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의 여정 (4) - 세밀한 루브르 박물관 관람기
루브르 박물관은 대영박물관과 양대산맥을 이루는
유럽의 유명한 박물관이다.
프랑스 파리에서의 둘째날 마지막 일정은
루브르 박물관 관람이었다.
루브르 박물관이 유명한 이유는 무엇일까?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첫째,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의
모나리자(Mona Risa) 원본이 전시되어 있다.
모나리자의 유명세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둘째, 유리 피라미드(Pyramide du Louvre)의 존재이다.
16세기 말부터 18세기까지 유행한
바로크 건축 양식(Baroque architecture)으로 지어진 루브르궁과
현대적인 유리 피라미드와의 '어색한 조화'는
루브르 박물관의 상징성을 더욱 공고히 했다.
루브르 박물관에 무슨 유물이 전시되었는지는 몰라도,
유리 피라미드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 정도이다.
필자는 전날 밤 바토 무슈를 타며
루브르 박물관의 외형을 이미 확인한 바 있다.
'외형만 봐도 아름답고 웅장한데, 내부는 과연 어떨까?'하며 설레는 감정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약간의 체념도 했다.
박물관 관람객이 많아 여유롭게 관람하기 힘들고,
모든 유물을 보지 못하겠다는 체념을 했다.
대영박물관이 일종의 예방 접종이었던 셈이다.
이참에 대영박물관과 루브르 박물관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짚고 넘어가자.
공통점은 박물관의 규모와 관리 수준이다.
두 박물관 모두 여러 번은 가야 유물을 다 볼까말까할 정도로
규모가 매우 방대하며, 비교적 유물이 잘 관리되고 있다.
(다만, 최근의 루브르 박물관 보석 강도 사건은 유감이다.)
또 다른 공통점은 박물관의 유명한 유물이 자국의 것이 아니다.
대영박물관의 각종 이집트 유물,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전부 남의 나라 유물이다.
본래라면 전자의 것은 이집트에, 후자의 것은 이탈리아에 있어야 맞다.
세계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두 박물관의 이면에는
'문화재 수탈'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차이점은 '어떤 유물이 주류를 이루는가?'이다.
대영박물관은 '3D' 유물이 주류를 이룬다.
입체적인, 역사를 생생히 증언하는 유물이 박물관 안에 가득 차 있다.
반면, 루브르 박물관은 3D 유물도 있지만, 2D 유물의 비중이 더 크다.
루브르 '미술관'이라는 별칭을 붙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많은 명화가 전시되어 있다.
대영박물관과 루브르 박물관을 모두 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두 박물관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인지해두면 좋을 것이다.
오후 2시, 루브르 박물관에 도착했다.
루브르궁의 풍경과 함께, 수많은 인파가 펼쳐졌다.
날씨가 좋은 데다가 한창 활동하기 좋은 시간대이니
사람이 많은 건 당연한 일이다.
입장 통로를 따라가니 유리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유리 피라미드가 밖에서는 상징물의 역할을 한다면,
안에서는 전시실이 여러 갈래로 펼쳐지는 기준점인
박물관 홀의 역할을 한다.
밖에서 본 유리 피라미드의 모습은 익숙해도,
안에서 본 유리 피라미드의 모습은 새로웠다.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는
이오 밍 페이(Ieoh Ming pei, 貝聿銘, 1917~2019)라는
중국계 미국인이 만들었다.
앞서 루브르궁과 유리 피라미드의 조화가 '어색'하다고 말했는데,
사실 이 건축물은 순탄하게 지어지지 않았다.
박물관 미관 저해, 건축 자격에 대한 의문(프랑스의 중요한 건축물을
중국계 미국인이 설계해도 되는가?) 등 여러 이유로 반대 여론이 상당했다.
에펠이 에펠탑을 선보였을 때의 초기 반응과 유사하다.
그렇지만 결국은 유리 피라미드가 지어졌고,
루브르 박물관의 상징성을 강화하는 데 성공했다.
(참고: 출처 1, 출처 2(Grand Louvre, Paris 소제목의 글),
이혜준 외, 『파리의 미술관』, 클로브, 2023, pp.355-356)
루브르 박물관의 구조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겠다.
루브르 박물관을 구성하는 건물은 3개로,
동쪽의 쉴리관(Sully), 남쪽의 드농관(Denon), 북쪽의 리슐리외관(Richelieu)이 있다.
