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바라보는 역사교육 문제 5장
이 장에서는 동아시아사와 세계사 교과목의 계열성 문제에 대해 논의한다. 동아시아사 교과목은 2013년에 새롭게 마련된 역사 교과목으로, '동아시아'의 관점으로 한중일 3국 역사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고찰하는 것이특징이다. 제법 취지가 괜찮은 교과목이자, 독특한 포지션을 담당하는 교과목이기도 하다. 2012년까지 중등 역사교육은 한국사, 한국근현대사, 세계사의 체계로 이뤄져 있었다. 한국사 교과목이 두 갈래로 세분화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사 교육의 위상이 지금보다 훨씬 높았다. 즉, 한국사가 메인이 되고 세계사가 서브가 되는 체계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체계에는 한국사와 세계사 간의 연결성이 부족한 문제가 있다. 연결성 부족 문제는 의외의 방법으로 해결되었다. 이 체계로 역사교육이 운영된 시기부터 '동아시아 공동체', '동아시아 평화'와 같은 기치가 대두되기 시작한 것이 그 이유였다. 그래서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며, 한국사와 세계사를 중계하는 역할을 기대하며 개설된 교과목이 동아시아사이다. 이렇게 한국사 - 동아시아사 - 세계사라는 체계가 지금까지의 역사교육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체계가 잘 돌아갔다면, 학생들이 한국사에서 객체로 등장하는 중국과 일본의 역할에 호기심을 가져 동아시아사를 학습하고, 동아시아사에서 객체로 등장하는 서양의 역할에 호기심을 가져 세계사 학습까지 유도하는 이상적인 모습을 만들었을 것이다.
이상이 현실로 이어지기는 늘 어려운 법이다. '신생' 동아시아사 교과목은 10여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정착에는 성공했지만, 한국사와 세계사를 중계하는 역할 수행은 실패하였다. 동아시아사와 세계사가 '따로국밥'이 된 것이다. 현재 학생들의 동아시아사 학습 양상은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세계사 -> 동아시아사'로, 세계사를 먼저 학습한 뒤 동아시아사를 학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동아시아사 -> 한국사'로 동아시아사 학습을 통해 수능에서 필수로 응시해야 하는 한국사까지 같이 대비하는 것이다. 사실 여기에 '동아시아사 -> 세계사'의 학습 양상도 추가되어야 맞다. 그래야 한국사 -> 동아시아사 -> 세계사라는 발전적 역사 학습 양상이 성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아시아사 -> 세계사'의 학습 양상은 극히 드물다. 이는 1+0.5와 1+1의 차이라고 볼 수 있겠다. 세계사에는 중국과 일본의 역사도 포함된다. 그러므로 세계사 -> 동아시아사의 순서로 공부하면, 1+0.5의 학습량 부담 경감이라는 이점이 생기지만, 동아시아사 -> 세계사의 순서로 공부하면 1+1로 학습량 부담 경감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래서 동아시아사를 먼저 공부한 학생들도 세계사 공부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결국 세계사는 동아시아사 교과목을 통해 소외에서 벗어나려고 했으나, 좌절되고 말았다.
역사 과목 간의 횡적 계열성에 관한 고민이 절실하다. 지금의 한국사 - 동아시아사 - 세계사 체계는 종적 계열성은 있으나, 횡적 계열성은 부족하다. 한국사 - 동아시아사 - 세계사의 공통 분모를 찾고, 공통 분모를 통한 역사 학습의 단계성 내지 연속성을 키우는 게 근본적인 해법이다. 그 해법의 열쇠는 무엇일까? 이 장에서 차근차근 논의하며 찾아보자.
