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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를마뉴 Nov 13. 2024

사설로 보는 20년 간의 역사교육 공론사(公論史)

새롭게 바라보는 역사교육 문제 6장

  이 장에서는 기존에 제기된 역사교육 문제에 대한 비판적 의견들을 종합해서 돌아보고 평가한다. 지난 장까지 세계사 기피증이 교육 현장에서 어떤 연쇄적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학습의 고도화 도구 마련', '사학 전공생의 적극적 참여'를 중심으로 논의했으며, 동아시아사와 세계사 교과목 간의 계열성 부족이 세계사 기피증의 또 다른 원인이라는 것까지 고찰하였다. 이렇게 필자는 지난 장까지의 논의를 통해 현행 역사교육에 대한 문제점 제기를 넘어 실질적인 해법까지 모색해보았다.

  새로운 의견 제시는 기존 의견의 비판에서 시작된다.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핵심 주제라 볼 수 있는 '세계사 과목 소외 현상'은 필자가 글을 쓰기 이전에도, 교육 전문가들 사이에서 문제시되고 논의해 온 주제이다. 그런데 이 주제를 논의한 기존의 글들에서는 공통적으로 아쉬운 점이 발견된다. '해법 제시 없는 비판'이 그것이다. 어떤 문제점을 비판한다면, 그것을 해결하는 방안도 같이 제시해야 불만 토로식의 비판이 아닌 건설적인 비판이 된다. 필자는 기존의 글들을 읽으며, 역사교육의 문제점을 제시하고 비판하는 부분에서는 '맞아!'하며 공감을 했지만, '그래서 해법은?'이라는 또 다른 궁금증을 해소할 만한 내용은 없었고, 있더라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 교육 전문가도 아닌 필자가 '새롭게 바라보는 역사교육 문제'라는 대제목을 내걸고, 세계사 과목 소외 현상이라는 기존의 문제인식을 바탕으로 하되, '새로운 관점에서 문제점 조망', '해법 모색'이라는 요소를 고려한 글들을 써왔다.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지금까지 필자가 쓴 글들이 대제목처럼 새로운 관점에서 역사교육 문제를 조망하고 해법을 모색했는가? 댓글로 구체적인 의견을 남기면 감사하겠다.

  기존 의견을 하나로 종합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여기서의 기존 의견은 인터넷에 게재된, 개인의 의견을 밝힌 사설 등의 2000~2010년대 글로 한정하겠다. 논문의 경우, 철저히 교육학적인 관점에서 쓰여 일반 독자가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고, 교육학을 자세히 논하는 것은 필자의 영역에서 벗어나는 일이므로 제외하였다. 필자가 읽어보고 찾은 기존의 글들은 작성된 지 10년이 넘었고, 존재감도 없다시피 하다. 그런 글들이 인터넷이라는 광활한 공간에 뿔뿔이 흩어져 있다. 즉, 개인이 역사교육 문제에 대해 글을 작성하고 의견을 교류하는 행위 자체가 지금 시점에서는 없다. 그래서 필자가 기존 의견을 하나의 공간에 모아놓고 이와 관련한 평가를 남기되, 독자들이 기존 의견을 직접 읽을 수 있게 출처도 제시하면 '역사교육 공론장의 형성 및 확대'가 가능해져, 무의 상태에서 유의 상태로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였다.

