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의 여정 (3) - 르네상스 도시 피렌체 관람기 I
이탈리아에서의 셋째 날 일정은 남진의 연속이었다.
여행지를 구경하는 시간보다
버스로 이동하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
둘째 날, 베네치아 여행을 마치고
근교 도시인 비첸차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숙소는 Hotel & Residence Castelli라는 4성급 호텔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피렌체 여행을 마치고
로마 근교 도시인 피우지로 이동해서
Hotel Italia라는 4성급 호텔을 3일간 숙소로 이용했다.
비첸차에서 피우지까지의 거리는 약 600km이다.
중간에 피렌체를 여행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탈리아에서의 셋째 날은 그야말로 대장정이었다.
그런데 그 대장정이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피렌체를 여행했기 때문이다.
베네치아에 있었을 때처럼
'생각과 시간이 바뀌는 느낌'을 피렌체에서도 받았다.
그 느낌이 여행의 원동력을 제공했을 것 같다.
피렌체는 굉장히 역사적인 도시이다.
피렌체 출신의 걸출한 인물이
『신곡(La Divina Commedia)』을 쓴 시인
단테 알레기에리(Durante degli Alighieri, 1265~1321)와
『군주론(il Principe)』을 쓴 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 1469~1527)인 게 이를 증명한다.
두 인물의 저작을 읽어보진 않았더라도, 이름 정도는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피렌체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이끈 중심 도시이기도 했다.
문예가 크게 부흥했고, 여러 유산이 오늘날까지 남아있다.
대표격을 꼽자면,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Cattedrale/Duomo di
Santa Maria del Fiore)이겠다.
피렌체의 유구한 전통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간단하게 답변하자면 '돈' 덕분이다.
피렌체 역시 중세 시대에 번영한 이탈리아 도시 중 하나였으며,
15세기 이후에는 메디치 가문(Medici)이 이곳을 완전히 장악했다.
메디치 가문의 힘은 금융업을 통한 부로 얻어졌다.
그 부를 자기 가문을 위해서도 썼겠지만, '문예 후원'을 위해서도 썼다.
문예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에게도
메디치 가문의 존재는 큰 행운이었을 것 같다.
(지금도) 문예로 밥벌이하기 힘든 시대에,
누군가 문예에 집중하게끔 돈을 후원해준다면
없던 재능도 솟아나지 않을까?
피렌체는 '자본이 문화를 얼마나 발전시키는지'를
보여준 실험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듯 피렌체는 굵직한 역사와 문화 이야기가 담긴 도시이다.
필자는 서양사를 좋아해 공부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피렌체에는 그렇게 관심을 안 가졌다.
피렌체의 역사와 문화를 모자이크처럼 부분적으로 공부한 영향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피렌체를 여행하면서,
여행을 마친 뒤 여러 책을 되짚고 새 책을 찾아 읽어보면서,
흩어진 피렌체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지식이 하나로 합쳐졌고
그제서야 피렌체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이래서 역사는 책 속에 골몰하지 않고
현장의 모습을 직접 봐야 진가를 제대로 아는 것 같다.
역사학도의 솔직한 고백이다.
피렌체는 산으로 둘러싸인 도시이다.
인터넷,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피렌체 풍경은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이다.
필자가 어렴풋이 알아온 피렌체 풍경이기도 하다.
그 모습의 출처를 드디어 알게 되었다.
피렌체 남쪽 언덕에 미켈란젤로 광장(Piazzale Michelangelo)이 있다.
그곳에서 피렌체를 내려다보면 우리가 아는 그 모습이 펼쳐진다.
오밀조밀하게 붙어있는 주황색 계열의 건축물들,
그 가운데 솟아있는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도시 주변으로 흐르는 아르노 강(Fiume Arno),
도시 뒤편에 자리를 지키는 산이 조화를 이룬다.
필자를 비롯한 일행 모두가 그 경치에 감탄했다.
언덕을 내려가면 피렌체의 전체 풍경이 사라지는 대신,
세밀한 풍경이 드러난다.
제일 먼저 마주한 피렌체의 세밀한 풍경은
아르노 강변을 따라 펼쳐진 건축물들과
그라찌에 다리(Ponte alle Grazie),
베키오 다리(Ponte Vecchio)의 모습이었다.
두 다리 중 베키오 다리는 역사적 가치가 상당히 높은 다리이다.
아르노 강에 있는 다리들은 본래 중세 시대에 지어져 유서가 깊었다.
그런데 제2차 세계 대전이 전개되는 중인 1944년,
독일군에 의해 아르노 강의 유서 깊은 다리들이 파괴되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베키오 다리만은 살아남았다.
베키오 다리 양옆으로 있는 카라이아 다리(Ponte alla Carraia),
산타 트리니타 다리(Ponte Santa Trinita), 그라찌에 다리는
모두 독일군의 손길에 살아남지 못했다.
이렇게 베키오 다리의 역사적 가치는 순식간에 높아졌다.
다만, '천운'이 따른 베키오 다리도 자연재해라는 '천벌'은 피하지 못했다.
1966년 아르노 강에서 홍수가 발생했을 때는
재건한 다른 다리들과 달리, 이 다리는 꽤 큰 손상을 입었다(참고할 글).
그래도 완전히 파괴되지 않은 건 다행이다.
피렌체의 골목을 들어가니 또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현대에서 중세 시대로 시간 여행이 시작되었다.
골목의 건축물 하나하나가 '몇백 년은 자리를 지켰어요.'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시간 여행을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배를 채워야 했다.
오전 8시에 비첸차의 숙소에서 나와 3시간을 내리 이동해
피렌체에 도착했으니 딱 점심을 먹을 때가 되었다.
이탈리아를 여행한 지 3일 만에 파스타를 처음으로 먹었다.
점심을 먹은 뒤 시간 여행을 재개했다.
점심을 먹은 레스토랑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거리에
단테의 생가가 있었다.
필자는 문학을 전공하지도 않고, 딱히 관심도 없어
단테를 깊이 있게 알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7~8세기 전에 활동한 피렌체 출생 시인의 생가가
지금도 멀쩡히 남아있다는 사실은 큰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전날 베네치아 여행에서의 하이라이트는
수상택시를 타고 대운하를 따라
도시의 전체적인 모습을 구경하는 것이었다면,
피렌체 여행에서의 하이라이트는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과
시뇨리아 광장(Piazza della Signoria) 일대의
웅장한 건축물들을 구경하는 것이었다.
필자의 관심도 여기에 향해 있었다.
그 하이라이트에 담긴 역사 이야기가 꽤 많다.
피렌체의 역사와 문화는 꽤 굵직하다.
그래서 이 글은 피렌체 여행의 서막으로 매듭짓고,
다음 글에서 본론을 얘기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