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의 여정 (3) - 프랑스의 일상생활 관찰기
프랑스 파리에서의 둘째 날이 밝았다.
묵었던 숙소는 Campanile Le Blanc Mesnil이라는 3성급 호텔이었다.
영국에서 묵었던 숙소가 워낙 좋아서,
이 숙소에서 묵었을 당시에는 '그냥 그렇다.'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 숙소 역시 시설과 조식의 질 모두 괜찮았다.
분위기가 독특했다.
이 숙소는 전체적으로 조명을 환하게 밝히지 않아 어두웠다.
0층 로비도 어두웠는데, 그 옆으로 있는 소박한 바의 분위기가 왠지 모르게 좋았다.
소박한 바에서 조촐하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보며 평온함을 느꼈다.
아파트처럼, 호텔 방 번호 구간마다 접근 통로를 분리한 것도 신기했다.
그냥 멋모르고 엘리베이터를 타면, 내가 묵을 호텔 방 번호를 찾지 못해
다시 0층 로비로 내려가 다른 엘리베이터로 바꿔타야 하는 불상사가 생긴다.
특별히 사진을 찍지 않았지만, 독특한 숙소로 기억이 남는다.
파리에서의 둘째 날 일정은 굵직했다.
오전에는 몽마르트르 언덕(Montmarte),
에투알 개선문(Arc de Triomphe),
샹젤리제 거리(Avenue des champs-élysées)를 둘러보고,
오후에는 루브르 박물관(Musée du Louvre)을 관람했다.
영국, 프랑스 모두 머무는 날은 똑같이 이튿날이지만,
이튿날 오전에 일정이 끝났던 영국과 달리,
프랑스는 이튿날 늦은 오후까지 머물러서 확실히 더 많은 것을 보고 들었다.
그렇기에 파리에서의 둘째 날 일정을
하나의 글에 모두 담기에는 분량이 너무 방대해진다.
그러므로 오전 일정, 오후 일정으로 나누어 두 편의 글로 담아낼 것이다.
이 글에서는 오전 일정을 '일상생활'과 '문화'를 중심으로,
다음 글에서는 오후 일정을 '역사'를 중심으로 풀어보겠다.
필자는 몽마르트르 언덕을 올라가지 않았다.
그 대신 몽마르트르 언덕 인근의 끌리쉬 가(Boulevard de Clichy)를 거닐었다.
덕분에 파리의 일상적인 모습을 많이 관찰했다.
비가 내리고 쌀쌀했던 첫날과 달리, 둘째 날은 날씨가 정말로 쾌청했다.
평범한 파리의 거리도 푸른 하늘과 어울러져 사진에 아름답게 담겼다.
그런데 끌리쉬 가는 평범한 파리의 거리가 아니다.
이 거리에는 명소가 하나 있는데, 바로 물랭 루주(Moulin Rouge, 빨간 풍차)이다.
물랭 루주는 공연장과 술집을 겸하는 카바레(Cabaret)였다.
즉, '문화적인 장소'였다.
'술집이 뭐 그렇게 대단한가?'라고 의문을 가질 수 있겠다.
평범한 카바레라면, 당연히 그렇게 부각되지 않았을 것이다.
물랭 루주가 유명해진 이유는 예술 때문이다.
그곳은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그림으로 옮기게 만들었다.
옛날 화가가 그림으로 그렸던 대상이 그대로 남아있다면,
그 대상에는 화가가 그림을 그린 기억이 깃들어 역사적 가치가 높아진다.
물랭 루주는 근대 유흥문화, 근대 예술 활동의 두 기억을
생생히 증언하기에 유명세를 얻었다고 보면 되겠다.
독자 여러분은 기분 좋게 오전을 맞이해본 경험이 얼마나 되는가?
필자는 초등학생 때 이후로는 그런 경험이 많이 없다.
나이가 들며 아침형 인간이 아니게 되었고,
일찍 일어나 '여유를 만끽'하려는 목적을 잃어버린 게 그 원인이다.
어른이 되어 생각해보니, 초등학생 이후로 작은 것에 행복해하고
인생에 대한 번민을 하지 않는 시기는 돌아오지 않는 것 같다.
행복하고 번민이 없으면, '깨어있는' 시간이 많기를 원할 것이다.
그래서 초등학생 때의 필자는 주말에 일찍 일어나곤 했다.
그 시절 주말에는 부모님을 졸라 어디를 놀러가거나,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재밌는 TV 프로그램을 볼 생각에 설렘이 가득했다.