건물 이름이 '인명'이라는 느낌이 든다면, 정확히 파악했다.
쉴리 공작은 앙리 4세(Henri IV, 1553~1610) 시기 경제 각료로 활약했고,
드농 남작은 루브르 박물관의 초대 관장이었으며,
리슐리외 공작은 루이 13세(Louie XIII, 1601~1643) 시기 명재상이었다.
(위의 책, p.356)
*세 인물의 본명
- 쉴리 공작, 막시밀리앙 드 베튄(Duke of Sully,
Maximilien de Béthune, 1560~1641)
- 드농 남작, 도미니크 비방(Baron Denon,
Dominique Vivant, 1747~1825)
- 리슐리외 공작, 아르망 장 뒤 플레시(Duke of Richelieu,
Armand Jean du Plessis, 1585~1642)
- 쉴리, 드농, 리슐리외는 귀족의 작위를 수여받을 때 하사받은 이름이다.
루브르 박물관의 구조를 꼭 머릿속으로 외우지 않아도 된다.
박물관에서 그것을 잘 정리한 안내도를, 심지어 한국어로 제공하기 때문이다.
필자처럼 단체 관광 목적으로 박물관을 방문한다면, 아예 몰라도 무방하다.
필자는 글을 쓰면서 박물관의 구조를 복기하는 것이다.
다만, 이것을 얘기한 이유는
이왕 루브르 박물관을 소개하는 김에, 나중에 가고자 하는 사람에게
박물관을 바라보는 안목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안내도에도 나오는 쉴리, 드농, 리슐리외를 보고
'그냥 프랑스어 중의 하나인가?'라고 생각하는 것과
'아! 프랑스 역사의 한 축을 이루는 인물들이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상당히 차이가 크다.
우리나라에도 역사 속 인물의 이름을 딴 거리(Ex. 을지로, 충무로)가 있듯이,
프랑스 또한 같은 방식으로 민족성과 역사성을 드러냈다.
각국의 역사적 흐름은 달라도, 역사를 기억하려는 마음가짐 자체는 똑같다.
대영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을 소개하는 글을 쓸 때와 마찬가지로,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도 하나하나 자세히 설명하기엔
분량이 방대해지고, 독자 여러분도 지루하게 느낄 것이다.
따라서 이 글 역시 사진 밑의 캡션을 다는 방식으로 설명을 축약하고,
온전하게 유물을 감상하는 시간을 주겠다.
설명은 박물관 해설사로부터 들었던 내용,
『파리의 미술관』의 내용을 토대로 작성했다.
[지금부터 감상 시간]
숨이 가쁠 정도로 많은 유물을 둘러보았다.
유물 하나하나에 정말 다양한 역사 이야기가 숨어있다.
그것을 알기 위한 경로를
유물 제목의 원어(프랑스어를 기준으로 했다.)와
『파리의 미술관』 참고 쪽수를 일일이 캡션에 표기하는 방법으로 열어놓았다.
역사의 내막을 자세히 알고픈 독자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이것은 여타 루브르 박물관 관람 기록과 달리,
정확한 역사적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필자만의 차별화 전략임을 밝혀둔다.
루브르 박물관 관람을 마친 뒤,
바깥으로 나와 사진을 찍는 시간을 잠시 가졌다.
여유를 가지고 루브르궁의 외관, 유리 피라미드,
'꼬마 개선문'이라는 별명이 붙는
카루젤 개선문(Arc de Triomphe du Carrousel)을 둘러보았다.
이 개선문은 에투알 개선문과 달리 2년만에 완공(1806~1808)되었다.
프랑스 파리에서의 둘째날 일정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짧고 굵은 일정이었다.
또 다시 다른 나라로 이동해야 됐다.
영국, 프랑스에 이어 여행할 세 번째 국가는 스위스였다.
유로스타를 타고 영국에서 프랑스로 넘어갔던 것처럼,
TGV(Train à Grande Vitesse)를 타고 프랑스에서 스위스로 넘어갔다.
그렇게 넘어가는 과정과 스위스에서의 일정은
다음 글에서 얘기하겠다.
버스를 타고 센 강 옆의 길을 따라 리옹 역(Gare de lyon)으로 향했다.
리옹 역은 프랑스로부터 이별하는 관문이다.
그 버스에서 촬영한 오후 4시 무렵의 파리를
보여주는 사진과 동영상을 보여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