  한편으론, 기존 의견에 대한 검토가 대제목을 정하고 쓰는 일련의 글들에 대한 중간 점검이기도 하다. 필자는 지금까지 글을 쓰는 과정에서 두 가지 문제에 봉착하였다. 하나는, 논의를 지속할 수록 '일반인도 이해하기 쉽게 역사교육 문제를 설명하는' 원칙에서 멀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동아시아사와 세계사의 계열성 문제를 논의한 5장은, 세계사 기피증 문제를 필자 개인의 경험과 연관지어 논의한 2장에 비해 글의 무게감이 크다. 그래서 2장만 읽고 다른 장을 읽지 않는 경향이 발견되었다. 다른 하나는, '글의 공신력 극대화' 문제이다. 지금까지의 글들은 필자 개인의 경험과 사유에 근거해 작성되었다. 서문에서 '평범한 사람', '소수자', '피교육 세대', '사학과'의 관점에서 쓰겠다고 표방했지만, 글이 공신력을 가지려면 기존 의견에 대한 비판적 성찰 과정이 필수적이다. 매 글마다 참고문헌을 제시하는 방법도 있겠으나, 그러기엔 글 한 편의 작성을 위해 투입되는 시간과 노력이 너무 커지며 앞서 말한 원칙을 지키기에도 어려워진다. 그래서 기존 의견을 검토하는 별도의 장을 마련하는 것으로 절충하였다.


1. 2000년대 역사교육 비판에 관한 검토

  세계사 기피증은 고질적인 문제이다. 이는 2000년대에 작성된 글들에서도 발견된다. 세계사는 옛날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럴 '공부하기 버거운 존재'이다. 여기서 소개할 두 편의 글은 우리나라 교육 현장에서 세계사 교과목을 기피하는 현상을 문제로 삼고, 해외의 사례를 들어 세계사 교과목을 학생들에게 필수로 가르쳐야 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 핵심 내용을 살펴보자.

유럽 각국은 오래 전부터 초·중·고교 교육에서 역사를, 수학이나 국어와 함께 필수 과목으로 삼아 왔다. 그들은 2세 국민들에게 자기 나라 역사뿐 아니라 전체 유럽사를 필수로 가르치고 있다. 자기 나라의 역사가 바로 이웃 나라와의 관계사이며 따라서 이웃 나라의 역사 지식이 곧 생존의 필수 도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 유승삼, 역사교육의 '실종'을 부끄러워하라(2005.4.7)

일본은 일본사는 누구나 듣지만, 세계사는 기피할 것이라는 고려 하에 몇 년 전부터 세계사를 필수로, 일본사를 선택으로 배치하였다. 세계화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세계사교육이 필수불가결하다는 점을 감안한 조치이다.
- 정현백, 역사교육 이대로 좋은가(2005.4.27)

  결국 역사교육 문제의 근원은 '인식의 문제' 같다. 근본적인 인식의 변화가 있어야 역사교육의 활로를 모색할 수 있다. 두 글에서는 해외에서 세계사 교과목을 필수로 가르치게 하는 것을 '생존의 문제'로 규정하였다. 생존해야 인간이든, 사회든, 국가든 그 고유의 가치를 지니지 않겠는가. 그러지 않으면 사망하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생존은 단순히 먹고, 싸고, 자는 행위 같은 물리적 의미의 생존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신적 의미의 생존을 의미한다. 현대 사회는 '보이지 않는 경쟁'의 연속이다. 개인으로는 교육 현장의 입시, 취업 등의 관문에서 경쟁해야 하며, 사회적으로는 힘의 논리에 의거한 국가 간의 알력 다툼이 일어나고 있다.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이 있듯이, 경쟁으로 점철된 세상에서 살아나가려면 개인 그리고 사회가 정신적으로 깨어있어야 한다. 정신을 깨게 만들어주는 보고는 지식, 학문이 대표적이다. 과거를 공부하는 역사학은 과거에 있었던 흥망성쇠의 교훈을 통해 현재와 미래에 범할 과오를 바로잡아주는 역할을 해준다는 점에서 정신적으로 깨어있게 만들어준다. 이 점에서 사실 역사 학습은 어느 것에 국한되지 않고 골고루 살펴봐야 한다. 그 본질을 '공부하기 어렵다'는 논리로 피하면, 개인이든 사회든 정신을 깨게 만드는 방법, 가능성을 아예 포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두 글은 세계사 교육을 생존의 문제로 바라봤으며, 생존 아니면 사망이라는 인식의 구도로 세계사 교육 부재의 문제점을 부각시켰다.


