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의 여정 (2) - 물의 도시 베네치아 관람기
이탈리아에서의 둘째날이 밝았다.
첫날 밤을 보냈던 밀라노와 작별하고 베네치아로 향했다.
이탈리아 영토는 생각보다 크고 넓다.
동서로 횡단하든, 남북으로 종단하든 이동 시간이 꽤 걸린다.
밀라노와 베네치아는 같은 북이탈리아의 도시이지만,
동서 방면으로는 약 270km 떨어져 있다.
자동차로 이동하면 3시간 정도 걸린다.
밀라노에서 베네치아로 '횡단'하는 거리가 어느 정도냐면,
베네치아에서 피렌체, 피렌체에서 로마,
로마에서 폼페이, 나폴리에서 로마로 '종단'하는 거리와 맞먹는다.
그만큼 이탈리아 영토가 동서로도 넓고, 남북으로도 길다는 증거이다.
지난 글에서 이탈리아의 '세계적 이미지'를 언급했는데,
베네치아도 그중 하나에 포함될 것 같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면 꼭 가봐야 하는 곳으로 명성이 높다.
필자가 책으로 배운 베네치아는
중세 시대 지중해 무역으로 번영한 도시,
『동방견문록』을 쓴 마르코 폴로(Marco polo, 1254~1324)의 출생지,
19세기 이탈리아 통일 과정에서 뒤늦게 합류한 도시 정도였다.
베네치아에 큰 관심을 갖지도 않았고,
그저 교과서적인 지식만으로 그 도시를 평면적으로 알아왔다.
그런데 베네치아를 실제로 가보니,
'사고 방식이 완전히 바뀌는 기분'을 경험했다.
베네치아의 도로는 '물길'이다.
좁은 골목길과 큰길의 역할을 모두 물길이 수행한다.
물길 옆으로 중세 시대의 기억을 간직한 건축물이 들어서 있다.
베네치아의 땅은 곧 물이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인류의 터전이 되어오고, 역사를 남긴 공간은 '땅'이다.
땅이라는 기반 위에 인류가 서있다.
그 자연적인 기반이 없었다면,
인류의 생존 및 발전 방향은 대단히 다르게 흘러갔을 것이다.
하지만 지구에는 땅보다 바다의 비중이 더 크듯이,
물 역시 인류의 생존과 역사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인간은 물을 마셔야 생명을 유지하고,
물을 활용해야 농작물을 길러내며,
물을 건너야 다른 세상의 인간을 만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인류가 물보다 땅을 익숙하게 여기는 이유라면,
정착 여부의 차이, 활동의 자유도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보다는 땅에 정착지를 마련하거나 여러 활동을 하기 쉽다.
땅을 밟으며 사는 게 익숙하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겨왔던 사람이
땅의 역할을 물이 대신하는 광경을 보면 놀라지 않을까?
필자가 그랬다.
베네치아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이루는 섬의 갯수는 118개이고,
그 섬들을 연결하는 다리는 무려 400여 개에 달한다.
베네치아의 모든 섬을 일일이 구경하려면
2~3일의 시간과 강인한 체력이 필요하다.
물길이 닿지 않는 베네치아의 골목길은 걸어다녀야 한다.
필자가 베네치아를 구경한 방법은 두 가지였다.
걸어다니며 그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문화유산인
산 마르코 대성당(Basilica di San Marco)과 그 일대를 구경했고,
수상택시를 타며 S자 형태의 대운하(카날 그란데, Canal Grande)를 따라
베네치아의 전체적인 모습을 훑어봤다.
베네치아를 잠깐 관광할 목적으로 간다면, 수상택시는 반드시 타야 한다.
그 공간을 확실히 이해하고 머릿속에 남기는 건 그만한 게 없다.
가이드도 그 점을 강조했다.
곤돌라를 타며 좁은 물길을 따라 베네치아의 골목길을 구경하는 방법도 있다.
이것도 분명히 이점은 있다.
골목길에는 많은 인파가 몰려 혼잡한데,
곤돌라를 타면 혼잡을 피해 여유롭게 골목길의 풍경을 볼 수 있다.
다만, 직접 골목을 걸으며 혼잡을 즐기는 것도 묘미이긴 하다.
베네치아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절차가 필요하다.
육지의 메스트레(Mestre)에서 베네치아의 산타 크로체(Santa Croce)를 잇는
리베르타 다리(자유의 다리, Ponte della Libertà)를 건넌 뒤,
여객선을 타야 118개의 섬이 집합을 이루는 베네치아의 내부에 도달한다.
베네치아의 출입구인 산타 크로체는 우리나라의 인천과 분위기가 비슷하다.
그런데 배를 타고 베네치아 내부로 들어오게 되면,
현대에서 중세 시대로 '시간을 거스르는' 느낌을 받는다.
베네치아 내부로 진입하는 과정을 담은 사진과 동영상을 통해
독자 여러분도 그 느낌을 같이 경험해보자.
시간을 거슬러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San Marco)에 도착했다.
두 명의 현지 가이드가 마중나와 있었다.
필자는 호탕하고 유머러스한 남성 가이드와 동행했다.
