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에서의 여정 - 알프스 융프라우 산 등정기
여행은 '휴양'을 위해서 떠나기도 한다.
특히 도시에서 사람, 교통체증, 회사생활 등으로 부대끼며
일상을 살아가는 시민들에겐
휴양이 간절해지는 순간이 번번이 찾아온다.
휴양을 목적으로 여행을 떠날 때는 산과 바다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공기 좋고, 풍경 좋고, 한적해서 도시 생활의 번민을 잊기 좋은 게 그 이유이다.
강원도와 제주도는 대표적인 우리나라 사람들의 휴양지이다.
그렇다면 유럽 사람들의 휴양지는 어디일까?
필자가 유럽 현지인에게 그런 질문을 하지는 않았지만,
유럽을 여행하면서 '여기는 휴양지로 제격이네!'라고 생각한 두 지역이 있었다.
스위스와 남이탈리아이다.
스위스에는 알프스 산맥, 남이탈리아에는 지중해라는 천혜의 자연경관을 보유하고 있다.
마침 이 글의 주인공이 스위스이다.
남이탈리아 또한 이후의 글에서 다룰 예정이다.
필자는 유럽여행을 떠나기 전,
그보다 앞서 독일과 스위스를 여행한 친구와
스위스를 포함해 유럽을 한 달간 여행한 후배에게 여행 정보를 물어봤다.
그렇게 정보를 얻는 과정에서 의견일치를 보인 지점이 '알프스 산맥의 절경'이었다.
친구와 후배 모두 스위스의 자연경관이 대단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리고 마침내 필자가 스위스에 당도했다.
그 말이 사실인지를 확인할 시간이 도래했다는 뜻이다.
지난 글의 끝부분에서 넌지시 얘기한
프랑스에서 스위스로 넘어가는 과정을 다시 소환하겠다.
오후 5시가 못되서 리옹 역에 도착했다.
프랑스 여행은 수미상관과도 같았다.
영국과의 첫만남은 히드로 공항, 이별은 세인트 판크라스 역에서 했던 반면,
프랑스와의 첫만남과 이별은 모두 기차역에서 했다.
승강장으로 가서 TGV에 탑승했다.
우리나라 KTX의 모델이 된 바로 그 TGV이다.
유로스타를 탈 때 도버 해협을 건너가는 경험만큼 감회가 새로웠다.
TGV 또한, 유로스타처럼 여러 국가를 오간다.
스위스도 TGV 노선에 포함되어,
취리히 역(Zürich Hauptbahnhof)에 TGV가 오간다.
그런데 스위스에서 묵을 숙소는 취리히가 아닌
그린델발트(Grindelwald)에 있었기 때문에,
필자 일행은 프랑스 남동부의 벨포르-몽벨리아르 TGV 역(Gare de Belfort -
Montbéliard TGV)에서 내린 뒤 버스를 타고 그린델발트로 넘어갔다.
오후 8시, 벨포르-몽벨리아르 TGV 역에 도착했다.
이 역은 시종착역이 아니기 때문에, 정차 시간이 정해져 있다.
그런데 필자 일행(30여 명)은 기차에 수십 개의 캐리어를 실어놨다.
즉, 짧은 정차 시간 안에 그것들을 모두 승강장으로 옮겨야 했다.
(그러지 못했을 때의 결과는... 가이드가 말하길, 상상하기 싫다고 했다.)
그래서 가이드는 몇몇 사람이 미리 모여 기차가 정차하는 즉시
캐리어를 신속하게 밖으로 옮기는 작전을 구상했다.
이 작전은 성공했다.
역 밖으로 나오니 칠흑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우리나라의 시골 밤을 상상하면 된다.
스위스의 밤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방에 빛 한 줄기 없고, 절경을 자랑한다는 알프스 산맥도 보이지 않았다.
어둠이 걷혀야 스위스 자연경관의 본모습이 보일 터였다.
영국과 프랑스에서 버스를 탈 때는 도시의 야경을 보는 것도 하나의 묘미였다.
그래서 졸음을 참고 야경을 조금이라도 더 봤는데,
스위스에서는 그런 게 없으니 버스 안에서 그냥 잤다.
오후 11시쯤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는 Eigerblick Hotel Grindelwald라는 통나무 산장이었다.
스위스에서의 아침이 밝았다.
기상 시간은 오전 5시 30분쯤이었다.
일찍 알프스 산맥을 등정하고, 오후에 이탈리아로 넘어가야 됐기 때문에
다른 날보다 기상 시간이 빨랐다.
오전 6시 무렵, 숙소 식당에서 조식을 먹고 있었는데
식당 창문 밖으로 사진을 찍는 일행들의 모습이 보였다.
밥을 다 먹고 숙소 밖을 나가보니, 일행들이 왜 그랬는지 단번에 알았다.
어둠에 가려진 알프스 산맥의 본모습이 드러났다.
필자가 현실에 있는지, 동화 속에 있는지 혼란이 올 정도의 풍경이었다.
스위스에서의 일정은 '유럽의 지붕(Top of Europe)'이라고 불리는
융프라우 산(Jungfrau)을 등정하는 것이었다.
이 산의 해발고도는 무려 4,158m이다.
