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의 생활』개관
책 정보
저자: 가와하라 아쓰시(河原 溫), 호리코시 고이치(堀越宏一)
제목: 『중세 유럽의 생활』
옮긴이: 남지연
출판사: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Trivia Book
발행 연도: 2019년
쪽수: 257쪽
가격: 9,360원(교보문고 정가/E-book 기준, 종이책은 품절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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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개관
역사를 분야로 분류할 때, 가장 미지의 영역은 '일상사'일 것입니다. 남아있는 기록이나 유물이 많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흘러가는 일상의 모든 모습을 남기지 않습니다. '굳이 남겨야 되나?'라는 생각이 들겠죠. 그런 생각이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습니다. 옛날 사람에겐 당연한 일상이 후대의 사람에겐 궁금한 상상이 되었습니다. 역사는 '사실'에 입각하여 연구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일상사에는 공백이 가득합니다. 일상사가 가장 미지의 영역인 이유입니다.
일상사 연구가 쉽지 않은 탓에 관련 책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일상사는 다른 분야의 역사(대표적으로 정치사)에 비해 진입 장벽이 낮아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좋은데 아쉬운 일이죠. 그나마 몇몇 책이 있는데, 그것을 알려주는 경로도 마땅히 없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포함해 이어지는 3편의 글에서는 일상사(더 넓게는 문화사) 책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 글들이 일상사 책에 접근하는 경로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소개할 책들은 『중세 유럽의 생활』, 『중세 유럽의 문화』, 『중세 유럽의 성채 도시』입니다. 중세 유럽은 낯설지만, 그렇기 때문에 흥미를 끄는 지점이 많습니다.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이 큰 인기를 끈 사례가 있죠. 중세 유럽 문화의 신비성이 대중의 흥미를 끄는 데 걸맞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중세 유럽의 일상사를 다룬 책도 나오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AK 출판사의 Trivia Book 시리즈에서 중세 유럽 문화를 소재로 한 책을 많이 내놓았습니다. 소개할 책들도 그 경우입니다. 가볍게 읽기 좋으면서, 내용은 여러 참고문헌을 바탕으로 쓰여 대중적인 책으로 괜찮습니다. 그런데 소개할 3권의 책 중 2권은 종이책으로는 절판되었습니다. 서평의 가치가 높아진 셈입니다.
『중세 유럽의 생활』은 제목 그대로 '일상사'에 초점을 맞춘 책입니다. 중세 유럽의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농촌, 도시, 의식주의 측면에서 다룹니다. 지금도 일상을 공간적으로는 농촌과 도시, 통합적으로는 의식주로 유형화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상의 큰 축은 거의 변한 게 없습니다. 단지 시대, 사람들의 세계관 등의 세부적 요소가 달라진 것뿐입니다. 하지만 세부적 요소의 차이 때문에, 옛날 사람들의 일상을 글로만 접한다면 딱딱하고 이질적으로 느끼게 됩니다. 이 책에서는 많은 시각 자료를 배치해 그 문제점을 해결했습니다. 수록된 시각 자료가 많다는 것을 다르게 생각하면, 유럽에 남겨진 기록이나 유물이 많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한적이지만, 천 년도 더 넘은 과거 속 사람들이 살았던 모습을 윤곽으로 그려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서술 방식은 '사례 중심'입니다. 다양한 실물 자료를 제시하고, 중세 유럽의 생활은 대강 이러했다는 구조로 서술했습니다. 그래서 깊이 있는 지식, 학술적 지식 습득을 기대하고 이 책을 읽으려 한다면, 개설서나 전문 서적을 읽는 게 더 낫습니다.
그렇다고 역사 전공자에게 이 책은 감흥이 없거나, 읽을 필요가 없다는 건 아닙니다. 중세 유럽 역사에 관심이 생겨 입문 목적으로 읽을 때는 굉장히 적절합니다. 글은 교과서적 서술에서 한 발 나아간 정도라 독해도 어렵지 않고, 여러 시각 자료의 존재는 개념의 이미지화에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중세 유럽 역사는 전문적으로 파고들면 매우 어려운 분야입니다. 막 그 분야에 관심을 가진 새내기에게 전문 서적부터 읽으라고 들이밀면 기겁하겠죠. 그래서 중세 유럽 역사에 관심이 생겨 관련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첫발을 AK Tri via Book 시리즈의 책들로 떼는 것도 괜찮습니다. 필자 역시 그 과정을 거쳐 차츰 전문 서적까지 읽어나갔습니다.
어려운 지식을 쉽게 풀어내는 것도 인정받을 가치가 충분합니다. 이 책의 '가벼운 서술 방식'의 너머에는 '무거운 참고문헌'이 지탱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알려주기 위해 아래에 이 책의 참고문헌 목록을 찍은 사진을 첨부했으니 확인해보길 바랍니다. 역사 전공자 입장에서는 쉬운 서술, 가벼운 서술 방식으로 쓰인 역사책을 보면 의심하는 습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학술적이고, 전문 용어도 있어야 제대로 된 역사책이라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그 의심을 불식시키고자 굳이 참고문헌 목록을 보여준 것도 있습니다.
저자들도 이 책의 한계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맺음말 중에 '일상의 재구성은 현대에도 쉽지 않고, 잘 기록되지 않기에 이 책은 단지 남겨진 일상의 단면을 가져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언급이 있습니다. 필자가 서두에서 말했던 내용 그대로입니다. 사례 중심의 서술 방식은 일상사를 설명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인 것입니다.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사례에 목말라 합니다. 어떤 역사적 명제를 주장할 때, 그것을 뒷받침하는 근거 및 다른 관점에서 제기되는 반론에 대응하는 근거를 장착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여러 사례를 집대성해 일상사라는 큰 명제를 조금이나마 설명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한계까지 솔직히 인정하는 것도 학자로서 갖춰야 할 자세를 보여줍니다.
사실, 인간이 매일 어떤 식으로 생활했는가 하는 일상생활의 상세한 재구성은 우리가 사는 현대의 것조차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평범한 일상 대부분이 기록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우리가 매일 보내는 생활을 돌아보기만 해도 명백할 것이다. 일기를 꼼꼼히 쓰는 사람도 하루하루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기록하기란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리가 먼 과거 세계 사람들의 생활을 자세히 재현하는 데는 자연히 한계가 있어, 어디까지나 그 생활의 한 단면을 남겨놓은 사료로부터 꺼내와 얼마 안 되는 사상(事象)을 논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 가와하라 아쓰시, 호리코시 고이치, 『중세 유럽의 생활』, 남지연 옮김, AK Trivia Book, 2019, pp.249-250.
이처럼 일상사는 제대로 이해하기에 한계가 있는데, 종이책마저 절판되어 대중적으로 널리 아는 것에도 한계가 생긴 상황입니다. 다행히 E-Book은 있지만, 필자 개인적으로 독서는 종이책으로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E-Book은 읽을 때 전자 기기를 이용하므로, 눈이 피로해지고 집중력을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종이책으로 재출간될지가 미지수인 현실이니, E-Book으로나마 이 책을 한 번 접해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