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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벽을 뚫고 유럽으로

책 속에서 현장으로 꺼낸 유럽 프롤로그

by 샤를마뉴

유럽여행기의 첫 글을 쓰며,

필자는 '언제부터 유럽에 매료됐고, 어떻게 유럽여행까지 하게 되었을까?'를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참으로 복잡다단한 내막이 있었다.

첫 글은 그 내막을 풀어내는 것으로 시작하겠다.


필자의 유럽에 대한 관심은 막연했다.

시간은 거슬러 올라가, 고등학교 2학년.

역사를 배우는 폭이 한국사에서 세계사로 넓어지던 시점이었다.


보통의 사람들은 한국사를 배우는 것만 해도 큰일이겠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계사 교과서 첫머리에서는 세계사 학습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지만,

보통 사람들에겐 와닿지 않는다.

일단 한국 너머의 역사는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실이며, 교육 현장에서 세계사 학습이 기피되는 요인이다.


필자가 고등학교 때 세계사를 배운 이유도

단지 사학과나 역사교육과에 진학하려면,

역사 관련 교과목을 들어둬야 한다는 '증명'의 목적이 더 컸다.

세계사 학습이 필자의 역사관이나 인생을 바꿀 거라는 예상을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세계사를 배우다보니, 특히 서양사에서 흥미가 생겨났다.

아마 '새로움'이 주는 흥미였을 것이다.

한국사도 학문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새로움이 많지만,

교육의 영역에서는 솔직히 진부하게 느껴진다.


세계사의 끝없는 새로움이 주는 흥미는

필자의 역사관과 인생을 크게 바꾸어놓았다.

대학에 가서도 세계사를 공부하고,

그 흥미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면 좋겠노라고 생각했다.


현실은 생각처럼 이루어지지 않았다.

'서양사는 어려운 역사이다.'라는 사람들의 인식이 공고했다.

이 인식은 사학과 내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사학과 내에서 '서양사를 좋아하는 사람'은 '신기한 사람'이었다.

신기한 사람은 곧 보통 사람과는 결이 다른 사람,

어울리기 힘든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필자는 그런 위치에 줄곧 있는 사람이다.


서양사에 대한 관심을 표출하고 싶어도

그것을 마음껏 받아주는 동기는 유감스럽게도 없었다.

그렇지만 마음의 결이 맞는 사람이 없다고 해서,

자신 스스로가 추구하는 가치를 쉽게 포기하는 건

그 가치를 진정으로 지키려는 의지가 애초부터 없었다는 뜻이다.

정말 그 가치가 옳다고 생각한다면, 외로운 싸움을 해야 되지 않겠는가?

필자는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기로 했다.


서양사를 바라보는 인식이 좋지 않다보니,

대학에서의 서양사 교육의 길도 좁아지고 수준도 내려갔다.

'역사를 배우는, 가장 고등의 교육기관이 이래도 되나?'라는 실망감이 컸고,

'교육권을 보장해주지 않으면, 스스로 쟁취해야지.'라는 개척 정신도 생겼다.

그 개척 정신을 행동으로 옮긴 게 독서였다.

서양사와 관련된 서적이면, 닥치는 대로 읽었다.


'서양사가 그렇게 좋으면, 왜 여행을 떠나지 않았느냐?'라는 반문을 할 것이다.

당연히 마음 같아서는, 유럽에서 한 달을 살아보고 싶고 그러지 않겠는가.

하지만 발목을 잡은 것이 '돈'이었다.

대학생이 얼마나 부유하겠는가.

아르바이트 하나하나가 소중한 대학생이다.

이 돈의 문제는 필자 개인의 문제이자, 집안의 문제였다.

어떻게 보면, 가장 큰 현실의 장벽이다.


현실의 방향도 마음먹기에 따라 유리하게 바꿀 수 있다.

돈이 문제라면, 돈을 악착같이 모으면 해결되는 것이고

시간이 문제라면, 어떻게든 스케줄을 조정하면 해결되는 것이다.


비록 당장은 유럽여행을 가기에 여건이 마땅치 않지만,

현실이 어렵다고 '미래의 꿈, 목표'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서양사에 대한 관심은 지속적인 독서로 간접적인 경험을 쌓았고,

돈 벌기를 학업과 병행하며 경제적 문제를 해결했다.