본래 그린델발트를 출발점으로 하여 융프라우 산에 가기 위해서는
그린델발트 터미널 역(Bahnhof Grindelwald Terminal)에서 기차를 탄 뒤,
종점인 융프라우요흐 역(Bahnhof Jungfraujoch)에서 내리면 되었다.
그게 유일한 경로였다.
그런데 그린델발트의 도시 면적(171.28 km²)은 꽤 넓다.
동네에 기차/지하철역이 있다고 모든 주민이 역세권 혜택을 못 누리듯이,
그린델발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린델발트 터미널 역 동쪽으로
그린델발트 역(Bahnhof Grindelwald)이 하나 더 있다.
필자가 묵은 숙소는 그린델발트 역 근처에 있었다.
버스를 운행하지 못하는 관계로(이 부분은 부록 글에서 얘기하겠다.)
15분 정도 걸어서 역으로 갔다.
걸어가면서 보이는 알프스 산맥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린델발트 역에서 그린델발트 터미널 역까지는 불과 3분 거리이다.
아주 잠깐 기차를 타고 내렸다.
융프라우 산까지 가는 또 다른 경로가 있기 때문이다.
그린델발트 터미널에서 아이거글레처 역(Bahnhof Eigergletscher)까지
운행하는 아이거 익스프레스(Eiger Express) 케이블카를 탄 뒤,
융프라우 철도(Jungfraubahn)의 산악열차를 타고 종점까지 가도 된다.
아이거 익스프레스는 2020년 12월에 개통되었다(참고할 글).
이제 잠시 설명을 멈추고, 다시 알프스 산맥을 감상할 시간을 주겠다.
아래는 융프라우요흐 역까지 가는 동안 담아낸 사진과 동영상이다.
1시간 정도 케이블카와 산악열차를 타고, 마침내 융프라우요흐 역에 도착했다.
역에서 내리니 어떤 인물의 두상이 보였다.
그 인물의 정체는 아돌프 가이어 젤러(Adolf Guyer-Zeller, 1839~1899)로,
융프라우 철도의 창립자이다.
지금도 험준한 산맥을 뚫고 도로나 철도를 개통하기 어려운 시대인데,
지금보다 기술이 덜 발전했던 19세기 말에,
알프스 산맥을 지나는 철도를 놓을 구상을 하고 현실화시킨 게 놀라웠다.
융프라우 철도 공사에 투입된 노동자의 사진도 있었는데, 절로 고개가 숙연해졌다.
필자는 참 운이 좋았다.
힘들게 융프라우 산까지 올라가도,
날씨가 좋지 않거나 바람이 너무 세면 전망대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필자가 융프라우 산에 오른 날에는 날씨가 좋아서,
전망대 밖으로 나가 알프스 산맥의 풍경을 오롯이 봤다.
가이드가 말하길,
전망대 안에 있는 얼음 조각상, 알프스 산맥을 보여주는 슬라이드 등은
전망대 밖으로 나가지 못할 때 위안삼아 보는 것이라며
일일이 사진으로 담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필자도 전망대 안의 모습은 사진으로 많이 안 남겼다.
대신 아래 Discovery Tour 지도를 첨부했다.
이 지도는 융프라우 전망대를 둘러보는 순서를 알려주고 있다.
전망대의 구조를 알기에도 요긴하다.
이 순서대로 사진과 동영상을 배치했다.
유럽의 지붕에서 본 알프스 산맥을 감상하고 넘어가자.
융프라우 전망대 관람이 끝난 뒤,
융프라우요흐 역까지 왔던 경로의 반대 순서로 그린델발트 터미널로 이동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아이거글레처 역으로 올라갔을 때는
만년설로 뒤덮인 알프스 산맥의 풍경을 봤다면,
그린델발트 터미널로 내려갔을 때는
푸른 초원에 소를 방목한 알프스 산맥의 풍경을 봤다.
케이블카가 이동하는 방향에 따라 알프스 산맥이 달리 보여서 신기했다.
어느덧 점심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
그린델발트 터미널로 돌아온 뒤, 버스를 타고 인터라켄(Interlaken)으로 이동했다.
인터라켄도 그린델발트처럼 운치 있는 마을이었다.
여기서 설렁탕을 점심으로 먹었다.
맛은 평범했는데, 스위스 소로 만든 설렁탕을 먹었다는 것에 의의를 뒀다.
이렇게 스위스에서의 일정은 끝이 났다.
스위스에서 머무른 시간은 영국보다도 짧았지만,
제대로 볼 거를 다 봐서 아쉬움은 한 치도 없었다.
스위스를 떠나 이탈리아로 넘어가는 순간까지
알프스 산맥과 맑은 호수는 필자의 눈에서 떠나지 않았다.
스위스 곳곳에 있는 맑은 호수도 절경의 요소 중 하나이다.
신비한 분위기를 풍긴다.
맑은 호수와 함께 어우러지는 알프스 산맥이 마지막으로 본 스위스의 풍경이었다.
스위스의 자연경관이 대단하다는 친구와 후배의 말은 사실로 판명되었다.
스위스에서의 여정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마치 어린이가 밤에 잠들기 전 부모님이 동화를 읽어주는 걸 듣고
스르르 잠드는 '짧은 몽환'과 같았다.
다음 글부터는 지금까지 쓴 여행기의 분량만큼,
이탈리아에서의 여정을 얘기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