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밀라노에서 맞이한 할로윈

이탈리아에서의 여정 (1) - 밀라노 대성당 일대 야경 관람기

by 샤를마뉴

스위스에서의 짧은 몽환에서 깨어나고 이탈리아로 넘어갔다.

육로로 다른 국가의 국경을 넘는 건 이제 익숙한 일이다.


그런데 스위스에서 이탈리아로 넘어가는 시간은 유독 오래 걸렸다.

일단 이동 거리가 길었고(약 300km),

교통체증이 발생하면 도착 시간이 한없이 늦춰지는 버스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프랑스로, 프랑스에서 스위스로 넘어갈 때도 이동 거리는 길었지만,

정시성이 보장되는 기차를 탔기에 도착 시간이 늦춰지는 일은 없었다.


절경을 자랑하는 알프스 산맥과 맑은 호수도

어둠이 드리워지면서 모습을 감췄고,

대신 교통체증이 나타나면서 이동 시간이 상당히 지루해졌다.

버스로 이동한지 4시간이 넘어서야 이탈리아 국경을 넘었고,

그로부터 1시간 반을 더 이동해 목적지인 밀라노에 닿았다.

스위스에서 이탈리아로 국경을 넘는 순간을 보여주는 영상

이탈리아 국경을 넘기 위해 필요한 절차는 없었다.

스위스 국경을 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스위스와 이탈리아 모두 국경에는 검문소가 설치되어 있다.

국경 검문소의 존재는 형식적인 것일까?


그렇다고 봐야 된다.

솅겐 협정(Schengen Agreement)을 체결한 유럽 국가는

국경을 넘을 때 비자(Visa)나 여권 제출을 요구하지 않는다.

유럽 연합에 가입된 국가는 대부분 이 협정을 체결했고,

스위스는 유럽 연합에 가입하지 않았지만, 이 협정은 체결했다.


그래서 영국 히드로 공항에서 입국심사를 할 때,

세인트 판크라스 역에서 프랑스로의 출국심사를 할 때,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Rome Fiumicino Airport)에서

한국으로 귀국하기 위한 출국심사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유럽 내에서 국경을 넘을 때 밟았던 절차는 없었다.

(영국도 본래 솅겐 협정을 체결했으나,

2016년에 유럽 연합을 탈퇴하면서 그 효력을 상실했다.)

1985년 6월 14일, 룩셈부르크의 솅겐에서 솅겐 협정을 체결하는 순간(왼쪽)과 2025년 기준 솅겐 협정 체결국 현황(오른쪽)

이렇게 영국, 프랑스, 스위스에 이어 여행할

네 번째 국가이자, 마지막 국가인 이탈리아에 입성했다.

유럽여행 기간의 반환점도 넘겼다.


영국, 프랑스, 스위스를 여행할 때는

각국의 핵심 명소만 콕 집어서 갔다면,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는 각지를 누비고 다녔다.

덕분에 앞선 세 국가를 여행하며 보고 들었던 것을 다 합쳐도,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보고 들었던 것을 상회하지는 못한다.


이탈리아에서의 여정은 5일에 걸쳐 이루어졌다.

첫날 밤은 밀라노, 둘째 날은 베네치아, 셋째 날은 피렌체,

넷째 날은 남이탈리아(폼페이, 소렌토, 카프리 섬),

마지막 날은 로마와 바티칸을 여행했다.

이 글은 그 여정의 첫단추인 밀라노에서의 밤을 얘기하겠다.


한국인에게 이탈리아는 익숙한 듯 낯선 국가 같다.

서양 고대사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로마,

피자와 파스타를 먹는 식문화는 이탈리아의 '세계적 이미지'이다.

한국인도 이탈리아의 세계적 이미지는 익숙하게 여긴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세계적 이미지에서 벗어난, 그 이외의 것들은

이탈리아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이상

'무지의 영역'이라고 보는 게 맞겠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세계적 이미지의 피상으로 비춰지는 이탈리아를 알지,

피상 안의 내면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이탈리아에 무지한 한국인은 잘못이 없다.

이 무지의 원인은 두 갈래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무관심에서 비롯되는 무지, 무교육에서 비롯되는 무지가 그것이다.


전자의 무지는 이탈리아에 무지한 한국인의 '좋은 변명'이다.