'제3지대 역사교육 Note'에서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히 했으니,

여기에서는 길게 얘기하지 않겠다.


2년간 학원일을 하며, 유럽여행을 위한 경비 마련 문제는 차츰 해결되었다.

돈을 넉넉히 모아놓았으니, 이제 시간만 있으면 되었다.

얄궃게도 이번엔 시간 확보가 문제였다.


일단 학원일을 하는 동안에 여행을 간다는 건 불가능했다.

돈은 벌지만, 시간이 모자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모님은 일을 하고 계시니 직장에 양해를 구해서 시간을 벌어야 했고,

동생 역시 고등학생이기에 여행 때문에 학업에 지장이 가서는 안 됐다.


이제 유럽여행을 '현실'로 옮길 수 있었지만, '언제 현실로 옮길지'가 문제였다.

사실 올해에 유럽여행을 갈 거라는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억만금이 있어도 몇백 몇천만을 쓰는 게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했고,

10년 넘게 해외여행을 가보지 못했으니, 어떻게 준비할지도 고민이었다.


그럼에도 올해 유럽여행을 간 것은,

올해가 여러모로 '가족 모두가 시간이 되겠다는' 계산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필자는 병역 수행 중이지만, 학원일을 하던 때와 달리 시간이 널널했고

동생은 내년에 고등학교 3학년이어서, 해외 나가려면 지금 가는 게 맞고

부모님도 여행을 가고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내심 말은 안 했지만, 여가를 포기하고 일만 하는 부모님의 모습이 눈에 밟혔다.

그렇다면 가는 게 맞는 거고, 결국은 가기로 했다.


평소에는 큰 지출을 꺼리는 필자지만,

부모님 효도할 겸 또 동생 여행비까지 댈 겸 수백만을 털었다.

돈은 다시 모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가족 다함께 추억을 쌓는 여행은 한 번 기회를 놓치면,

언제 그 기회가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

그 사이에 추억을 다시는 쌓지 못할 변고가 생길지 누가 알겠는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과시성 해외여행'에 대한 배격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인X타그램에서 해외여행 갔다온 것을 신고하는

동기들의 게시글이 종종 올라오곤 한다.

뭐 좋은 데 다녀왔으니 관심 좀 받고 싶다는 심리는 이해하겠다.


그런데 그러한 게시글이 은연중에

'해외여행을 가지 않으면 안 되겠다.'라는 상대적 박탈감을 유발하고,

해외여행의 목적이 '과시'가 되는 문제점이 있다.

여행의 본연 의미가 흐려지고, 허영으로 흘러간다.

필자가 정말로 싫어하는 행위이다.


예민한 얘기긴 하지만, 남자 입장으로서 솔직히 말하자면

(물론 필자도 보충역이라 현역 앞에선 할 말이 없는 입장이다.)

남자는 1년 반을 병역으로 묶여 있어서 해외여행의 자유를 누릴 수 없다.

병역을 마쳐도, 사회 진출이 늦어진다는 압박감 때문에

해외여행을 마음 편히 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그래서 해외여행을 과시하는 게시글을 더욱 좋지 않게 보는 것도 있다.


필자에게 가족을 동반한 해외여행은 정말로 이루기 어려운 목표였다.


이 글부터 시작되는 필자의 유럽여행기는

단순히 해외여행을 과시하는 것도,

관광에 대한 뻔한 후일담을 털어놓으려고 쓰는 게 아니다.


여러 현실의 벽을 하나씩 부수어가며,

평소 관심을 가졌던 유럽 문화권, 역사를

현장에서 두 눈으로 바라보고야 말았다는 '승리의 선언'임을

첫 글에서 명확히 하며,


이어지는 글에서는

현장의 유럽에서 보고 들은 것,

책 속의 유럽과 현장의 유럽을 비교하며 생각한 것,

한국과 비교하며 생각한 것 등

여행 본연의 의미에 충실한 내용을 담고자 한다.


무엇보다 유럽을 '상대화'하는 관점을 견지해

유럽이 한국보다 우월하다는 편견에 빠지는 것 또한 방지할 것이다.

필자는 유럽여행을 마친 뒤,

한국이 여러모로 좋은 국가라는 생각을 확고히 했다.


다음 글까지 서론의 나머지를 얘기하고,

현장의 유럽을 독자 여러분에게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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