  역사는 사회와는 분명히 성격이 다르다. 연계성이 있을 뿐이다. 역사를 사회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사람은 역사를 경시한다고 봐도 될 것이다. 두 글은 2000년대 역사교육이 사회과에 종속되어 제 역할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비판하였다. 이 비판은 지금도 유의미하게 살펴볼 만하다. 현재 교육은 통합을 내세우고 있다. 지금은 통합의 과도기이며, 2028년부터 시행되는 새 수능 제도에서 모든 학생이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을 응시하게 하는 것으로 통합형 교육을 안착시킬 것이다. 이 통합형 교육이 두 글에서 비판하는 2000년대 역사교육의 문제점을 다시 답습하는 게 아닌가 우려된다.

우리나라의 역사 교육은 강화되기는커녕 최근 10년 동안 역행을 거듭해 왔다. 미국에서 수학한 일부 교육학자들이 종합적·개방적 안목을 기른다는 명분을 내세워 지난 96년 교육과정 개정 때 역사 과목을 일반사회·지리 등과 통합해 버린 것이다. 그 결과 역사 과목의 필수 교육 시간도 줄어 버렸다. 역사, 지리, 일반 사회 등을 통합해 교육하는 것은 미국의 교육과정을 흉내 낸 것이다. 그러나 정작 미국은 이런 통합교육의 잘못을 깨닫고 80년대부터 역사 교육의 분리 쪽으로 돌아섰다. 일본도 우리보다 먼저 미국 사회과 통합교육과정을 모방했다가 90년부터 통합교과목을 실질적으로 분리하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는 남이 실패해 버린 제도를 뒤늦게 좋은 것인 줄만 알고 흉내를 내고 있는 셈이다.
- 유승삼, 위의 글

현재 중·고교에서 역사는 사회과에 포함되어 있고, 7차 교육과정에 들어와서 국사 수업시간도 줄어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세계사 교육은 거의 실종되다시피 하였다. 중학교에서 국사는 별도로 가르치지만, 세계사는 사회과에 통합되어 있다. 세계사는 사회 교과서의 말미에 붙어 있어서, 대부분 세계사까지는 진도가 나가지도 못한 채 중등 과정이 끝나기 일쑤이다.
- 정현백, 위의 글

  지분을 충분히 배당한다면, 역사를 사회의 일부분으로 봐도 상관없다. 하지만 2000년대 역사교육, 그리고 앞으로의 역사교육은 사회과에서 지분이 티끌에 불과하다. 대학에서 역사 계열 학과(사학과, 역사교육과)와 일반사회 계열 학과(사회학과, 경제학과, 지리학과 등)의 관계만 봐도 그 이유를 잘 알 수 있다. 양자의 전공교육에서 접점이 발생하는 부분은 거의 없다. 게다가 일반사회 계열에는 여러 학문이 포함되므로, 역사가 거기에 종속되면 들러리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역사가 사회과에 종속되면 지분을 조금밖에 할당받는 것에 그치게 된다. 통합이라는 명목으로 역사를 경시하고 희생시키는 행위이다. 역사교육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문제 해결 또한 요원해진다. 2000년대 역사교육이 어떻게 경시되었는지도 두 글에서 잘 드러나있다.

역사 과목의 홀대는 이 뿐만이 아니다. 각종 국가고시에서 국사과목이 차례로 폐지되고 있다. 사법고시·입법고시·행정고시 등은 그렇다 치더라도 외무고시에서마저 국사과목이 폐지되는 건 도무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우리 역사도 제대로 모르면서 어떻게 제대로 된 외교 활동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역사 과목을 사회과에 통합한 96년~2001년까지의 제 6차 교육과정 제정 때 국사를 필수로 해야 한다는 주장은 ‘과목 이기주의’로 몰리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통합을 기획한 사람들은 ‘국사교육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해 세계사 교육이 약화됐다’면서 세계사 교육의 강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결과는 국사도, 세계사도 힘없는 더부살이 신세가 됐을 뿐이다.
- 유승삼, 위의 글

