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기차만 탔더니 어느새 프랑스로

프랑스에서의 여정 (1) - 육로로 국경을 넘는 순간과 생각의 기록

by 샤를마뉴

영국과 프랑스는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이웃 국가이다.

바다만 건너면 두 국가를 오갈 수 있다.

그렇다면 두 국가를 오가는 방법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배로도, 비행기로도 오갈 수 있지만, '기차로도' 가능하다.


분단 국가인 한국에서는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는다는 것을 상상도 못하는데,

유럽에서는 그것이 흔한 일이다.

유럽에서의 국경은 형식적인 구분선일 뿐이다.


국경을 넘으면 위기 상황 또는 전쟁이라고 생각하여

군인을 앞세워 삼엄하게 경계하는 한국의 상황과는 딴판이다.

그렇기에 기차를 타고 영국에서 프랑스로 넘어가는 과정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도 언젠가는 육로로 국경을 자유로이 넘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정신없었던 대영박물관 관람이 끝나면서, 영국에서 머무는 시간도 끝나게 되었다.

영국도 시간을 두고 둘러보면 볼거리가 참으로 많지만,

허락된 시간이 길지 않아 극히 일부밖에 보지 못했다.

다음에 영국을 온다면, 런던 외의 다른 도시들도 보겠다는 다짐을 하며

아쉽지만 작별인사를 했다.


영국 다음의 여행지는 프랑스였다.

유로스타(Eurostar)라는 고속철도를 타고 프랑스로 넘어갈 예정이었다.

지난 글에서 점심을 김밥으로 떼웠다고 말했는데,

그 이유가 기차를 타기 때문이었다.

여유롭게 현지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요량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기차를 타는 시간도 3~4시간은 걸려서,

프랑스에서의 첫날 일정을 소화하려면 가급적 빨리 이동해야 됐다.


국경을 넘나드는 고속철도가 정착하는 역은 대개 거점역이다.

서울역을 생각해보자.

지하철로는 무려 5개 노선(1호선, 4호선, 경의중앙선,

공항철도, GTX-A)의 환승역이자,

우리나라 각지를 넘나드는 고속철도(KTX)의 시종착역이다.

비록 고속철도가 국경을 넘나들지는 않아도, 명실상부한 거점역이다.


그렇다면 '유로스타가 정착하는, 영국 수도의 거점역 이름은

런던역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볼 법하다.

하지만 어느 거점역도 런던역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다.

일종의 불문율같다. (마치 한국에 '한국대학교'가 없듯이.)


대신 '사실상의 런던역'은 존재한다.

세인트 판크라스역(St. Pancras Station)이 그 주인공이다.

이 역은 유로스타의 시종착역이자, 여러 영국 지하철 노선의 환승역이다.

1868년 10월 1일에 역을 개장한 이래,

(근거 구절: 위 링크 2번째 문단 12번째 줄의

"Following the station's opening 1 October 1868")

지금까지도 그 당시의 건축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 유서도 깊다.

우리나라의 서울역과 비슷한 구석이 많다.


아래 런던 지하철 노선도 속의 세인트 판크라스역 위치와

서울 지하철 노선도 속의 서울역 위치를 비교해보자.

왜 두 역이 비슷한지 금방 이해될 것이다.

런던 지하철 노선도와 세인트 판크라스역의 위치(빨간색 테두리로 표시)
서울 지하철 노선도와 서울역(Seoul Station)의 위치(빨간색 테두리로 표시)

우리나라에서 출입국 심사가 주로 이루어지는 곳은

여객을 기준으로 했을 때 공항이다.

육로로 국경을 넘어가는 일이 드물기 때문이다.


반면, 유럽은 육로로 국경을 넘나드는 것에 제약이 없어서

여러 국가를 횡단하는 도로 혹은 기차역에 설치된

국경 검문소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국경 검문소가 있지만, 출입국 심사를 하지 않기도 한다.

이에 관해서는 이후의 글들에서 더 얘기하겠다.


세인트 판크라스역에서는 출입국 심사가 이루어진다.

당연히 수하물 검사도 같이 한다.

대신 목적지에 도착한 뒤에는 별다른 절차 없이 이동하면 된다.

출국 심사를 밟은 뒤, 오후 1시 31분 파리행 열차에 탑승했다.

정말 영국과 작별했다.


한편으로, 기차역에서 출입국 심사를 받고 국경을 넘는 경험은

우리나라 통일의 당위성을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남북관계가 험악해지고, 통일을 하더라도 다양한 문제가 산적해 있기에

통일에 회의적인 여론이 우세해졌다.

