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의 여정 (2) - 영국인의 일상생활 관찰기
영국 런던에서의 첫날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아침부터 일정을 소화한 게 아니라
영국 시간 기준 오후 2시까지 비행기를 타고,
히스로 공항에서 입국 심사 및 수하물 수령 절차를 밟고,
런던 시내까지 또 1시간을 이동해야 됐으니
체감 시간은 더욱 짧았다.
그렇다고 아쉬운 감정이 들지는 않았다.
영국에서의 여정은 열흘의 유럽여행 기간에서 '서막'에 불과하며,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에서도 설레는 감정을 가득 안겨줄 터였다.
무엇보다 영국 땅을 밟기까지 오랜 고생길을 거쳐야 했으므로,
심신은 알게 모르게 지쳐 있었다.
첫날 일정이 끝나고 숙소로 이동할 때 피로감이 크게 몰려왔고,
숙소에서 짐을 풀고 씻은 뒤 눕자마자 기절했다.
영국은 한국과 9시간의 시차가 있기 때문에
시차 적응이 안 되면 피곤해도 잠을 얼마 못 잔다고 했는데, 필자는 예외였다.
첫날 일정이 길었다면 분명히 도중에 지쳤으리라.
해외여행의 묘미는
책으로만 보던 문화유산을 두 눈으로 직접 구경하는 것,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기념품을 구매하는 것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런데 그런 묘미는 국내여행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해외여행의 묘미가 더 특별하게 여겨지는 원인은 무엇일까?
외국은 언어, 문화, 생활양식 등 모든 것이 모국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익숙한' 국내여행보다는 '새로운' 해외여행을 선호하는 게 아닐까 싶다.
필자는 영국 런던을 대표하는 문화유산들을 본 것도 좋았지만,
런던 시민의 일상생활을 목도한 것도 인상깊었다.
우리나라랑 비슷한 듯 다르다.
런던과 서울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두 도시는 각각 영국과 한국의 '수도'라는 공통점이 있다.
서울 시민의 일상생활을 먼저 떠올려보자.
아침에는 출근, 저녁에는 퇴근을 위해 지하철과 버스로 몰리는 인파,
카페에서 수다를 떨거나, 노트북을 키고 볼일을 보는 모습,
식당과 술집 등지에서 피로를 날리는 모습 등이 떠오를 것이다.
런던 역시 서울처럼 '북적이는' 도시이다.
인구 밀도가 대단히 높다.
많은 인파, 교통체증, 어느 건물이든 사람이 있는 모습은 서울과 똑같다.
오히려 서울보다 정신없게 느껴질 수도 있다.
런던의 도로는 좁은 골목길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구조이고,
차도와 인도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구간도 많아서
차도 가장자리로 사람들이 떼를 지어 걸어다니는 광경이 연출된다.
서울에는 차도와 인도의 구분을 명확히 한 구간이 많아서,
차도 가장자리에 사람이 걸어다니는 광경을 웬만해서는 보기 어렵다.
이렇게만 보면, 런던과 서울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런던과 서울의 일상생활을 가르는 차이는 '절제'이다.
지나가듯 봤던, 런던 시민들이 여가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절제되어 있다는 인상을 줬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제대로 놀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학생들은 시험이 끝나면 해방된 기쁨으로 밤늦게까지 놀기도 하고,
어른이 되면 술집, 노래방에서 잠자는 것도 잊을 정도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주말 혹은 연휴에는 놀러나가는 차량으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광경도 심심치 않게 본다.
'소소하게 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그보다는 제대로 놀기를 원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더 많을 것 같다.
반면, 영국 사람들은 '소소하게 놀고' 저녁에는 쉬기를 원하는 듯 하다.
런던에도 술집은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술집 '골목'을 이루지는 않는다.
술보다는 다른 방법으로 여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많다는 증거이다.
사진으로 일일이 담지는 않았지만,
열댓 명 정도 되는 사람이 동네 골목을 돌며 마라톤을 하는 모습,
레코드 상점/서점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모습,
집 안에서 젊은 사람들이 소소하게 티파티(다과회, Tea Party)를 즐기는 모습,
동네마다 있는 평범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 모습 등을 보았다.
'뭐야? 그런 모습은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잖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 말이 맞다.
여가 시간을 소소하게 보내는 방법 '자체'는 영국이든 한국이든 크게 다르지 않다.
필자가 지적하는 부분은 여가 시간을 보내는 방법에 대한 '인식 차이'일 뿐이다.
영국인의 일상생활에 관해 또 하나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앞선 글에서도 얘기한 '영국 특유의 보수성'과 연관이 있는데,
상업이 특정 브랜드에 의해 잠식되지가 않았다.
이 때문에, 런던 시내의 상점들은 어느 정도 특색을 띄고 있다.
그래서 여가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다양화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필자의 솔직한 생각을 밝히자면,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나라 상업은 '다양성'을 점차 잃어가는 것 같다.
특정 브랜드가 상업을 잠식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편의점과 카페를 생각하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겠다.
브랜드에 의한 상업 시장의 획일화가 단점만 있는 건 아니다.
어떤 브랜드에 소속된 직영점/가맹점은 어디를 가더라도,
비슷한 수준의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건 분명히 장점이다.
그런데 그 획일화의 정도가 높아지면서 특색을 잃어가고 있다.
어딘가에는 좀 색다르고 고유한 상점이 있으면 좋겠는데,
특정 브랜드의 상점밖에 없다면 그 또한 문제 아니겠는가.
물론 런던 시내에도 특정한 브랜드의 상점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특색을 해치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거리마다 고유한 특색의 상점은 무엇이 있는지 보는 재미가 있었다.
평범한 일상생활이 특별하게 보이는 착시 효과도 생기는 것 같다.
우리나라 상업이 다양성을 잃어가는 원인은 복합적이다.
서구화된 생활양식을 선호하는 분위기,
자영업으로 성공하기 어려운 환경 등을 꼽을 수 있겠는데,
필자가 그것을 논할 역량도 안 되고, 글의 주제를 벗어나게 되므로
더 얘기하지는 않겠다.
이 글에서는 런던에서 첫날을 보내며 봤던 그곳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기억'을 되짚으며 필자의 인상을 투영하는 방식으로 담아보았다.
일상생활의 모든 모습을 기록하는 건 불가능하다.
특별히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남길 필요성도 크지 않다.
그래서 런던 사람들의 일상생활도 사진, 동영상으로
온전히 담아내기는 어려웠다.
대신 '글'이라는 방법으로
런던 사람에게는 평범할 일상생활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
스쳐지나가듯 본, 그렇기에 금방 잊힐 수밖에 없는
외국의 일상생활에 대한 단상을 그나마 글로써 기억해두려 한다.
서울과의 비교,
여가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한 한국인과 영국인의 인식 차이에 대한 서술은
그저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이지, 절대적인 사실이 아님을 밝힌다.
만약 필자가 다시 영국을 가게 될 일이 생겨,
런던뿐만 아니라 영국 각 도시의 모습까지 보고 온다면
이 글에서 밝힌 필자의 견해는 상당 부분 수정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그렇게 견해의 수정이 이루어지기까지의 시간은 장담할 수 없으므로
우선은 영국인의 일상생활에 대한 '첫인상'을 기록하는 것에 의의를 둔다.
부족하지만, 영국의 일상을 담은 몇몇 사진, 동영상을 보여주며 글을 마친다.
다음 글에서는 런던에서의 둘째날 일정인 대영박물관 관람에 대해 얘기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