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의 문화』개관
참고할 글
https://brunch.co.kr/@charlemagnekim/89
책 정보
저자: 이케가미 쇼타(池上翔太)
제목: 『중세 유럽의 문화』
옮긴이: 이은수
출판사: AK Trivia Book
발행 연도: 2022년(개정판 기준)
쪽수: 254쪽
가격: 14,220원(교보문고 정가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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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개관
역사학에는 표준이 되는 교재가 없습니다. 그 말은 '역사의 어떤 분야에는 어떤 책이 바이블(Bible)이다.'라는 절대적인 공식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에게 장점이 되기도, 단점이 되기도 합니다. 역사를 탐구하려는 의지가 충만한 사람에겐 여러 책을 소화해 더 공부하게끔 유도하므로 장점입니다. 반면, 초심자에겐 가이드라인이 없어 방대한 지식 세계에서 방황하게 만드므로 단점입니다. 역사학의 끝은 없다보니 표준이 되는 교재는 초심자에겐 필요하지만, 능동적으로 공부하려는 사람에겐 가두리가 되는 딜레마가 있습니다.
중세 유럽 역사를 공부하려는 초심자도 표준을 갈망할 것입니다. 중세는 고대와 근대 '사이'의 시기라는 점을 강조한 용어이다보니, 크기가 축소된 감이 있습니다. 하지만 중세는 유럽 역사를 기준으로 5세기에서 15세기까지 이르는 넓은 시간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 안에 다양한 역사적 주제가 들어있습니다. 굉장히 방대하죠. 그러므로 중세의 전반적인 큰 틀도 알아야 되고, 세부적인 구성 요소가 어떻게 배치되어 있고 작동하는지도 알아야 됩니다. 무게감 있는 공부가 요구된다는 소리인데, 그에 앞서 가볍게 핵심을 훑는 공부도 필요합니다. 그게 초심자에게 원하는 표준이겠습니다.
중세 유럽 역사에 관한 '가볍게 핵심을 훑는 공부'를 강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시선에서 중세 유럽은 다른 시대의 유럽보다 더욱 낯선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근현대 유럽 역사는 프랑스 혁명, 양차 대전과 같이 인지도가 있는 역사적 주제가 많이 있습니다. 곧 그와 관련한 배경지식이 있거나 익숙하게 느끼는 사람이 많다는 뜻도 됩니다. 이렇게 '기초'가 있다면, 무게감 있는 공부를 하기 쉽습니다. 반면, 중세 유럽 역사는 전자와 달리 인지도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니 낯설게 느끼고 배경지식이 전무할 확률이 높겠죠. 무게감 있는 공부를 위해 선행되는 기초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그 기초를 쌓는 책이나 교육이 필요한 것인데 역사학 특유의 '하나의 표준을 정하지 않는' 분위기 때문에, 가볍게 핵심을 훑는 공부가 교육적으로 간과되는 게 아닌가 필자 개인적으로 생각이 듭니다.
『중세 유럽의 문화』는 초심자에게 적합한 책으로 추천하고 싶습니다. 책의 주제와 구성 방식이 초심자에게 여러모로 걸맞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를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첫째,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문화'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중세 유럽 역사를 규정하는 여러 분야 중 초심자가 접근하기 가장 쉬운 게 문화사 같습니다. 문화사도 깊게 들어가면 한도 끝도 없이 어렵지만, '개괄적인 지식을 쌓는' 측면에서는 쉽습니다. 또 문화사를 구성하는 각종 사례가 오늘날을 살아가는 현대인 관점에서는 흥미로운 구석이 많아서 책을 재밌게 읽을 수 있습니다.
둘째, 책의 내용이 백과사전식으로 정리되어 일목요연합니다. 이 책은 목차에서 보는 것처럼, 중세 유럽 문화를 구성하는 110가지 주제(사례)를 '한 장씩' 정리해놓았습니다. 마치 사전을 떠올리게 합니다. 사전은 통독을 하는 게 아니라, 필요한 정보와 관련된 내용만 읽듯이, 이 책 또한 그렇게 읽어도 됩니다. 읽는 부담이 없습니다. 그리고 '110'이라는 수의 크기에서 보듯, 중세 유럽 문화의 세부적인 구성 요소가 많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문화의 전체적인 상은, 그것을 구성하는 사례를 얼마나 아느냐에 따라 보여지는 화질이 달라집니다. 초심자는 중세 유럽 문화를 구성하는 사례를 모르거나, 막연히만 알고 있어서 전체적인 상을 보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죠. 그 점에서 이 책은 중세 유럽 문화라는 큰 지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돋보기가 되어줍니다.
셋째, 책 내용의 이해도를 높이는 '구조화된 정리'의 장치가 있습니다. 책에는 좋은 내용을 담는 것도 중요하지만, 널리 읽히려면 '독자 친화적'이어야 합니다. 줄글로만 정리된 책과 시각 자료가 적절히 배치된 책 중에서 후자의 책을 사람들이 선호하듯이요. 예컨대, 중세 유럽 사회의 근간이 되는 '봉건제'를 글로만 읽으면 일반 독자 입장에선 잘 이해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위의 사진같이 봉건제를 '구조화해서 정리'한 걸 보면, 훨씬 이해가 잘 될 것입니다. 이 책은 한 장씩 분량을 할애하는 각 주제마다 왼쪽 페이지에는 글, 오른쪽 페이지에는 구조화된 정리를 수록해놓았습니다. 주제의 갯수가 110개이니, 구조화된 정리에 삽입한 일러스트를 그린 작가의 정성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 노력 덕분에, 이 책은 가볍게 읽히지만 잘 남습니다.
이 책도 많은 참고문헌을 바탕으로 쓰였습니다. 가볍게 읽히는 책은 참고문헌을 제시하지 않거나, 그 양이 적은 결점이 종종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책은 다량의 참고문헌 목록을 분명히 제시했으니, 가볍게 읽히지만 내용을 구성하는 과정이 결코 가볍지 않았음을 증명합니다. 그에 더해 중세 유럽 역사에 갓 관심이 생긴 초심자, 일반 독자도 쉽게 읽도록 하는 고민까지 녹아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내용의 충실성과 독자 친화성이라는 두 요소의 균형이 참 잘 잡힌 것 같습니다. 독자 친화성은 충분히 보장되어 있고, 내용의 충실성을 원한다면 (일본어가 될 경우) 참고문헌을 찾아서 읽으면 됩니다.『중세 유럽의 생활』, 『중세 유럽의 성채 도시』와 달리 아직 종이책으로 구할 수 있으니, 절판되기 전에 사서 읽어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