마찬가지로 심각한 문제는 역사가 사회과로 통합되어 있는 까닭에, 역사전공자가 역사를 가르치는 비율이 대단히 낮다는 점이다. 교육인적자원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자면, 대도시의 경우 대략 50% 그리고 소도시나 농촌의 경우에는 대략 20% 정도의 역사교사가 역사학 전공자라는 것이다. 과거 교련교사가 180시간 교육을 받고, 사회과교사 자격증을 딴 후 역사를 가르치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최근 역사학계와 역사교사들은 역사과 독립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 정현백, 위의 글

  확실히 2000년대 역사교육을 비판한 글들은 문제의식이 잘 드러나 있다. 두 글은 공통적으로 세계사 교과목 소외 현상을 문제점으로 삼고, 그 문제점의 원인을 우리나라 교육과정과 해외 교육과정 비교를 통해 교육학적으로 분석하여 글의 타당성을 보증하였다. 또한, 첫 번째 글을 쓴 저자는 대학에서 강의를 한 경력이, 두 번째 글을 쓴 저자는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지낸 경력이 있어 전문성도 보증이 된다. 특히 사회과에 종속된 역사교육의 문제점을 비판한 대목은 앞으로의 역사교육도 사실상 사회과에 종속됐을 때 야기될 부정적 영향을 예견하게 하는 점에서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한다. 전반적으로 문제의식의 제기 및 그 근거가 좋고, 충분히 공감 가능하다.

  해법 제시가 있었다면 더 좋을 뻔했다. 아쉽게도 두 글 모두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했다. 세계사 교과목 소외 현상을 문제로 지적한 것은 좋으나, 그 현상이 발생하게 된 원인을 교육과정상 문제라는 거시적인 측면에서만 접근한 감이 있다. 학습자가 세계사 교과목 학습을 왜 기피하는지에 대한 미시적인 측면에서 분석한 내용은 없다. 이는 두 저자 모두 초중등 교육 현장에 몸담은 경험이 없어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거시적인 측면에서 역사교육 문제를 접근하는 것이 제도적 변화를 불러오는 것은 맞지만, 두 글에서 공통적으로 언급한 세계사 교육이 '생존의 문제'로 다루는 자세는 미시적 변화, 즉 개개인의 인식 변화에서 비롯된다. 미시적인 측면에서 역사교육 문제를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세계사 학습이 '왜' 생존의 문제인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느낌이 있다. 이런 점이 필자가 '피교육 세대의 입장'에서 역사교육 문제를 논의하였고, 해법도 모색해보는 배경이 되었다.


2. 2010년대 역사교육 비판에 관한 검토

  2010년대에도 역사교육의 사정이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역사과가 사회과의 종속에서 벗어난 것은 나아졌다고 볼 수 있는 점이다. 다만, '교과목 선택권 확대'가 또 다른 문제를 낳았다. 학생에게 원하는 교과목을 선택해서 공부하는 권한을 주면서 세계사 기피증 현상이 심화되었다. 일본처럼 세계사 공부를 기피할 것을 우려해 필수로 못박아버리는 방식으로 하면, 교과목 선택권 확대라는 원칙에도 어긋나며 다른 교과목들이 '우리도 필수로 지정해달라.'하며 아우성치게 된다. 그야말로 세계사 교육은 딜레마에 빠졌다.