횡적 계열성은 융합의 수월함을 담보한다. 예를 들어, 서로 다른 학문 3개가 있을 때 이를 하나로 연결하게 도와주는 것이 횡적 계열성이다. 요즘 강조되고 있는 융합적 사고의 원천도 횡적 계열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미래 교육의 가치를 융합적 사고로 삼아야 하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융합이라는 명목의 잡탕은 동의하지 않는다. 융합은 반드시 '융합을 가능하게 한 공통 분모'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융합했을 때 잡탕이 되지 않으며, 좋은 효과가 극대화된다. 이를 이야기한 이유는 지금까지의 역사학 그리고 역사교육이 다른 학문(분과)과 융합하기 적절한지, 그리고 융합을 위한 공통 분모가 있었는지를 검토하기 위해서이다. 역사는 본질적으로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학문이기에 융합의 밑바탕은 충분하다. 그러므로 역사교육은 역사가 다른 분야와 융합할 수 있는 방법을 교육하는, 실무적인 역할도 담당해야 할 것이다. '융합적 사고의 향상'을 위한 역사교육은 어떻게 편성되어야 할까? 역사와 다른 분야를 접목한 교육도 방법이겠지만, 역사에서 '융합이 가능한 요소, 가치'를 찾아주는 교육도 필요하다. 후자의 교육은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역사의 횡적 계열성'을 강조하는 교육이다. 이것이 달성되면, 역사 전반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밑바탕으로 하여, '역사가 주체가 되는' 융합적 사고를 도출하는 능력을 배양시킬 수 있다. 역사가 융합의 수월함을 담보하는 방법인 것이다.
종적 계열성의 전문화는 횡적 계열성의 저해라는 역기능을 낳기도 한다. 지금의 역사학과 역사교육이 그러한 상황이다. 사학과는 대체로 한국사 - 동양사 - 서양사의 세 분과를 큰 틀로 삼아 전공 교육과정을 구성하였고, 지금 중등 역사교육도 그 영향을 받아 한국사 - 동아시아사 - 세계사(서양사가 핵심)의 체계를 이루고 있다. 횡적 계열성보다는 종적 계열성의 성격이 강하다. '종적 계열성으로서의 역사'가 가지는 전문성은 이미 입증되었다. KCI, KISS, RISS와 같은 학술 논문 데이터베이스 사이트에 들어가면, 수많은 전문적인 연구 논문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이 그 예시이다. 이 연구 논문들에서 보여지는 전문성은 종적 계열성으로서의 역사가 이룩한 성과들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지금의 중등 역사교육도 바로 종적 계열성으로서의 역사로 축적한 전문적인 연구 성과 아래 편성된 것이다. 그렇기에 동아시아사, 세계사 교과목을 통해 학생의 단계에서 타국의 역사를 학습하는 교육 환경도 만들어졌다. 그런데 최근들어, 종적 계열성으로서의 역사가 '어떻게 융합의 가치를 실현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으며 중대한 국면의 변화를 겪고 있다. 이 질문에 답변하려면, 횡적 계열성으로서의 역사가 나서야 한다. 문제는 종적 계열성으로서의 역사가 가지는 전문성의 방법으로 역사학계와 역사교육의 발전을 이룩하는 동안, 횡적 계열성으로서의 역사가 가지는 새로운 가치, 이를 통한 발전 방법의 고안은 상대적으로 간과되어 왔다는 것이다. 사학과는 한국사 - 동양사 - 서양사라는 분과 아래 전공 교과목을 구성했지만, 이 분과들을 연결하는 전공 교과목의 구성에는 무관심했고, 중등 역사교육은 한국사 - 동아시아사 - 세계사의 체계는 구성했지만, 이 체계를 하나로 이어주는 실질적인 방법을 마련하지 못했다.