'한국과 이탈리아가 어떤 측면에서 큰 상관이 있는가?'라는 변명을 하면,

반론하기보다는 수긍을 하게 된다.

'그러게. 큰 상관이 있는 것 같지는 않네.'라며.


변명에 반론하려면 확실한 근거가 필요하다.

그것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이탈리아에 관한 다방면의 지식',

'이탈리아와 한국을 비교할 수 있는 관점'이 필요하다.

무지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수단은 교육이다.

어떤 것에 무지하거든, 배워서 앎의 상태로 바꾸면 된다.

내가 이탈리아와 한국 모두를 잘 아는 한국인이라면,

앞선 질문에 반론을 해도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탈리아를 알아갈 교육의 기회마저 부족하다.

후자의 무지는 전자의 무지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을 얽매이게 만든다.


필자는 서양사를 공부하면서 후자의 무지를 인식했다.

사실 필자도 이탈리아에 그리 관심이 많은 사람은 아니다.

다만, 이탈리아 역사의 흐름이 궁금하던 순간이 몇 번 있었다.

이탈리아 통사(通史)를 다룬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사실 서양사를 좀 아는 사람들에게도

이탈리아 역사는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이탈리아는 분열된 시기가 통일된 시기보다 훨씬 길었다.

한국에서 익숙한 이탈리아 역사는 통일된 시기의 역사이다.

그래서 필자는 분열된 시기의 역사까지 공부해서

이탈리아 역사의 흐름을 깔끔하게 이해하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국내에서 그 의문을 해소해주는 책이나 교육이 미비했다.

최근에서야 분열된 시기의 이탈리아 역사를 담아낸 책이 겨우 나왔다.

이것이 필자가 후자의 무지를 인식한 계기였다.

그 문제의식이 여행기를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필자는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배워가는 게 많았다.

여러 문화유산을 보며 이탈리아 역사를 더 잘 알게 된 것 말고도,

이탈리아와 한국이 '문화적으로 유사'하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렇게 배워온 것을 글로 담으며,

독자 여러분도 이탈리아의 세계적 이미지 이외의 요소를 알아가고,

'한국과 이탈리아가 어떤 측면에서 큰 상관이 있는가?'라는 변명에

섣불리 수긍하지 않고 반론을 던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다시 여행 이야기로 돌아가자.

스위스와 이탈리아의 경계에서 시작된 긴 교통체증을 뚫고,

오후 7시쯤 밀라노 시내로 들어왔다.


밀라노 시내는 상당히 세련됐다.

서울의 강남과 분위기가 비슷하다.

'잘 사는 동네'라는 느낌을 준다.

이탈리아의 공식 수도는 로마이지만, '경제 수도'는 밀라노이다.

그렇기에 밀라노 생활은 곧 서울 생활과도 같다.

익숙해지면 절대로 포기하기 싫은 곳이다.

밀라노 시내의 모습, 서울 강남의 모습이라고 해도 위화감이 없다.
밀라노 시내를 보여주는 영상

밀라노에서의 일정은 한마디로 '야경 감상'이었다.

밤의 밀라노 대성당(Duomo di Milano),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Galleria Vittorio Emanuele II),

벨트라미 궁전(Palazzo Beltrami), 스칼라 극장(Teatro alla Scala)을 구경했다.


여기서 밀라노 대성당과 관련한 역사 이야기는 짚고 넘어가겠다.


밀라노 대성당을 '밀라노 두오모 (대)성당'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두오모(Duomo)는 이탈리아어로 대성당(Cathedral/Cattedrale)을 의미한다.

그래서 밀라노 두오모 또는 밀라노 대성당이 올바른 표현이다(참고할 글).


밀라노 대성당은 전형적인 고딕 양식(Gothic architecture)의 건축물이다.

고딕 양식의 특징은 높고 뾰족한 형상의 건축물,

스테인드글라스로 익히 알려져 있다.

여기까지는 어렴풋이 알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여행을 다녀온 뒤 정보를 더 조사한 결과,

고딕 양식은 이탈리아에서 그렇게 환영받지 못한 건축 양식이고

이와 관련한 밀라노와 피렌체 간의 '알력 다툼'도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후의 글에서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Cattedrale/Duomo di

Santa Maria del Fiore)의 모습도 확인하게 될 텐데,

이 성당을 지을 때는 '밀라노의 건축 양식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피렌체인의 자존심'이 반영되었다.