사실 필자도 통일을 회의적으로 여기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런데 '국경이 있지만 사실상 없는 것'으로 취급하는 유럽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도 그러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라시아 철도와 아시아 하이웨이의 수맥이 우리나라에도 흐르는 날을 고대해 본다.

유로스타 시간표(왼쪽)와 여권에 찍힌 프랑스 출국도장(오른쪽). 유로스타 노선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벨기에, 네덜란드까지 이어진다.
세인트 판크라스역 내부 모습
유로스타 고속열차(왼쪽)와 기차역에서 사먹은 환타(오른쪽). 유럽산 환타는 과일향만 첨가하는 한국 환타와 달리 과즙이 들어가기 때문에 정말 맛있다. 최대한 많이 마시길 권한다.

영국에서 프랑스로 넘어가는 핵심 길목은

도버 해협(Dover Channel)이다.

유로스타는 도버 해협 밑의 해저터널을 통해 영국과 프랑스를 오간다.

그런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경험으로 확인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사실 영국에서 프랑스로 넘어간 줄도 몰랐다.

터널을 한 번 지나니 프랑스였다.

외교부에서 해외안전정보 메시지를 보내고,

해외로밍 통신사가 바뀌고 나서야 알았다.


열차 창문 너머로 북부 프랑스의 모습이 펼쳐졌다.

광활한 들판과 드문드문 집촌이 보였다.

『서양의 장원제』(마르크 블로크, 이기영 옮김, 한길사, 2020)에 나오는

프랑스 농촌의 특징에 대한 설명이 떠올랐다.


이 책에 대한 얘기를 잠시 하자면,

중세 영국과 프랑스 장원제를 비교사적 관점으로 고찰하는 책이다.

두 국가의 장원제를 비교하는 사례 중 하나가 '농촌'의 모습이다.

영국 농촌은 농지에 울타리가 쳐져있고 집도 각기 떨어져 있다.

반면, 프랑스 농촌은 농지가 개방되어 있고 집촌이 형성되어 있다.


이러한 차이가 만들어진 데에는 영국과 프랑스의 역사적 흐름과 연관이 있다.

영국에서는 근대 초기 인클로저 운동(Enclosure)이 일어나면서,

농지에 울타리를 쳐서 사유지를 확보하는 움직임이 보편화되었다.

인클로저 운동은 곧 장원제의 해체를 의미한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는 1789년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장원제가 유지되었다.

그래서 개방된 경지, 집촌이라는 중세적 농촌의 모습이 보존되었다.

영국 농촌의 모습을 보진 못했지만, 프랑스 농촌을 보면서 그 차이를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유로스타를 타고 프랑스로 이동하는 영상. 촬영 위치는 오드 프랑스주(Hauts-de-France)의 에낭 보몽(Hénin-Beaumont)이라는 도시 근처이다.

오후 5시쯤, 프랑스 파리에 도착했다.

비가 내리고 있었고, 거리는 어수선했다.

'무질서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 또 묘하게 낭만도 있다.

파리 북(北)역(Gare du Nord, 왼쪽)과 그 주변의 풍경(오른쪽)
파리 북역의 건축물을 보여주는 영상
파리의 풍경을 보여주는 영상 (1)
파리의 풍경을 보여주는 영상 (2)

프랑스 파리에서의 첫날 일정은

사이요궁(샤요궁, Palais de Chaillot)에서 에펠탑을 본 뒤

에펠탑 전망대에 올라가 하늘에서,

바토 무슈(Bateaux Mouches)라는 유람선을 타고 센 강(La Seine)에서

파리의 야경을 감상하는 것이었다.


사이요궁에서 에펠탑을 보는 것까지가 공통 관광이고,

나머지 일정은 선택 관광이었다.

비용이 상당했지만, '가서 보면 후회없을 것'이라는 가이드 말에

선택 관광까지 오롯이 하기로 했다.


사이요궁은 에펠탑을 '근처에서 봤을 때' 가장 잘 보이는 공간이라고 한다.

필자가 찍은 사진을 보면 의아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한다.

사이요궁에서 본 에펠탑의 모습(왼쪽)과 사이요궁과 에펠탑 간의 거리를 보여주는 위성 사진(구글 지도, 오른쪽)

근처에서 지켜본 에펠탑의 모습도 인상깊었는데,

코앞에서 본 에펠탑의 모습은 감탄을 연발할 정도였다.

그리고 유람선을 타며 본 파리 야경은 그야말로 낭만 그 자체였다.

이 감상평은 다음 글의 스포일러이다.

다음 글에서 여러분은 파리의 야경과 함께

코앞에서 본 에펠탑의 모습을 원없이 볼 수 있을 것이다.

keyword
이전 05화역사가 우주처럼 펼쳐지는 대영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