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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를마뉴 Oct 25. 2024

험로에 놓인 교육 소수자

새롭게 바라보는 역사교육 문제 3장

  이 장에서는 외면받는 세계사 교과목을 선택해 공부하는 학생들이 겪는 어려움을 얘기하고자 한다. 세계사 교과목은 대다수의 학생이 외면하고 기피하는 대상이지만, 그럼에도 소수의 학생들은 이 교과목을 선택해서 공부하고 있다. 지금부터 필자는 그들을 '교육 소수자'로 지칭하겠다. 비주류로 표현되는 소수자는 주류로 표현되는 다수자로부터 벗어나 있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등의 갖은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소수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우선 소수자들 스스로 끊임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서 자기들에게 관심을 갖게 하고, 문제인식을 환기해야 한다. 여기서 그치면 안 된다. 그 목소리를 듣고 주류 사회에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조직(집단)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야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교육 소수자를 대변하는 조직은 있었는가? 우리나라 역사교육에 던지고 싶은 질문이다. 여기서 '대변'은 교육 소수자들의 공부가 '교육 평가'라는 시험대에서의 성공으로까지 이어지게 도와주는 과정을 말한다. 지난 2장에서 시험을 위한 학습 분위기가 문제이고 그것을 바꾸는 게 근본적인 변화임을 밝혔지만, '지금 당장 가능한 변화'도 필요하다. 근본적인 변화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시험이 대입을 결정하는 현실이므로 교육 소수자들이 세계사 교과목을 선택하고 공부를 한다면, 시험이라는 심판대에 오르기까지 어려움을 줄여주어야 할 것이다. 시험을 대비하는 모든 학생에게는 두 가지의 수요(Needs)가 발생한다. 하나는 '개념을 잘 가르쳐주는 교사 및 강사'이고, 다른 하나는 '공부한 개념을 확인할 수 있는 연습용 문제'이다. 전자와 후자는 상호 보완적 관계이다. 전자를 통해 개념을 충실히 학습했으면, 후자를 통해 개념을 온전히 이해했는지를 학생 스스로 점검할 수 있다. 혹은 후자를 통해 개념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게 드러났으면, 다시 전자를 통해 부족한 개념을 보충할 수 있다. 교육 소수자에게는 그 후자가 부족하다. 그것이 이 장에서 핵심적으로 논의할 사안이다.


1. 시험의 고도화

  고도화는 보통 좋은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이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고도화는 '정도를 높임'이라는 뜻이다. 즉, 수준의 향상이다. 지금의 일상도 고도화의 결과물이다. 예컨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도 기술의 고도화가 낳은 산물이지 않은가. 그런데 시험의 측면에서는 고도화를 좋은 의미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 같다. 교육 소수자들이 접하는 '고도화된 세계사 시험', 평가원 모의고사와 수능은 걸음마를 하는 아기에게 뛰라고 하는 것처럼 항상 수험생보다 몇 수 위에 있다. 이것이 수험생의 번뇌를 낳게 하며, 연습용 문제를 갈구하는 원인이다.

  사실 중등교육에서의 세계사 시험은 고도화를 목표로 삼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배울 내용부터가 방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5 개정 교육과정 세계사 교과서의 집필 원칙도 학습량 부담 경감을 주요 골자로 정한 것이다. 그 원칙에 따르면, 교육 평가 방식도 개념을 충실히 학습했는지를 점검하는 수준에 그치는 게 맞다. '학교에서 수업을 충실히 들으면 풀 수 있게 문제를 출제하였다.'라는 평가원의 수능날 브리핑처럼. 그러나 그 브리핑은 빗나간 적이 들어맞은 적보다 많다. 요근래 평가원의 세계사 시험도 2015 개정 교육과정의 목표가 무색하게 고도화된 교육 평가를 하고 있다. 개념 학습의 진입 장벽을 낮추려 하였으나, 교육 평가의 요구 수준은 도리어 높아지는 것이다. 이 또한 학생들이 세계사 학습에 거부감을 느끼는 주요한 요인이다.

