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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깨달은 '영국다움'

영국에서의 여정 (1) - 웨스트민스터 사원, 버킹엄 궁전, 빅벤 관람기

by 샤를마뉴

첫 행선지, 영국으로의 출국길은

두바이 국제공항에서 머문 시간을 포함해 22~23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러나 영국식 시간 계산법으로는 14시간 밖에 흐르지 않았다.

영국은 한국과 9시간의 시차가 있다.


영국에 도착했을 때의 시간은 오후 2시 무렵이었다.

런던 히스로(히드로) 공항(Heathrow Airport)에 비행기가 착륙했다.

이 공항은 경유지가 아니라 '최종 목적지'였다.

드디어 오랜 출국길이 끝나서 안도했다.

유럽은 정말 한국에서 물리적으로 먼 공간이다.


영국은 '보수적인 국가'라는 이미지가 뚜렷하다.

역사적으로도 영국은 고집스레 전통과 안정을 추구하고,

모든 것이 단번에 뒤바뀌는 급진적인 움직임을 견제해왔다.

그렇다고 영국의 보수성이 변화를 일체 거부하는 '낡음' 또한 아니다.

'개혁'이라는 방법으로, 전통과 안정이라는 보수적인 틀을 유지하며

시대의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해왔다.


평소에도 필자는 서양사를 공부하며,

'영국은 보수적이다.'라는 어렴풋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히스로 공항의 모습이 눈 앞에 펼쳐지면서

영국에 대한 어렴풋한 인식은 정확한 인식으로 변했다.


히스로 공항은 전반적으로 오래되고 침착한 분위기를 풍겼으며,

간결한 디자인의 간판과 '낡거나 더럽게 느끼지' 않게 보수한 흔적이

내부 곳곳에서 보였다.

과연 영국다웠다.


글을 쓰며 히스로 공항에 대한 정보를 탐색해보니,

개항 연도가 1946년 3월 25일이라고 한다.

지금은 그로부터 80년의 긴 시간이 흘렀지만,

시설 관리는 꾸준히 한 것으로 보인다.

히스로 공항 내부(수하물 찾는 곳, 왼쪽)와 공항을 막 나왔을 때의 풍경(오른쪽)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한다.

이동 수단이 비행기가 아닌 버스가 되었고,

버스 앞자리에서 '먼 길 오셨다.'라고 운을 떼며

가이드의 여행 안내가 시작되었다.

이제야 일상을 떠나 여행을 왔다는 기분이 들었다.


가이드는 10년 넘게 '직업으로서' 유럽을 누비셨다.

현장의 유럽에 대한 지식, 경험이 남달랐다.

그 부분에서 필자가 충격을 받았다.

아직 유럽의 주요 명소를 둘러보지도 않았지만,

유럽을 순회한 사람이 가볍게 말하는 '현장의 지식'이

책 속의 지식과는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필자에게는 유럽에 관한 책 속의 지식은 많이 있을지언정, 현장의 지식은 없었다.

현장의 지식 앞에 책 속의 지식은 무력했다.

필자가 알았던 유럽은 '역사'에만 국한되었다.

현장의 유럽은 언어, 문화, 일상생활과 같은

각종 분야의 실용적인 지식을 알아야 제대로 보이는 공간이었다.

현장의 유럽 속에 놓인 필자는 이방인이었다.

모든 것이 낯설게 보였다.


그렇지만 이 낯섦은 흥미와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런던 근교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를 유발하기엔 충분했다.

필자가 나고자란 한국의 풍경과는 너무나 달랐다.

히스로 공항만 보고 '영국답다'라는 생각을 한 게 우스울 정도로,

'영국답다'를 보여주는 실물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런던 근교 풍경의 주역은 갈색과 하얀색 그리고 좁고 긴 창문이다.

갈색과 하얀색 이외의 색을 풍기는 건축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갈색과 하얀색으로 입을 맞춘 건축물들은 좁고 긴 창문으로 다시 한 번 입을 맞췄다.

건축물이 확 튀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니, '단조롭지 않을까?'라는 의문도 들 법하다.

하지만 단조롭기보다는, 통일감 있고 차분하며 고풍스럽다는 인상을 더 강하게 받았다.

색과 창문의 형태는 입을 맞췄지만, 건축물의 외양은 제각기 달라서 그런 것 같다.

런던 브롬턴 로드(Brompton Road)의 풍경을 보여주는 영상
런던 해머스미스(Hammersmith, 왼쪽)와 브롬턴(Brompton, 오른쪽)의 모습

사진과 영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신식의 건물'은 그리 많지 않다.

영국의 보수성은 국민의식과 같은 정신적 요소뿐만 아니라

물질적 요소에도 깊숙이 깃들어있다는 증거이다.


어느 순간부터, 한국에서 갈색 건축물(특히 벽돌 건축물)은

'구시대적 건물', '철거되어야 할 건물'로 비춰진다.

반대로, 하얀색 건축물은 '세련된 건물', '깨끗한 건물'로 각광받는다.

그런데 영국에서의 갈색 건축물들을 보니,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갈색도 건축에서 잘만 활용하면, 고풍스럽고 세련된 느낌을 준다.


런던의 풍경을 보는 것도 재밌지만, 역사적 명소도 같이 봐야하지 않겠는가.

1시간쯤 버스로 이동하다가,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첫 목적지는 바로 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국립현충원쯤 되는 공간이겠다.

영국 역사를 장식한 국왕, 왕족, 각 분야의 저명한 인사의 유해가 묻혀 있다.


