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의 여정 (5) - 고대 로마 도시 폼페이 관람기
귀국을 이틀 앞둔, 이탈리아에서의 넷째 날이 밝았다.
길 것만 같았던 열흘간의 유럽여행이 끝을 향해갔다.
지루하면 느리게, 즐거우면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이 야속했다.
이틀만 지나면 다시 한국에서 일상을 보내야 하고,
1주일 넘게 '공동체'가 되어 동행했던
가이드 그리고 다른 일행과 헤어져야 됐다.
믿기지 않았다.
시간은 끝이 정해져 있지 않은 미래로 향해가며,
미래로 나아가는 모든 발자취는 과거가 된다.
이는 곧 순리이며,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여행 시기를 정하고 경비를 마련했던
2025년 10월 이전의 유럽여행은 '미래'였다.
그리고 그 미래가 이루어지는 '현재'를 경험했다.
현재라고 정의하는 시간은 계속 바뀐다.
그러므로 유럽여행을 미래의 꿈으로 여겼던 시기,
유럽여행을 실제로 갔던 시기는 금방 과거로 변모한다.
그렇다면 시간의 순리를 거스르는 '예외'는 없을까?
이런 질문은 공상으로 여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현실적인 질문이다.
가령, 오랜 시간 어딘가에 묻혀 있던 유물이 발굴된다면
그 유물은 외부 요인에 의한 변형이 일어났을지라도
유물이 제작된 시대의 모습, 메시지까지 왜곡시킬 순 없다.
즉, 특정한 시기의 정신문화, 세계관을
'유형(有形)'으로 남긴 과거의 유물이 발굴되지 않아
세상 어느 누구도 그 존재를 몰랐던 시간은
반드시 모든 대상을 변하게 하는 '순리의 시간'이 아닌,
특정한 과거의 흔적을 보존시킨 '역행의 시간'이다.
따라서 시간의 순리를 거스르는 예외는
말도 안 되는 공상이 아니라, 말이 되는 실존이다.
이 글은 그 실존을 폼페이의 모습으로 보여주려 한다.
셋째 날, 피렌체 여행을 마치고 다시 긴 남진을 감행했다.
로마에서 저녁 식사를 하기까지 4시간을 버스로 이동했고,
피우지의 숙소까지 1시간을 더 이동했다.
'이제 로마까지 왔으니 3시간 넘게 이동하는 과정은 없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큰 오산이었다.
3일간 밀라노에서 베네치아, 피렌체를 거쳐
상당한 거리를 이동해 도착한 로마는 이탈리아의 '중부' 도시이다.
이탈리아의 남북 길이는 1,000km가 넘는다.
넷째 날의 여행지인 폼페이, 소렌토와 카프리 섬도
로마에서 3~4시간 이동해야 닿는 곳이다.
여행을 마치면 피우지의 숙소로 다시 돌아와야 했다.
셋째 날은 남진을 거듭했던 날이라면,
넷째 날은 남진한만큼, 북진도 했던 날이다.
오전 6시 반쯤, 숙소를 나와 폼페이로 향했다.
소렌토와 카프리 섬도 가야했기에 일찍 나섰다.
그리고 오전 9시, 폼페이에 도착했다.
만약 폼페이에 변고가 닥치지 않았다면,
후대 사람들에게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을 것이다.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산(Monte Vesuvio)이 내뱉은
뜨거운 용암과 화산재는 폼페이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그날 이후 폼페이에서의 시간은
순리의 시간에서 역행의 시간으로 바뀌었다.
폼페이에서 여느 일상을 보내던 사람들,
그곳에 존재했던 잡다한 물건부터 중요한 건축물까지
그날 이후 '변화하는 역사'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여기서 말하는 변화하는 역사란,
폼페이 그리고 그곳의 시민이 능동적으로 만든 역사를 뜻한다.
순리의 시간은 기억 그리고 역사를 흐릿하게 만든다.
흐릿한 과거는 다시 선명해지지 않는다.
그런데 역행의 시간 속에 멈춰있는 폼페이는
순리의 시간을 따르는 세상에
과거를 선명하게 되살리는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후대인에게 강렬한 기억을 남기고 있다.
지금의 시점에서는, 흐릿하다 못해 아예 형체조차 없는
79년 8월 24일에 대한 기억을
21세기 사람들이 폼페이 유적을 보고 상상하는 건
정말로 놀라운 일이다.