  설상가상으로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다. 교육 소수자들이 고도화된 시험에 적응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딜레마가 발생한다. 고도화된 시험에 적응한 교육 소수자도 기겁할 정도로, 평가원이 더 고도화된 시험을 출제하면 '변별력 확보'라는 목표를 달성했을지언정 교육 평가의 본래 취지가 상실되고, 그렇다고 평이한 시험을 출제하면 교육 평가의 본래 취지를 지켰을지라도 변별력 확보에 실패한다. 출제자 입장에서 곤란할 노릇이다. 이 딜레마는 비단 역사 과목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수능의 제도적 문제이며, 교육 현장에 오래 몸담은 사람이라면 전부 알고 있는 사안이다. 그럼에도 필자가 이를 얘기하는 이유는 수능의 주요 교과목인 '국영수'에 대한 리뷰는 주목하지만, 응시자가 1만 명대를 웃도는 세계사 시험에 대한 리뷰에는 주목하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 소수자와 평가원 간의 고도화 싸움은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지금의 세계사 교육은 저변 확대가 절실하다. 세계사 교육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관심을 갖는 사람이 늘어나야 한다. '평가'라는 틀만 벗어나면 저변 확대에 초점을 둔 세계사 교육을 할 수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 교육에서 평가가 학생의 성취를 판단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버린 지 오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교육은 어떤 교과목에 대해 학생의 진정한 관심을 이끌어 내고, 그로 인한 성장 동력을 제공하는 것은 후순위로 밀려나 있다. 학생이 어떤 분야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 하더라도, 결국 평가라는 시험대를 통과하지 못하면 그 재능이 묻히는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 교육의 구도를 아주 간략하게 정리하면, '평가에 초점을 둔 교육 <-> 평가에 목숨을 걸고 대비하는 수험생'으로 볼 수 있겠다. 이 구도가 '평가의 고도화'를 낳는다. 그것이 교과목 자체에 흥미를 이끄는 것부터 어려운 상황에 놓인 세계사 교육에는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렇다고 고도화를 후퇴시켜서는 안 된다. 어찌 됐든 고도화는 수준의 향상을 이끈다는 점에서 좋은 효과가 존재한다. 단지 고도화가 평가 부분으로만 치중된 게 문제일 뿐이다. 고도화를 교수법, 콘텐츠 등으로 확산시켜야 한다. 그것이 세계사 교육에 필요한 저변 확대이다. 교육 소수자에게는 고도화된 학습 도구가 필요하다. 그래야 고도화된 시험에 대비하는 데의 어려움을 줄일 수 있다. 또한, 입문자에게도 고도화된 학습 도구의 존재는 세계사 교과목을 끝까지 공부할 수 있는 믿음을 심어줄 수 있다. 현재 교육과정 하에서는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자, 지금 당장 가능한 변화이다. 그런데 지금의 세계사 교육에는 학습의 고도화를 돕는 도구가 부족하다. 교육 소수자들은 고도화된 시험을 '알아서'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시험의 고도화가 후퇴되지도 않는 상황에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세계사 교과목이 어찌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겠는가?


2. 학습의 고도화 도구

  학습의 고도화를 돕는 도구는 무엇일까? 명확하게 정해진 답은 없으며, 교과목별로 다를 것이다. 이 글에서는 '역사교육의 관점'에서 나름의 답을 내려보고자 한다. 교육 소수자를 위한 학습 도구가 없지는 않다. 아니 오히려 많다. 서점에서 '고등 사회 문제집' 혹은 '수능 기출' 코너에 가면 교과서 출판사별로 연습용 문제집이 쫙 깔려 있다. 수록된 문제 수도 많다. 하지만 기존의 연습용 문제집은 고도화된 시험을 대비하는 데 그렇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고도화된 시험을 대비하는 목적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시험'으로 대표되는 교육 평가는 두 개의 큰 축을 이루고 있다. '내신'이라 불리는 학교별 중간고사 및 기말고사, '모의고사, 수능'이라 불리는 교육청 및 평가원이 출제하는 시험이 그 축을 이룬다. 필자는 이 두 축이 괴리되지 않아야 한다고 본다. 그게 괴리되지 않아야 평가원의 수능날 브리핑이 참이 된다. '현역'이라 불리는 고등학생들은 보통 수능 준비보다는 내신 성적 및 비교과(과목별 세부능력특기사항, 동아리 활동 등)를 챙기는 것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래서 엄밀히 따지자면, 공교육에서의 교육 평가만으로도 교육청 및 평가원의 교육 평가에 대비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야 하고, 그래야만 한다. 그랬다면 필자가 굳이 시간을 들여 역사교육 문제에 대해 논의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현재 교육 평가의 두 축은 괴리된다. 특히 교육 소수자에게는 그 괴리가 더욱 심하다.