당국자에게 세계사 교육 실종에 대해 물었더니 그도 "큰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제는 해결 방법이 없다고 했다. 세계사를 다시 필수과목으로 바꾸는 것은 다른 과목 이해 집단의 반발 때문에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는 "교육과정과 체계를 전반적으로 뜯어고치는 기회가 아니면 세계사 교육을 다시 살리기 어렵다"고 했다.
- 양상훈, 세계사 교육은 아예 없어지고 있다(2015.10.22)

  2010년대에도 세계사 기피증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이 시기에 쓰인 두 글에서도 세계사 교육은 위기에 빠졌음을 지적하며, 학생들 사이에서 세계사 교과목 학습에 대한 부담감이 크다는 점, 교육 현장에서 세계사 학습의 기회가 많지 않다는 점을 그 원인으로 지목하였다. 앞서 본 2000년대에 쓰인 사설은 세계사 교과목 소외 현상의 원인을 거시적 측면에서 접근했다면, 2010년대에 쓰인 사설은 그 원인을 미시적 측면에서 접근함으로써 문제점에 대한 접근 양상이 발전되었다. 특히 두 번째 글은 '저자도 교육 현장에서의 세계사 학습은 어려웠다.'는 개인의 경험을 공유한 점이 좋다. 필자가 이 시리즈의 2장을 쓸 때 영감을 얻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한편 우리 세계사 교육의 안타까운 현실에 대한 원인을 필수나 선택이냐, 전문교사의 부족 같은 객관적 여건으로만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 필자는 세계사 전공자의 한 사람으로서 적어도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 내용을 개선하기 위한 학계와 현장 교사들의 공동 노력이 절실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개선의 목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세계사가 다른 사회과 선택과목에 비해 학습부담이 크다는 선입견을 바꾸는 것이다. 방법은 동어반복처럼 자명하다. 부담이 크지 않은 세계사 교과서를 개발하는 것이다.
- 김경현, '역사교육 강화방안'과 세계사 교육의 위기(2011.6.8)

필자의 고교 시절 세계사 공부는 따분하고 힘들었다. 그래도 그게 평생 상식의 바탕이 됐다. 다만 교과서와 가르치는 방식에 대한 아쉬움은 있다. 나중에 역사 공부의 중요성과 재미를 알게 되면서 아쉬움은 더 커졌다. 국민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상식과 교양을 친숙한 방식으로 제공한다는 생각이었으면 쳐다보기 싫은 교과서를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다르지 않기에 세계사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없다고 본다.
- 양상훈, 위의 글

  '한국 친화적인 세계사'는 무엇일까? 분명히 해외의 역사교육을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하면 괴리감이 심할 것이다. 그래서 세계사의 한국화는 꼭 필요하다. '세계사가 우리와 밀접한가?'에 대한 답변을 교육이 충분히 설명해내기 위한 과정(이 시리즈의 2장 참고)이기도 하다. 이에 필자는 5장에서 '역사의 횡적 계열성'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사, 동아시아사, 세계사라는 삼분법의 종적 계열성식 구분을 관통하는 역사 기제가 필요하다. 요즘 서점에 가면 '문화사'를 주제로 한 교양 세계사 도서를 종종 발견할 수 있는데, 역사의 횡적 계열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 볼 수 있겠다. 더불어 요즘은 '접촉 방식의 다양화'가 화두이다. SNS, 유튜브 같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서 세계사와 관련한 콘텐츠를 제작하는 행위도 한국 친화적인 세계사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싶다. 교육 현장 바깥에서 일어나고 있는 세계사와 관련한 대중적 인식 변화가 한국 친화적 세계사 교육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방안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질문에 대해 하나로 정해진 정답은 없다.