종적 계열성의 경직이 이미 여러 현실적 문제를 낳았다. 지난 2장에서 다룬 '세계사 기피증' 문제도 세계사라는 전문성이 담보된 종적 계열성으로서의 역사 교과목은 있지만, 한국사와 세계사를 비교하는 것과 같은 유연성이 담보된 횡적 계열성으로서의 역사 교과목이 없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다. 만약, 학교 현장에서 비교사를 다루는 역사 교과목을 편성해서 가르치게 했다면, 학생들 사이에서 세계사에 대한 낯섦과 거부감을 줄여줘 수월한 세계사 학습을 가능하게 만들어줬을지도 모른다. 한국사, 동아시아사, 세계사 교과목은 분명히 역사라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은 맞지만 교육 현장에서 학습할 때는 각 교과목이 전부 따로 노는 느낌을 준다. 역사 학습에서 흥미를 주는 요소는 '스토리를 통한 연결'이다. 세계사 학습에서 흥미를 주려면, 먼 나라 일처럼 여겨지는 세계사가 우리나라와 가까운 동아시아 그리고 우리나라에 어떤 연결고리를 제공하는지를 교육으로 알려줘야 할 것이다. 그래야 '한국사 -> 동아시아사 -> 세계사' 혹은 '세계사 -> 동아시아사 -> 한국사'의 발전적 학습 양상을 이끌어낼 수 있다. 이 발전적 학습 양상은 횡적 계열성의 유연함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물론 이 사실을 교육 전문가들이 모르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횡적 계열성으로서의 역사가 중시되는 교육과정은 대대적인 변화가 요구되는데 이로 인해 피교육자의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는 점, 현재 우리나라 역사교육의 위상이나 사회적 인식이 그리 높지 않다는 점, 비교사적 연구가 상대적으로 덜 축적되었다는 점 등이 장애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그 사이에, 종적 계열성의 경직이 일어나버렸다. 이런 분위기 속 동아시아사의 돌풍도 그리 혁신적이지 못했다.
이제는 역사에도 유연함이 필요한 시대가 왔다. 횡적 계열성으로서의 역사가 고개를 들어야 하는 시점이다. 유연함으로 미래의 역사학, 역사교육을 재편해야 한다. 앞으로 '신선한' 역사학자, 역사 교육자가 되는 기준은 '종적 계열성으로서의 역사'에 전문적인 것이 아니라, '횡적 계열성으로서의 역사'에 전문적인 것으로 변화할 것이다. '지금까지 축적된 전문적인 역사 연구를 어떻게 하나로 이어주는가?', '제각기 따로 노는 중등교육의 역사 교과목을 어떻게 하나로 연결시킬 것인가?' 등이 새롭고 중요한 과제로 부상할 것이다. 이 과제를 완수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겠지만, '융합의 시대'에 역사가 편승하되, 휩쓸리지 않고 고유의 존재감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가야 할 길이다.
서론에서 문제를 제기한 '동아시아사 -> 세계사의 발전적 학습 양상 부재', '1+0.5와 1+1 학습'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현행 수능 제도에서는 사회탐구 및 과학탐구 과목들 중 2개의 과목을 선택하여 응시해야 한다. 사회탐구의 경우, 일반사회(정치와 법, 경제, 사회문화)/윤리(생활과 윤리, 윤리와 사상)/지리(한국지리, 세계지리)/역사(동아시아사, 세계사)의 각 분과마다 2개의 교과목을 수능 응시 과목으로 지정하고 있다. 이 편제는 기본적으로 학생의 응시 과목 선택권을 보장하되, 한 분과에 개설된 2개의 교과목을 공부해서 '1+0.5'의 학습량 부담 경감 효과를 얻게끔 유도하고 있다. 예컨대, 역사 교과목에 흥미가 있고 시험을 치를 만한 자신이 있는 학생은 동아시아사와 세계사를 수능 응시 과목으로 선택해서 공부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이론상 동아시아사와 세계사의 학습 순서에 상관 없이, 1+0.5의 학습량 부담 경감 효과가 발생하며 수능을 대비하기에도 수월해진다. 이는 반만 맞는 말이다. 현행 교육과정에서는 세계사와 동아시아사 중 어떤 교과목을 먼저 학습했느냐에 따라 학습량 부담 경감 효과 여부가 달라진다. 이러한 현상이 '한국사 - 동아시아사 - 세계사'가 횡적 계열성을 가지지 않고, 종적 계열성만을 가져 각기 따로 노는 교육과정상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잠시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얘기해보겠다. 필자가 학원에 몸담았을 적에도, '세계사 공부를 한 사람은 동아시아사를 할 수 있는데, 동아시아사 공부만 한 사람은 세계사를 할 수 없다.'는 명제가 깨지지 않았다. 언제는 동아시아사 교육 콘텐츠를 검토하는 사람들에게는 세계사 교육 콘텐츠를, 세계사 교육 콘텐츠를 검토하는 사람들에게는 동아시아사 교육 콘텐츠 검토를 맡긴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전자의 사람들은 세계사만 선택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동아시아사도 같이 공부했기 때문에 비교적 수월하게 검토했던 반면, 후자의 사람들은 굉장히 당혹스러워했다. 위의 명제를 깨보려는 시도였는데, 결국 깨지지 못했다. 이 경험이 필자가 동아시아사와 세계사 간의 계열성 문제를 이전부터 인지는 하고 있었으나, 더 깊게 고민한 계기이기도 하였다.