  교육 소수자는 내신을 통한 평가를 선택해도, 수능을 통한 평가까지 선택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지난 장에서 고등학교에서 세계사 교과목을 수강한 필자 또래의 학생은 60여 명이었다고 말했는데, 모의고사 및 수능으로 세계사 교과목을 응시한 학생은 그보다 더 적은 10명 남짓에 불과하였다. 이 현상을 비유하자면 손님들이 신장개업한 식당을 방문했는데, 재방문 의사를 표시한 손님이 '20% 미만'인 것이다. 세계사 교과목을 선택한 교육 소수자들 사이에서도 내신 관리 목적으로만 공부하는 '단기 학습자'와 수능 응시 목적으로까지 공부하는 '장기 학습자'로 갈리는 상황이다. 단기 학습자가 무조건 장기 학습자가 되어야 하는 아니다. 외면받는 세계사 교과목에서는 단기 학습자의 존재만으로도 반가운 일이다. 주목할 문제는 단기 학습자가 장기 학습자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이다. 기존의 세계사 교과목 연습용 문제집은 교육 평가의 두 축 중 '내신'에 초점을 맞춰 제작된 것이 대부분이다. '수능'에 초점을 맞춰 제작된 것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이 점이 단기 학습자가 장기 학습자로 발전하는 것을 저해하는 요인이며, 학습의 고도화를 돕는 도구의 부재로 나타나는 문제점이다.


    '교육 다수자'를 노리는 시장 경제의 논리도 문제에 일조한다. 공교육과 달리 사교육은 철저히 시장 경제의 논리로 돌아간다. 사교육에서는 학습의 고도화를 돕는 도구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안타깝게도 사교육마저 세계사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더 큰 이익을 창출하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학생이 대입을 위해 꼭 공부해야 하는 주요 교과목인 '국영수' 1타 강사를 육성하고, 여러 노하우가 담긴 교재를 출판하는 게 사교육에서는 훨씬 더 이득이다. 사교육은 봉사하지 않는다. 금전적인 대가를 매개로 하는 이해관계가 반드시 수반된다. 그러니 교육 소수자, 그 중에서도 장기 학습자가 되기를 원하는 학생은 EBS 연계 교재(수능특강, 수능완성) 학습과 스스로 평가원 기출문제 분석을 통한 '고도화 코드(출제 경향) 읽어내기' 말고는 효과적인 학습 방안을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공교육의 내신 평가의 운용 방식이 천차만별인 것 또한 문제이다. 학습 분위기가 있는 학교에서는 평가원 모의고사 및 수능보다 더 고도화된 내신 평가를 운용하고, 반대로 그렇지 못한 학교는 단순암기만 해도 대부분의 문제를 풀 수 있는 학력고사식 내신 평가를 운용하는 경향이 있다. 필자 고등학교의 세계사 내신 평가는 후자의 방식으로 이루어졌는데, 그럼에도 시험 평균 성적이 40점대, 더 낮으면 30점대였다. 단기 학습자에겐 유리하지만, 장기 학습자에겐 불리한 내신 평가 구조였다. 사실 그보다도 더 근본적인 문제는 내신 평가의 운용 목적 자체가 모의고사 및 수능과 결을 달리한다는 점이다. 한 교과목을 '네 번의 시험'에 걸쳐서 평가하는 내신은 각 시험마다 시험 범위를 정해두기 때문에, 단기 학습 평가에 가깝다. 이와 달리 모의고사 및 수능은 '한 교과목 전체의 학습 능력'을 '사고력'과 결부하여 평가하기 때문에 장기 학습 평가이다. 그러므로 단기 학습 평가를 잘했던 교육 소수자도 장기 학습 평가를 어려워하는 상황을 겪는다. 단기 학습에서 장기 학습으로 나아가는 고도화된 학습 도구가 필요한 이유이다.


   필자는 학습의 고도화를 돕는 도구 중 하나가 '잘 짜인, 질적인 모의고사'라고 생각한다. 일명 '사설 모의고사'라 불리는 것이다. 지나치지만 않다면, 개념 공부와 교육 평가 사이의 적절한 아교로 역할한다. 위의 논의는 단순히 필자가 '제3자의 관점'에서 문제를 고찰한 게 아니라, 직접 교육 소수자의 입장에 있으며 느낀 문제이기도 하다. 사교육에 몸담은 이유 또한, 교육 소수자가 같은 교육 소수자를 진정으로 돕는 길이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몸담은 결과, 필자가 교육 소수자의 입장에 있었을 때보다 여건이 나아져서 보람을 느낀다. 비록 장사치라는 인식이 강한 사교육의 테두리 안에 있었지만, '교육 소수자를 돕는다.'는 마음가짐은 변하지 않았다. 교육 소수자였던 사교육 업계 경험자의 솔직한 고백이다. 교육은 다수뿐만 아니라 소수도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의 교육은 소수자에게 진심인가? 이 질문을 남기며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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