  2009 개정 교육과정 세계사는 한국 친화적인 것에는 실패하였다. 2009 개정 교육과정 세계사에 대해 우려한 김경현 교수님의 예측이 옳았다. 여러 지역의 역사를 고루 배워, 세계사를 '서구 중심의 역사'로 인식하지 않게 하고 '각 지역의 보편적 발전 법칙'이 있었음을 깨닫게 하자는 취지는 좋았다. 하지만 한국 현실과는 썩 맞지 않았다. 학생들 사이에서 세계사 학습을 꺼리는 원인은 매우 단순하다. 학생들은 시험 대비에 있어서 효율을 원한다. 효율이 높아지려면 개념 학습을 빠르게 끝내고, 개념 학습 정도를 점검하는 문제풀이 등으로 숙련도를 높여야 할 것이다. 세계사에는 학습량 부담이라는 큰 족쇄가 채워져 있다. 2009 개정 교육과정 세계사는 세계사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려는 해외 학계의 변화를 우선시한 나머지, 학생들이 학습량 부담으로 세계사 학습을 기피하는 한국의 사정을 간과한 게 아닌가 싶다. 교사 입장에서도 2009 개정 교육과정은 한국 친화적이지 않다. 동아시아, 서양 외 지역의 역사를 자신 있게 가르칠 교사가 얼마나 되겠는가? 필자 대학 사학과에는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연구하는 교수님이 계신다. 그 교수님도 국내에서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은 손에 꼽는다고 말씀하셨다. 학계도 일명 '제3세계'라 불리는 아프리카,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동남아시아 지역을 잘 연구하지 않는 분위기인데, 교육 현장의 사정은 말할 것도 없다. 2009 개정 교육과정 세계사는 한국에는 시기상조였다.

혁신의 기본 취지는 서구 혹은 중국 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세계 여러 ‘지역(region)’의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세계사를 모색하는 것이었다고 작된다. 그 동안 세계사 서술의 기본 틀이던 고대-중세-근대의 3시대 구분법 대신 ‘지역’을 대단원의 키워드로 채택했으며 그에 따라 전에는 ‘역사 없는’ 곳으로 취급되던 아프리카,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동남아시아 같은 지역의 역사에 적당한 지면이 할애되었다. 유럽 및 서양사와 주변화(provincialization)가 필연적으로 뒤따랐다. 아울러 여러 지역문화를 대등하게 다루려는 의도에서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지역 간 ‘교류와 교역’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우리 식의 세계사를 모색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가 여러 모로 1990년대 이래 미국에서 유행하는 소위 ‘새로운 세계사’의 방법과 특징을 닮게 된 것은 아이러니라고 생각된다.

2007~2009년도의 개정 집필지침에 의해 쓰인 세계사 교과서가 아직 교육 현장에 닿지 않은 가운데 너무 때 이른 평가일지 모르지만, 분명 ‘학습 부담의 경감’과는 조화를 이루기 어려워 보인다. 세계 여러 지역을 대등하게 다루고 지역 간 교류와 교역을 강조함으로써 학습할 정보량이 크게 증가했다. 게다가 다문화주의적 접근방식 때문에 역사적 흐름보다는 다양성에 역점을 두는 서술방식을 취하여 세계사를 역사책으로 읽기 어렵게 만드는 문제가 있다. 이 점을 감안하면 과연 ‘중심을 해체하는’ 세계사란 것이 가능한가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 김경현, 위의 글

  2015 개정 교육과정 세계사는 한국 친화적이기 위해 노력하였다. 다르게 말하자면, 2009 개정 교육과정을 전면적으로 뒤집었다. '학습량 부담 경감'을 교육 목표의 골자로 삼았고, 아프리카,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동남아시아 역사에 대한 서술을 대폭 삭제하였다. 사실 2009 개정 교육과정 세계사가 진정한 세계사라 볼 수 있겠지만, 한국의 현실을 고려해서 2015 개정 교육과정 세계사로 타협을 본 것이다. 이 타협의 결과도 긍정적이라고 보기에는 힘들다. 개념 학습의 진입 장벽은 낮췄으나, 교육 평가의 요구 수준이 높아지는 문제가 발생(이 시리즈의 3장 참고)하여, 세계사 기피증 문제 해결이 요원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학계 연구 성과의 지속적 축적 및 발전, 역사 콘텐츠 생산의 증가 및 다변화가 이루어진 만큼, 아프리카,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동남아시아 역사 서술 배제 방침을 언제까지 고수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아래 글이 우리나라 세계사 교육이 언젠가는 2009 개정 교육과정의 방향으로 되돌아가야 할 필요성을 잘 보여준다. 2015 개정 교육과정 세계사는 한국 친화적이긴 하나, 세계사를 취사 선택했다는 문제는 피해갈 수 없다.

