 모르겠다. 필자가 논의할 역사교육 문제의 첫 번째 주제는 역사 과목 소외 현상의 대표적인 사례인 '세계사 기피증'이다. 서문에서도 말했듯이, 학교 현장에서 한국사 교육은 연속적으로 이루어지는데 반해, 동아시아사 및 세계사 교육은 일회성에 그치며 그마저도 학생이 해당 교과목을 선택하지 않으면 만남의 기회는 없다. 그렇다면 왜 학생들은 한국사 이외의 역사 과목을 선택해서 배우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일까? 이것이 야기하는 문제는 무엇일까? 이 두 가지의 질문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겠다.
1. 불편한 만남, 그리고 외면
학생 모두가 세계사를 필수적으로 배우는 때가 있다. 중학교 2학년 때이다. 현재 중학교 역사 교육은 역사 1 교과서(중학교 2학년 역사)에서 세계사 전반을 다루고, 역사 2 교과서(중학교 3학년 역사)에서 한국사 전반을 다루도록 편제되어 있다. 필자 세대에는 역사 1 교과서에서 전근대 한국사와 세계사를 배우고, 역사 2 교과서에서 근현대 한국사와 세계사를 배웠다. 수업 시수는 3시수였는데 2시수는 한국사에, 1시수는 세계사에 배정되었다. 생경한 세계사와의 첫만남은 1주에 단 45분에 불과하였다. 당연히 세계사를 가르치는 선생님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중학생에게 세계사를 흥미롭게 이해할 수 있게 할까?'라는 고민보다는 '어떻게 해야 너무도 제한된 시간에 방대한 세계사의 진도를 다 나갈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필자도 중학생 때 세계사에 흥미를 전혀 가질 수가 없었다. 지금 중학교 역사 교육에서는 세계사를 배우는 시간이 더 늘어나고, 여유로워졌다지만 대부분의 중학생에게는 어색한, 그마저도 길지 않은 세계사와의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 그렇게 끝난다.
대입이 결정되는 고등학생 시기, 세계사 교과목은 더욱 외면받는다. 고등학교 이전에 세계사에 흥미를 느낀 학생이라면 넙죽 공부하겠지만, 대부분의 고등학생은 '어색하고 짧은 세계사와의 첫만남'을 가진 게 다이기에 흥미를 느끼고 공부할 리가 만무하다. 필자 역시 세계사 교과목을 선택한 이유가 그 교과목에 흥미를 느껴서가 아니라, 사학과나 역사교육과에 가려면 관련 계열 교과목을 들어둬야 한다는 의무감이 더 큰 동기로 작용하였다. 그렇게 선택을 했든, 아니면 아무 생각 없이 선택을 했든 고등학교에서 세계사 교과목을 들었던 필자 또래의 학생은 60여 명에 불과하였다. 그리고 그 60여 명 가운데에서 9등급 상대평가가 이루어졌다. '성적 잘 받기'가 우선되는 고등학교에서 이런 조건을 감당하고 세계사 교과목을 선택하는 학생이 많길 바라는 게 이상한 것이다.
고등학교에서 세계사를 배우고 싶어도 선택권이 없는 경우도 있다. 세계사 교과목이 아예 개설되지 않는 고등학교도 있다고 한다. 아마 세계사 교과목을 선택한 학생들이 매우 적거나, 이를 교사가 가르칠 사정이 안 되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든다. 현재 교육과정은 '학생 개인의 특성을 중시하는 교육'으로 변화하고 있다. 고교학점제도 그 맥락에서 시행되는 것이다. 학생 수가 적다고, 가르칠 사정이 안 된다고, 어쩌면 한 학생의 인생을 결정지을 지 모르는 교과목을 아예 개설하지 않아도 되는지 의문이다. 필자에게는 세계사 교과목이 인생의 방향을 바꾼 과목이었는데 말이다.
대학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요즘 대학의 목적이 취업을 위한 발판이라고 한들, 학문을 전수하는 역할은 계속 지켜져야 할 것이다. 사학과, 역사교육과는 공통적으로 역사학을 전문적으로 배우는 곳이다. 역사학은 한국사, 동아시아사, 세계사 모두를 아우르는 학문이다. 어떤 사학과, 역사교육과든 역사 전반에 대한 풍부하고 넓은 지식을 함양해서 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명목적으로나마 교육 목표로 삼고 있다. 이 교육 목표가 지켜지고 있는지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 대학생들이 역사학을 유연하게 수용하고 이를 통해 지식을 확장하려면, 그에 앞서 역사학을 유연하게 수용하기 위한 기초 교육이 잘 되어있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기초 교육 중 하나가 중등교육이다. 세계사 교육이 사실상 실종된 중등교육을 받고 대학에서 사학, 역사교육학 전공을 택한 학생들이 '대학에 왔으니 여러 역사를 이것저것 배워봐야지!'하며 호기롭게 굴 학생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중등교육의 문제는 고등교육의 문제로 그대로 이어진다.
대학에서도 세계사는 외면받고 있다. 사학과 동기들이 던지듯이 말했던 말이 있다. '서양사 속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은 무슨 공룡같아. 어려워.', '세계사는 잘 모르겠어.'와 같은 말이 기억에 남는다. 동기들의 반응을 들으며 '아, 사학 전공생이더라도 세계사란 존재가 버겁게 느껴지는구나.', '세계사에 대한 학창 시절의 거부감이 대학에서도 이어지는구나.' 등의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특히 밑줄 친 부분의 생각이 사범대생도 아니고, 교직이수를 받지도 않았던 필자가 교육 문제에 더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였다. 필자에겐 정반대의 선상에 있는 이공계열 학과의 교수들이 '요즘 학생들은 수학, 과학 지식이 부족해요.'라고 탄식하던 이유를 어느 정도 깨닫게 되었다.