(베네치아를 배, 뇌, 치아로 외우라는 설명이 기억에 남는다.)
가이드의 설명을 통해 잘 몰랐던 베네치아의 역사와 문화를 더 알아가게 되었다.
베네치아 내부의 모습을 감상하기 전에, '중세 도시'의 특징을 잠시 얘기하겠다.
지금도 농촌과 도시는 경관 및 일상생활의 측면에서 대비된다.
중세 유럽 또한 농촌과 도시가 대비되는 특성을 가진 시대였다.
베네치아의 풍경은 확실히 농촌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베네치아는 중세 유럽 사회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요소 중 하나인
'장원'이라는 지위를 갖지 않고, '도시'라는 다른 지위를 갖게 되었다.
장원은 영주의 지배력이 미치는 농촌이라면,
도시는 영주의 지배력을 상인이 대신하는 공간이었다.
상인이 주축이 되는 중세 도시는 '독립성'과 '자유'를 지니게 되었다.
영주에게는 좌시할 수 없는 요소였다.
도시민들은 영주에 맞서거나 금전적 대가를 제공하는 방법으로
정치적 권리를 획득하기도 했다.
도시민이 자치를 하는 도시, 코뮌(코무네, Commune)이 등장하게 되었다.
코뮌의 활력은 광장에서 빛을 발했다.
광장은 상공업 활동, 집회, 범죄자 처형, 축제 등
다양한 사회적 활동이 전개되는 중세 도시의 중요한 '공공 공간'이었다.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광장(Piazza San Marco)도 그러한 공간이었다.
이러한 연유로, 한때 코뮌은 '봉건제 속의 섬', '민주주의의 토대'로 설명되었다.
하지만 최근들어 그 설명은 설득력을 잃게 되었다.
코뮌의 자치가 반드시 민주적으로 행해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베네치아 역시 '공화국'이었지만, 정치는 도시 귀족이 관장하는 영역이었다.
(이 내용과 관련해 필자가 『누가 민주주의를 두려워하는가』 서평을 쓴 적이 있다.
참고하면 좋다. >> 필자가 쓴 서평 읽어보기)
다만, 베네치아의 독립성과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지중해의 물길이 흐르는, '무역에 최적화된 도시'이기에 그랬다.
예컨대, 제4차 십자군이 이슬람 세계를 정벌하지 않고,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Constantinopolis)를 점령한 것은
베네치아의 영향력이 작용한 결과이며,
1861년 '하나의' 이탈리아 왕국이 들어선 뒤에도
베네치아는 그 움직임에 곧바로 합류하지 않았다.
정리하면 베네치아는 중세 도시의 대표격이 되는 곳이며,
'누구의 도움 없이도 잘 나갔다.'라는 사실을 여러 건축물이 말해주고 있다.
그것을 인지하며 베네치아 산 마르코의 생생한 모습을 확인해보자.
(참고: 가와하라 아쓰시, 호리코시 고이치, 『중세 유럽의 생활』, 남지연 옮김, AK,
2019, pp.104, 131-132 >> 필자가 쓴 서평 읽어보기 ;
김종법, 임동현, 『이탈리아역사 다이제스트 100』, 가람기획, 2024, pp.109-111 ;
박윤덕 외, 『서양사강좌』(개정증보판), 아카넷, 2022, pp.146-147.)
산 마르코 대성당 일대를 거닌 뒤, 수상택시를 타러 갔다.
대운하를 따라 베네치아의 전체적인 모습을 구경하면서
섬의 규모가 정말로 크고, 볼 것도 다양하다는 생각을 했다.
산 마르코 대성당이 베네치아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하지만,
그것만 보면 놓치는 게 너무나 많다.
수상택시를 한창 타던 즈음에 해가 지고 있었다.
건축물마다 조명이 은은하게 밝혀졌다.
다만, 어둠이 완전히 드리워진 뒤의 베네치아 모습까지는 보지 못했다.
다음에 베네치아를 다시 온다면
여유를 갖고 종일 본섬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건축물들의 내부를 꼼꼼히 들여다보고
야경까지 챙겨봐야 할 것 같다.
산 마르코 정박장(Fermata San Marco)을 출발점으로 하여
대운하 동선을 따라 주요 건축물들의 사진과 동영상을 배치했다.
주요 건축물들의 위치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지도 역시 첨부했다.
베네치아의 구조를 확실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수상택시가 산타 크로체에 닿으면서,
다시 중세 시대에서 현대로 시간을 거슬러 왔다.
진기한 경험이었다.
이탈리아에서 시간을 거스르는 느낌을 주는 도시는 베네치아 말고도 여럿 있다.
피렌체 또한 현대에서 중세 시대로 거스르는 느낌을 주는 곳이며,
로마는 그보다도 더 과거인 고대로 거스르는 느낌을 주는 곳이다.
그렇지만 베네치아만큼 육지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하는 곳은 없을 것 같다.
물이 곧 땅이자 도로라는 공식,
그것도 이론적인 공식이 아닌 실제로 적용되는 공식을
육지에 익숙한 사람들이 쉽사리 받아들이기 어려운 게 그 이유이겠다.
다음 글의 주제인 피렌체에서 시간 여행을 계속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