필자 세대의 사람들에게도 이슬람과 중앙아시아 역사는 공백처럼 뚫려 있다. 저 광활한 땅에 사는 수많은 사람, 그들이 이룩했던 놀라운 문명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절감할 때마다 우리나라의 역사 교육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 양상훈, 위의 글

  2010년대 역사교육을 비판한 글들은 문제의식의 접근 방식을 새롭게 하였다. 김경현 교수님의 글은 한국 친화적인 세계사 교과서는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고, 양상훈 기자님의 글은 세계사 교육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솔직하게 드러냈다. 또한 공통적으로 세계사 교과목 소외 현상의 원인을 학습자의 입장에서 찾으면서 2000년대 역사교육을 비판한 글에서 없었던 '미시적 측면에서의 문제점 분석'도 이루어졌다. 이렇게 역사교육에 대한 기존의 문제의식이 계승되면서 논의의 발전이 이루어졌다.

  역시 해법 제시가 부족한 것이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특히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양상훈 기자님이 어떻게 스스로 역사 공부의 중요성과 재미를 알게 되었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었던 부분이다. 이를 언급했다면, 학습자 입장에서 왜 세계사 공부에 어려움을 겪고 어떻게 흥미를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좋은 영감을 던져줬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2장에서 세계사 공부에 왜 흥미가 생겼는지를 솔직하게 설명한 바가 있다. 그래도 세계사를 공부하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언급하면서 아쉬운 부분을 달래주긴 하였다. 김경현 교수님도 한국 친화적인 세계사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예시를 밝혔다면, 윤곽을 그리기 어려운 질문에 대해 윤곽을 그리는 지침이 되어줬을 것이다. 예컨대, 한국사와 접점이 없는 서양 고대사를 어떻게 한국에서 교육할 것인가에 대한 지침이 있겠다. 참고로, 김경현 교수님은 서양 고대사 분야의 권위자시다.


3. 마치며

  이 글은 지금까지 필자의 논의가 새로웠는지를 점검하는 글로, 일종의 '연구사적 검토', '선행연구 검토'에 해당한다. 2000년대~2010년대의 사설을 살펴보면서 세계사 교육 문제는 단기의 문제가 아닌 장기의 문제이며, 계속해서 논의의 발전 및 심화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소개된 사설은 필자보다 훨씬 전문가이신 분들이 쓰신 글로 신뢰성도 어느 정도 보증이 된다. 필자는 기존 역사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을 수용하면서, '새로운 관점', '실질적 해법 모색'이라는 요소를 가미한 일련의 글들을 통해 '2020년대의 역사교육 문제에 관한 비판적 담론'을 구축하는 중이다. 양상훈 기자님의 글에 달린 댓글을 보면, 그의 의견에 지지하는 댓글이 꽤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역사교육 문제는 화두를 불러일으키기 좋은 주제인데, 현 시점에서는 그 문제에 대해 논하고 의견을 남기는 행위가 오프라인/온라인을 불문하고 사실상 없어서 안타까웠다. 이런 와중에서 필자가 도전적으로 역사교육 문제에 대한 글을 써왔는데, 반응이 예상외로 좋아 놀랍고 감사할 따름이다. 이 시리즈가 완성도 있는 글들의 체계적인 집합으로 완결낼 수 있게끔 계속 필자의 의견을 개진하겠다.


4. 부록

- 서두에서 말했던 대로 기존 의견을 하나로 종합하는 공간을 부록에 마련하였다. 이 글에서 미처 밝히지 못한 사설들의 나머지 내용을 읽어보면 좋겠다.

2000년대 역사교육 비판 사설

https://www.localnaeil.com/News/View/128806

https://www.seoul.co.kr/news/editOpinion/2005/04/27/20050427031004

2010년대 역사교육 비판 사설

https://blog.naver.com/correctasia/50113096251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0/21/201510210447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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