하지만 중고등학생 때부터는 '입시'라는 번민이 생기면서,
아침에 일어나는 게 괴로워졌고 평일이 너무나 힘들었다.
자연스럽게 주말에 늦잠을 자는 습관이 생겨났다.
사는 게 힘드니까, 잠으로써 잊고 싶은 것이다.
대학생도, 회사원도 중고등학생과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학생은 아침 일찍 통학하기 싫어하고,
회사원은 아침 일찍 출근하기 싫어한다.
대학생과 회사원 역시 나름의 번민을 안고 살기 때문이다.
번민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시기에 접어드는 순간부터
기분 좋게 오전을 맞이하는 빈도가 급격히 줄어드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그 번민을 잠시 잊고자 유럽으로 떠나
날씨가 매우 좋은, 여느 평일 오전의 끌리쉬 가를 거닐며
정말 간만에 기분 좋게, 여유롭게 오전을 맞이해봤다.
독자 여러분도 끌리쉬 가의 일상을 담은 사진을 보며
잠시 번민을 잊어보는 건 어떨까?
몽마르트르 언덕에 올라간 사람들이 돌아온 뒤,
에투알 개선문으로 향했다.
이 개선문은 1806년, 나폴레옹 황제(Napoleon I, 1769~1821)가
아우스터리츠 전투(Battle of Austerlitz)에서 승리한 직후 착공하여,
30년이 흐른 1836년이 되어서야 완공되었다.
완공 당시, 건축을 의뢰한 나폴레옹 황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뒤였다.
에투알 개선문의 모델이 티투스 개선문(Arch of Titus)인지,
콘스탄티누스 개선문(Arch of Constantine)인지로 갈리는데,
위키피디아 기준으로는 전자가 맞다.
전자가 후자에 비해 건축 시기가 이르고,
전자가 에투알 개선문에 건축적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이 명시되어 있다.
(출처 1: 2번째 문단 8~9번째 줄의 "Inspired by the Arch of Titus in Rome"
출처 2: Architectural influence의 사례로 에투알 개선문,
See also의 사례로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을 소개하고 있음.)
에투알 개선문을 마주보고 샹젤리제 거리가 펼쳐져 있다.
거리의 풍경은 마치 백화점처럼 세련된 느낌을 준다.
그러한 느낌은 프랑스 제2제정(1852~1870) 시기 센 지사
외젠 오스만(Georges Eugène Haussmann, 1809~1891)의 주도로 추진된
도시 정비 사업이 구현해낸 것이다.
원래 파리의 거리는 좁고 지저분했으며, 미관도 그리 좋지 않았다.
그랬던 파리를 외젠 오스만이 대대적으로 뜯어고쳤다.
도로 확장, 미관을 저해하는 빈민가 철거, 상하수도망 확충, 녹지 조성의 방법으로
파리를 세련된 도시로 탈바꿈했다.
그렇지만 그 이면에는 빈민이 보금자리를 잃고,
더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박윤덕 외, 『서양사강좌』(개정증보판), 아카넷, 2022, pp.486-487)
에투알 개선문과 샹젤리제 거리의 정취를 감상하고 넘어가자.
어느덧 점심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
그 유명한 달팽이 요리 에스카르고(Escargot)와
우리나라의 갈비찜같은 뵈프 부르기뇽(Beef bourguignon)을 먹었다.
확실히 프랑스는 미식의 나라라서 그런지,
영국의 피시앤칩스보다 훨씬 맛있었다.
달팽이라고 해서 먹는 것에 거부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는 껍데기 달린 조개는 다 먹지 않는가.
골뱅이와 맛과 식감이 똑같고, 올리브유의 풍미가 좋다.
달팽이 육수가 섞인 올리브유까지 빵에 찍어먹어야
에스카르고를 제대로 먹은 것이라고 한다.
점심을 먹으러 가기 전, 먹고 루브르 박물관으로 가는 중에도
파리의 모습을 담았는데 하나같이 아름답다.
가이드가 말하기를, '에펠탑은 어디서나 보인다'라고 했는데
그 말이 맞았다.
낮의 에펠탑도 첫날에 본 밤의 에펠탑처럼 아름다웠다.
날씨도 좋고, 풍경도 좋고, 몸에 좋은 음식까지 먹으니 컨디션이 최상이었다.
그래야만 했다.
대영박물관만큼, 아니 어쩌면 더 정신없는 루브르 박물관을 보기 위해서는.
다음 글에서 루브르 박물관에서 펼쳐지는 역사는 무엇이 있고,
대영박물관과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지 짚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