사실 역사에서 '상상, 가정'은 가급적 배제해야 한다.
역사에 생동감을 불어넣으려는 시도가
도리어 사실을 왜곡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순리의 시간에 따라 풍화된 자료 또는
역행의 시간을 담은 자료를 복원하고 연구하여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현재적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한 자료는 매우 한정적이고,
자료에 담긴 내용이 과거를 온전히 복원한다는 보장 또한 없다.
그래서 현재적 의미를 조심스럽게 부여해야 한다.
그런데 폼페이의 경우는 좀 다르다.
천재지변으로 도시 공간 내에서
벌어지던 모든 일, 존재했던 모든 것이 일시에 멈췄다.
그 당시에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한,
그렇기에 쉽게 없어지고 잊히기 쉬운 사소한 흔적까지 남아있다.
후대에 과거를 알고 싶을 때는 사소한 흔적 하나하나에도 간절하다.
역사의 온전한 복원이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산의 분노는
당대 폼페이 시민에겐 재앙이었지만,
역사를 알고자 하는 후대인에겐 뜻하지 않은 행운이 되었다.
폼페이 유적이 있는 역사 지구인
폼페이의 고고학 공원(Parco Archeologico di Pompei)은
그 규모가 대단히 넓다.
공원의 구역은 9개로 나뉘어 있으며, 주요 유적의 개수는 141개이다.
주요 유적이 '건축물'이란 점을 감안했을 때,
공원의 규모가 어떠한지 쉽게 짐작될 것이다.
폼페이 유적을 감상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앞에서 말한 순리의 시간과 역행의 시간이라는 개념을 인지하고
사진과 동영상 밑에 달아둔 캡션을 확인하며 감상하길 바란다.
그러면 21세기에 '1세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도시 한복판에서 당시 사람들의 삶을 상상한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깨닫게 된다.
필자는 폼페이 관람을 하면서
'만약 우리나라에도 고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공간이 남아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나라의 고대사든 마찬가지겠지만,
고대사는 사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신화(전설)적인 요소가 많아서
다른 시대의 역사에 비해 복원하기가 무척 어렵다.
암묵적으로 역사를 복원하는 역할은 전문가가 수행한다.
오래된 문헌을 정확하게 번역하되,
문자 너머 말하지 않은 '저자의 의도'를 읽어내며
여러 기준을 세워 신빙성을 검증하는 건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 옛날 사람들의 일상생활까지 그대로 보여주는
실물 자료가 풍부하게 남아있다면,
반드시 전문가가 역사를 복원하는 역할을 독점할 필요가 없다.
보통 사람들도 실물 자료를 보고 각자 역사상을 생각할 권리가 있다.
기록으로 뒷받침되는 실물 자료는 곧 살아 있는 역사이며,
역사상을 생각할 때 '과도한 망상'으로 빠지는 걸 막아준다.
그렇기에 역사를 증언하는 실물 자료만 풍부하면,
보통 사람들도 역사를 복원하는 과정에 참여해도 된다는 것이다.
최근 때아닌 환단고기 논쟁이 발생했다.
만약 폼페이처럼, 역행의 시간 속에 멈춰
사소한 흔적까지 남아있는 고대 한국의 유적이 있다면
환단고기는 진작에 사장되었을 것이다.
한국 고대사를 복원하는 사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한계점이
과도한 망상으로 빠진 역사상을 만들고,
그것을 추종하는 세력을 용인하지 않았나라고 생각이 든다.
이 글에서는 '시간'과 '역사 복원'이라는 개념으로 폼페이를 살펴보았다.
79년 8월 24일에서 멈춰버린 폼페이가
순리의 시간을 따르는 세상에 실존하고,
당대의 일상생활을 보여주는 사소한 흔적까지 남아있다는 사실은
'시간의 흐름은 절대적인가? 상대적인가?'
'역사를 복원할 때 보통 사람들의 상상, 가정이 개입해도 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독자 여러분에게 맡긴다.
이 글의 작성을 마치는 시점은 2025년 12월 31일에서
2026년 1월 1일로 넘어가는 순간 가운데 있다.
그러나 폼페이의 시간은 여전히 79년 8월 24일 이후로 흐르지 않으며,
순리의 시간 속에 사는 사람들이 그곳을 끊임없이 방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