만약 동아시아사가 아니라 '아시아사'라는 교과목이 개설되었다면 어땠을까? 세계사 교과목과의 횡적 계열성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세계사를 학습하면서 '갑자기 턱 막히는 어려움'을 겪는 부분이 '서아시아, 인도 지역의 역사 단원'일 것이다. 용어, 역사적 흐름 등이 굉장히 생소한 것이 그 이유이다. 그 벽을 넘으면 '유럽, 아메리카 지역의 역사 단원'이라는 더 큰 벽이 있다. 서양사에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이상, 교육 현장에서 서양사를 능숙하게 공부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사 및 동아시아사 교과목에서도 서양사는 큰 관련이 없는, 별개의 영역으로 취급한다. 즉, 세계사 교과목의 고유한 영역이기도 한 서아시아 및 인도의 역사, 서양사가 학습의 진입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세계사 교과목에 필요한 횡적 계열성은 서아시아 및 인도의 역사, 서양사를 타 교과목과 연결하는 것이다. 서양사를 단독으로 다루는 교과목은 우리나라 정서로 보나, 유럽(서양) 중심주의에서 탈피하려는 학계의 시각으로 보나 개설되기 어렵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서양과 관계사적으로 밀접한 연관이 있는 서아시아 및 인도의 역사인데, '아시아사'라는 교과목으로 동아시아의 역사와 함께 다루게 했다면 서양사와의 연계성 문제도 해결됐을 것이다. 진입 장벽 문제를 고려해야겠지만, 동아시아사 교과목보다 한국사와 세계사를 중계하는 역할을 더 잘 수행했을 거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어쩌면 '동'아시아사라는 과목의 명칭부터가 한국사와 세계사를 중계하는 역할에 적절하지 않았을 수 있다.
동아시아사는 세계사 교과목과의 접점이 더 많았어야 했다. 세계사 안에는 동아시아사의 큰 틀(정치적 흐름)이 온전히 포함된다. 그래서 작은 틀(사회경제적 흐름, 문화적 흐름)을 이해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반면, 동아시아사는 서아시아 및 인도의 역사와는 접점이 아예 없으며, 서양사와의 접점도 극히 제한적이다. '동아시아사 -> 세계사'의 순서로 공부하는 학생들은 세계사 내의 '동아시아 지역의 역사 단원' 학습은 쉬울지언정, 나머지 단원의 내용은 새롭게 다시 공부해야 한다. 이것이 1+0.5와 1+1의 차이이다.