보통 역사적으로 중요한 명소는 '한적한 곳'에 있어야 한다는 관념이 있다.

그래서 녹지를 조성한다거나, 경관을 위해 주변 건물의 높이를 제한하곤 한다.

그런데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주변 환경은 그 관념을 깨뜨렸다.

혼잡한 골목의 교차점 앞에 웨스트민스터 사원 정문이 있는 게 아니겠는가.

게다가 옆에 있는 건물은 보수 공사 중에 있었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사원 주변에 녹지를 조성하고 진입로를 길게 만들었을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사원과 주변의 혼잡한 분위기를 보여주는 영상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위치한 웨스트민스터는 런던의 '역사 지구'이다.

사원 근처에 버킹엄 궁전, 웨스트민스터 궁전, 빅벤이 있다.

영국 땅을 밟고 웨스트민스터를 가지 않는다면, 영국을 가지 않은 셈이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외관을 본 뒤, 버킹엄 궁전(Buckingham Palace)으로 향했다.

버킹엄 궁전의 역사는 개괄적으로 아래와 같다.

1703년, 버킹엄 공작 존 셰필드(John Sheffield, 1647~1721)가 버킹엄 하우스 건축

1761년, 조지 3세(George III, 1738~1820)가 버킹엄 하우스를 구입, 이후 별궁으로 사용

1837년,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 1819~1901) 시기에 정식 왕궁으로 승격
왼쪽부터 존 셰필드, 조지 3세, 빅토리아 여왕의 모습

버킹엄 궁전의 인상은 단 한 마디로 정리된다.

'으리으리하다.'

정부 청사로 써도 될 것 같은 건물이 왕실의 집이라니.

상류층의 삶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물론 그 삶 너머에는 갑갑한 상류층만의 룰(에티켓 등)을

지키고 살아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그럼에도 호사스러움은 보통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 수밖에 없다.


영국에 36년째 거주하고 있는 가이드(이하 현지 가이드로 표현)가 말하기를,

(이 가이드는 앞에서 말한 가이드와 다른 사람이다.)

전임 국왕인 엘리자베스 2세(Elizabeth II, 1926~2022)는

버킹엄 궁전에 자주 머물렀는데,

현재 국왕인 찰스 3세(Charles III, 1948~)는 어머니와 달리,

그렇게 잘 머무르지 않는다고 한다.


또 말하기를, 궁전 꼭대기에 깃발이 걸려 있으면 국왕이 자리를 비운 것이고,

반대로 깃발이 내려가 있으면 국왕이 거처하는 중인데

깃발이 올라간 지 몇 달 된 것 같다고 한다.


궁전 앞에는 빅토리아 여왕을 기리는 동상(Victoria Memorial Statue)이 있다.

황금빛이 번쩍번쩍하다.

버킹엄 궁전까지 둘러본 뒤의 시간이 오후 4시 30~40분 경이었다.

우리나라의 겨울처럼, 벌써 밤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영국은 오후 5시면 해가 지는 게 일상이라고 한다.

버킹엄 궁전(왼쪽)과 빅토리아 동상(오른쪽)

이제 영국의 랜드마크, 빅벤(Big Ben)을 보러 갔다.

사실 빅벤은 웨스트민스터 궁전(Westminster Palace)의 시계탑으로

궁전의 '부속물'이 되는 셈인데,

그 부속물이 유명세를 타면서 거꾸로 궁전이 '부속물'이 되어버렸다.


웨스트민스터 궁전은 오늘날 영국 의회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상원과 하원 모두 같은 건물을 쓴다.

건물의 고풍스러움이 의회민주주의의 숭고함을 북돋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성역'이라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작년 겨울, 우리나라의 성역에 군용 헬기가 착륙하려는 아찔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그래서인지, 의회민주주의의 본산을 구경하는 게 더 뜻깊었다.


오후 5시 정각, 빅벤의 시계종이 5번 울렸다.

영국의 저녁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이다.

현지 가이드는 '영국에 왔으면 오후 5시의 빅벤 시계종을

꼭 듣고 가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빅벤과 웨스트민스터 궁전의 풍경을 보여주는 영상
오후 5시 정각, 빅벤의 시계종이 5번 울리는 영상

선택 관광으로, 유람선을 타고 템즈 강을 따라

런던의 전체 풍경을 둘러보는 시간이 있었는데,

비용 부담 문제로 그 시간을 가지진 못했다.

지금 돌아보면, 조금 아쉽긴 하다.

그래도 볼 건 다 봤다.


선택 관광을 하는 사람들과 집결지에서 만나기 위해 이동하는 과정에서

런던 아이(London eye, 대관람차), 타워 브릿지(Tower Bridge),

런던탑(Tower of London)을 구경했는데 사진으론 잘 담기지 않았다.

아마 템즈 강을 건너는 유람선에서 사진을 찍어야 잘 담기는 것 같다.

런던탑

선택 관광이 끝난 후에는, 저녁을 먹으러 현지 식당으로 이동했다.

음식이 맛없기로 유명한 영국에서 '가장 맛있는 메뉴'인 피시앤칩스를 먹었다.

익힌 생선요리를 좋아하지 않는 필자에게는 그닥이었지만,

생선을 비린내 없이 잘 튀겨서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숙소에 들어가기 전까지 영국의 일상적인 풍경을 많이 봤는데,

그것까지 얘기하면 글이 길어지므로

다음 글에서 영국의 일상에 대해 자세히 짚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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