12~15세기에 밀라노를 통치한 주인은 비스콘티(Visconti) 가문이었다.

(이탈리아에서 유력한 가문이 한 도시를 통치하는 건

보편적인 현상이었으며, 분열기가 오래 지속된 원인이다.)

그 가문의 인물 중 잔 갈레아초 비스콘티(Gian Galeazzo Visconti, 1351~1402)는

독일 왕 바츨라프(벤첼) 4세(Václav/Wenzel IV, 1361~1419)의 지원을 받아

밀라노 공국(Ducato di Milano, 1395~1797)을 세웠다.

그는 이탈리아를 통일할 야망을 품고, 여러 도시 국가를 굴종시켰는데

유일하게 저항한 곳이 피렌체였다.

(참고: 김종법, 임동현, 『이탈리아역사 다이제스트 100』, 가람기획, 2024, p.126 ;

로스 킹, 『브루넬레스키의 돔, 김지윤 옮김, 도토리하우스, 2021, pp.25, 42-43.)


피렌체인의 입장에서 잔 갈레아초 비스콘티는 '공포의 인물'이었고,

그가 건축하고자 한 밀라노 대성당은 '야만인의 건축물'로 보였을 것이다.

두 도시 간의 알력 다툼 이야기는

피렌체에서의 여정을 다룬 글에서 더 짚어볼 예정이다.

밀라노 대성당을 바라보는 안목이 더 넓어졌기를 바란다.


이제 밀라노 대성당와 함께 나머지 세 건축물들을 감상해보자.

밀라노 대성당
밀라노 대성당에 장식된 각종 조각들
밀라노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밀라노 대성당 주변으로 펼쳐진 광장과 건축물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Vittorio Emanuele II, 1820~1878)의 사진(왼쪽)과 그의 동상(오른쪽), 그는 1861년 이탈리아 왕국의 초대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밀라노 대성당 주변의 광장과 건축물을 보여주는 영상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 입구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 내부 모습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 내부를 보여주는 영상
벨트라미 궁전(왼쪽)과 오페라가 상연되는 스칼라 극장(오른쪽), 벨트라미 궁전에는 세 개의 깃발이 달려있는데, 왼쪽부터 유럽 연합/이탈리아/밀라노 깃발이다.
벨트라미 궁전과 스칼라 극장을 보여주는 영상
20251031_202556.jpg 레오나르도 다빈치 기념비(Monumento a Leonardo da Vinci)

마침 밀라노에서의 밤을 보낸 날은 할로윈이었다.

같은 날, 친구들은 저녁의 홍대 거리에서

할로윈 분장을 한 여자들과 사진을 찍으며 놀았다고 연락을 했다.

한국과 스위스/이탈리아 간의 시차는 8시간이므로,

필자가 스위스에서 이탈리아로 넘어가는 중에 그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친구들이 한창 잠들었을 때쯤,

필자는 밀라노에서 할로윈의 밤을 맞이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의외로 할로윈 분장을 하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일전에 여행한 영국, 프랑스, 스위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할로윈의 본고장인 유럽인데도 말이다.


홍대 거리의 할로윈 그리고 밀라노의 할로윈을 비교하면서

'우리나라에서 할로윈을 기념하는 것이

무분별한 서양 문화 수용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봤다.

필자는 우리나라에서 할로윈을 기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밀라노에서의 일정은 이렇게 끝났다.

정말 야경 감상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오후 9시, 현지 식당에서 피자와 돼지고기 커틀릿(돈가스의 원형이

되는 음식)으로 늦은 저녁 식사를 하고

Hotel Della Rotonda라는 4성급 호텔에서 하루를 묵었다.

영국에서 묵었던 숙소 다음으로 시설이 좋았다.

가이드가 말하길, 밀라노의 숙박 시설이 이탈리아에서 가장 좋다고 한다.

밀라노가 잘 사는 동네라 그런 것 같다.


다음 글에서 베네치아에서의 여정을 풀어보겠다.

저녁 식사(왼쪽)와 숙소 안에서 촬영한 Lazzaroni Biscotti 종이 상자(오른쪽), Lazzaroni Biscotti는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과자 이름으로 나온다.
keyword
이전 10화현실 속의 동화, 스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