교육은 관통한다. 그리고 교육은 계단이다. 이 비유는 교육의 '연속성'을 잘 보여주는 표현이다. 필자 개인적인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의 이야기를 하며 세계사 기피증이 왜 생길 수밖에 없고, 어떻게 문제를 야기하는가를 얘기한 것도 여기에 있다. 교육은 첫단추가 잘못되면 연쇄적으로 잘못된다. 중학교 때의 어색하고 그리 길지 않은 세계사와의 첫만남은 부정적인 인상을 남긴다. 중학교 때야 필수로 배워야 하니 어찌저찌 불편한 만남을 가졌다 하더라도, 거절이 가능한 '다음에 만날래?'라는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목의 에프터에 거절 의사를 행사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대학에서 세계사가 다시 에프터를 걸어온다. 역시 거절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현재의 역사교육에서는 어쩌면 오해일 지도 모르는 세계사의 부정적인 인상을 깨고 '다시 봤다. 생각보다 흥미롭네?'라는 재평가를 가능하게 할 기회 및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세계사 교육의 '연속성 부재'가 초등학교부터 대학교에 아우르는 '연쇄적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2. 새로움이 거부감으로
그렇다면 왜 교육 현장에서의 세계사 학습은 거부감을 주는 것일까?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하나는 '왜 배워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 해소의 부족, 다른 하나는 시험을 치르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다. 2장에서는 전자를 논하고, 3장에서 후자를 논하겠다.
우리는 우리 주변의 일에 관심을 가진다. 자신과 전혀 관련 없는 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건 당연한 심리다. 그러므로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던 것에서 관심을 이끄는 건 지난하다. 필자 또한 그 지난함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사는 우리와 밀접한가?', '세계사를 배울 필요성이 있는가?'라고 질문을 던진다면, '우리나라도 아닌 다른 나라의 역사가 우리와 왜 밀접하죠?', '굳이 배워야 하나요?'라는 답변을 던질 수도 있겠다. 그런 답변을 하는 사람도 '알고 보니 세계사가 우리와 밀접하고 배울 필요성이 있군요.'라고 생각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역할을 교육이 해야 한다. 왜 세계사를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 설득이 필요하다. 그로써 관심을 이끌어야 한다.
물론 세계사 교과서에서도 세계사 학습의 필요성을 첫머리에 밝히고는 있다. 하지만 교사도, 학생도 그것을 눈여겨 읽지는 않는다. 시험 범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에서 세계사를 배우는 학생들은 어쩌면 가장 중요할 수 있는 세계사 학습의 필요성을 밝힌 첫 페이지를 가볍게 읽고, 시험에 대비하기 위한 암기 레이스를 시작한다. 이는 우리나라 교육의 근본적인 문제와 결부된 것이기도 하다. 시험을 위한 학습 분위기가 세계사를 버겁게 느껴지는 존재로 만들었다. 왜 배워야 하고, 어떻게 하면 시험을 넘어 인생 전체에서 배움의 흥미를 느끼게 할 지에 대한 고민은 끼어들 턱이 없다. 중등교육에서의 세계사는 '암기 산맥'에 불과하다.
사실 필자도 '세계사를 왜 공부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명확한 답을 내리기 어려웠다. 교과서적인 답변을 원하지 않을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필자 나름대로 이 글에서 답변을 해보고자 한다. 필자 역시 세계사에 흥미를 느끼기 전까지 한국사를 알아가는 것을 좋아하였다. 특히 조선시대사에 관심이 있었어서 주말에 부모님을 졸라 궁궐과 왕릉을 가기도 하였고, 붕당의 전개 과정을 달달 외우기도 하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진부함'이 찾아왔다. 한국사를 배우고, 또 배우고 하니 새로움이 없었다. 당연히 대학으로 넘어가면 한국사에도 끝없을 정도로 새로운 요소들(글자가 마모되거나 지워진 사료의 해석 방식, 학계 논쟁 등)이 있다는 걸 알게 되지만, 한 어린 학생이 그걸 어떻게 알겠는가? 그래서 진부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2학년부터 중학교 때는 좋은 인상을 주지 않았던 세계사를 공부하게 된 것인데, 비록 내용 학습이 쉽지 않았지만 새로움이 끝없이 흘러들어왔다. 한국 건너편의 중국과 일본의 이야기, 인도와 서아시아의 이야기, 유럽의 이야기 등등이. 그 새로움이 주는 흥미, 새로움이 주는 지식이 세계사의 매력으로 빠져들게 만들었고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지금도 세계사에서 새로움을 느낀다. 그게 필자가 세계사를 공부하는, 가장 원초적인 이유이다.
세계사의 새로움은 잠깐의 만남으로는 다 알 수 없다. 익숙함을 선호하는 인간 특성상, 단발적인 체험에 그치는 새로움은 '저건 나랑 안 맞아.'라며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게 되기 마련이다. 새로움에서 매력을 느끼고 받아들이기까지 지속적인 접촉이 필요하다. 신상품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광고하는 원리와 같다. 과연 지금의 역사교육은 세계사의 새로움을 '매력'으로 인식하게 하는가? '거부감'으로 인식하게 하는가? 이 질문이 독자들도 학교에서 세계사를 배웠던 기억을 떠올리며 성찰하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