아래 두 도식으로 한국사 - 동아시아사 - 세계사 교과목의 접점 현황을 자세히 살펴보자. 첫 번째 도식은 2015 개정 교육과정 교과서 대단원에 따른 한국사 - 동아시아사 - 세계사 교과목의 계열성을 표현한 것으로, 각 역사 교과목에서 타 역사 교과목의 내용이 '조금이라도' 간접적으로 연계성이 있으면 연결선 표시를 하였다. 첫 번째 도식만 봤을 때는 서아시아 및 인도의 역사를 제외하고는 각 교과목의 대단원이 연계성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두 번째 도식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두 번째 도식은 각 교과목의 대단원을 시대 및 지역사로 재정리하여 한국사 - 동아시아사 - 세계사 교과목의 계열성을 표현한 것으로, 연결선을 표시한 기준은 첫 번째 도식과 동일하다. 두 번째 도식에 따르면, 한국사와 동아시아사 간의 연계성은 충분하나, 동아시아사와 세계사 간의 연계성은 절반에 못 미치는 수준에 그친다. 여기서도 동아시아사와 서아시아 및 인도의 역사의 접점은 없다. 동아시아사와 서양사 간의 접점도, 전근대사(고대, 중세)와의 접점은 아예 없으며 근현대사도 연결선 표시는 했지만, '신항로 개척(근대사)',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전후 처리(현대사)', '냉전(현대사)' 부분에서만 제한적으로 연계성이 있다. 동아시아사를 공부한다고 해서 서양사 학습의 수월성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동아시아사는 횡적 계열성의 역사를 표방한 교과목이 맞는가?'에 대한 회의가 드는 대목이다.
신생 동아시아사 교과목은 곧 단명한다. 2022 개정 교육과정부터는 동아시아사가 '동아시아 역사 기행'으로 교과목명이 변경되고, '교양'의 성격을 띄는 진로 선택 과목으로 편성된다. 진로 선택 과목은 수능 응시 과목에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한국사 - 동아시아사 - 세계사 교과목 체계도 옛 말이 될 것이다. 다시 한국사 - 세계사 체계로 돌아온다. 오히려 선택지를 줄였으니 세계사를 공부하는 학생이 늘어나는 시나리오도 기대해 볼 법하지만, 그보다는 지금도 그다지 높지 않은 역사교육의 위상이 더 떨어지고 설 자리가 좁아지는 걱정이 더 앞선다. 동아시아사 교과목의 단명이 역사교육의 축소를 알리는 신호탄 같다. 단명의 원인이 세계사와의 횡적 계열성 부족으로 인한 동아시아사 -> 세계사의 학습 양상 부재, 이 부재로 인해 동아시아사와 세계사가 한데 어울려야 하는데 따로 노는 것에 있지 않았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역사 교과목을 다양화해도 학생들이 그리 선호하지 않는구나.'라는 인식이 굳어졌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사 - 세계사 체계로의 복귀가 진정 세계사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해서 결정한 것이 맞다면, '중계'에 초점을 둔 다른 대안적 교과목의 개설을 고민해봐야 한다. 위에서 논의한 것처럼 학생들이 세계사를 수월히 학습하려면, 한국사에서 세계사로 뻗어나가는 발전적 학습 양상이 전제된다. 이 발전적 학습 양상에는 중간 단계가 필요하다. 중간 단계를 통해 최종 단계로 나아가는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동아시아사를 교훈삼아, 새로운 중간 단계의 역사 교과목은 더욱 횡적 계열성 지향적이어야 한다. 한국사와의 연계성도 가지면서, 서아시아 및 인도의 역사, 서양사의 내용도 일부 포함하여 세계사 학습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그런 성격의 교과목으로 편성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아시아사'라는 교과목을 제안해본 것이다.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려면, 역사교육 및 역사학계에서도 횡적 계열성으로서의 역사, 역사교육의 가능성과 가치에 대해 고민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기를 고대해보는 수밖에 없다. 중계는 실익을 추구하는 전략이다. 페르시아의 왕조는 중계 무역을 통해 로마 제국과 겨룰 정도로 번영했으며, 이슬람 상인은 유럽과 아시아를 넘나드는 거래를 통해 막대한 부를 챙겼다. 역사의 횡적 계열성에 대한 고민이 역사 전반을 번영케 하는 실익을 가져오는 신의 한 수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