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가 만든 천국, 소렌토와 카프리 섬

이탈리아에서의 여정 (6) - 지중해 휴양지 소렌토와 카프리 섬 관람기

by 샤를마뉴

이탈리아는 우리나라처럼 반도 국가이다.

삼면이 지중해로 둘러싸여 있다.

그러므로 이탈리아에 온다면

내륙 지역과 해안 지역의 경관을 모두 챙겨봐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동해와 서해(황해)의 특징이 다르듯,

이탈리아 해안 지역의 경관도 방향에 따라 차이가 있다.

12화에서 본 베네치아는

동지중해의 경관을 보여주는 곳이다.

이 글의 주제인 소렌토와 카프리 섬은

서지중해의 경관을 보여주는 곳이다.

서로 비교해보면, 경관이 사뭇 다르다.


모든 해안 지역이 관광지 내지 휴양지가 되진 않는다.

해안 지역이 사람들을 불러들이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을 갖춰야 된다.


숙박 시설과 식당이 즐비하고, 여러 볼거리를 마련하면

꼭 바다가 절경을 자랑하지 않더라도

해안 지역이 관광지로 발돋움할 수 있다.

하지만 해안 지역이 휴양지의 자격을 갖추려면,

'바다의 색깔'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바다의 색깔이 이뻐야 사람들이 '바다 하나만 보자고'

해안 지역을 찾아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동해와 서해를 찾아가는 목적을 생각하면

관광지인 해안 지역과 휴양지인 해안 지역의 차이를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동해와 서해 중 '바다 하나만 보자고' 찾아가는 곳은 어디인가?

당연히 동해이다.

동해의 물빛이 서해보다 이쁘다.


물론 서해도 바다 하나만 보자고 찾아갈 수 있겠다.

그렇지만 맛있는 해산물을 먹고,

민박을 예약해서 재밌게 노는 게

서해 여행에서 더 우선되는 목표가 아닐까?

인천의 소래포구, 시흥의 오이도를 생각해보자.

바다보다는 그 주변에 펼쳐진 식당이 떠오를 것이다.


이탈리아의 동지중해는 관광지인 해안 지역이고,

서지중해는 휴양지인 해안 지역이다.

바다의 색깔만 두고 봤을 때,

베네치아를 감도는 녹색 빛의 동지중해는

소렌토와 카프리 섬을 감도는 짙푸른 빛의 서지중해를 이길 수 없다.

이 글에서는 독자 여러분에게 그 아름다운 서지중해를

편안하게 감상하는 경험을 제공하고자 한다.


폼페이 관람을 마치고 근처 식당에서 이른 점심을 먹었다.

필자 일행 말고도 여러 일행이 줄을 섰는데,

그 식당이 맛집이라기보다는 주변에 식당이 없어서

관광객의 수요를 독점하는 것이라 보면 되겠다.

(그렇다고 식당 음식이 맛없지는 않았다.)

그 식당에서 토마토 파스타, 샐러드, 해산물 튀김을 먹었다.

오전 11시 조금 못되서 식사를 마쳤다.


폼페이에서 소렌토까지는 기차를 타고 이동했다.

치르쿰베수비아나(Circumvesuviana)라는

나폴리를 중심으로 교외 지역을 연결하는 철도망이 있다.

그 철도망을 구성하는 노선 중 하나가 나폴리-소렌토 노선이다.


폼페이의 고고학 공원과 인접한

폼페이 스카비-빌라 데이 미스터리(Stazione di

Pompei Scavi-Villa dei Misteri) 역에서 기차를 타면,

종점역인 소렌토 역(Stazione di Sorrento)까지

대략 50분 정도 소요된다.

치르쿰베수비아나 노선도
기차에서 치르쿰베수비아나 노선도를 보여주는 영상

기차를 타는 동안에 창문 너머로

소렌토와 카프리 섬 여행의 예고편이 되는

서지중해와 조화를 이루는 절벽 마을들이 보였다.

기대감을 가졌다.


그 기대감은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높아졌다.

소렌토는 필터로 사진을 보정하듯,

무언가 마법을 부린 해안 도시 같았다.

하늘의 색깔과 하나되는 서지중해, 푸른 나무,

절벽에 조각을 새겨넣은 모양새의 건축물 등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현실같지 않았다.


만약 소렌토에 마법이 적용된 게 맞다면,

그 도시의 마법사는 서지중해일 것이다.


소렌토에서 한 시간 정도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골목을 탐방하며 소렌토를 느껴봤다.

그렇게 느끼면서 알게 된 두 가지 사실이 있다.


첫째, 레몬에 대한 소렌토인의 자부심이 크다.

과장이 아니고, 골목을 돌아보는 동안

레몬을 이용한 간식 또는

레몬을 주제로 한 물건을 팔지 않는 상점은

스포츠용품, 장난감을 파는 상점 빼고는 없었다.


다이소에 가면 꼭 있는 '비싼 레몬사탕'을 아는가?

그 사탕의 고향이 바로 소렌토이다.

웃긴 점은 고향에서도 레몬사탕의 가격이 싼 편은 아니다.

그래도 레몬사탕을 하나씩 맛보라고 주는 인심은 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레몬첼로(Lemon Cello)에도

관심을 가져볼 법하다.

필자는 레몬첼로를 파는 상점에서 그 술을 시음해봤다.

도수가 약 30도 가까이 되는 독한 술임에도,

첫맛은 진한 레몬맛밖에 나지 않는다.

그렇게 진한 레몬맛은 처음 느껴봤다.


레몬첼로는 간식에도 활용된다.

레몬첼로맛 젤라또,

레몬첼로가 든 꼬마병이 동봉된 레몬사탕을

판매하는 걸 필자가 확인했다.


둘째, 소렌토에서 기리는 인물이 두 명이 있다.

성 안토니노(안토니누스,

Sant'Antonino di Sorrento, 555/556~625)와

토르콰토 타소(Torquato Tasso, 1544~1595)가 그 주인공이다.


성 안토니노는 캄파냐(Campagna) 출신의 수도사로,

소렌토에 정착하여 산 아그리피노 베네딕트 수도원장(The Benedictine

monastery of San Agrippino)을 지냈다(참고할 글).


토르콰토 타소는 소렌토 출신의 시인으로,

서사시 「해방된 예루살렘(Gerussalemme liberata)」 등을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참고할 글).


타소는 소렌토의 중심지가 되는 광장의 이름으로 붙여,

성 안토니노는 타소 광장과 성당 앞에 동상을 세우고

성당의 이름으로 붙여 기리고 있다.

필자도 두 인물에 대해 잘 모르지만, 오히려 모르니까 한 번 소개해봤다.

타소 광장(Piazza Tasso, 왼쪽)과 광장에서 본 루이지 디 마이오 길(Via Luigi di Maio), 광장의 동상은 성 안토니노의 동상이다.
소렌토의 골목 풍경
소렌토의 골목에 있는 어느 레스토랑(왼쪽)과 골목 상점에서 구매한 에코백(오른쪽)
아돌로라타 교회(Chiesa dell'Addolorata) 내부, 같은 이름의 교회가 소렌토보다 훨씬 남쪽에 있는 마라테아(Maratea)라는 곳에도 있다.
성 안토니노 성당(Basilica San't Antonino) 앞에 있는 성 안토니노 동상

소렌토 자유 관람을 마친 뒤,

절벽을 따라 소렌토 항구(Porto di Sorrento)로 내려갔다.

서지중해가 훤히 드러나며

절벽에 조각된 건축물들과 장관을 이뤘다.

정말 그 장관 하나만 보자고 소렌토에 가도 된다.

절벽 중턱에서 본 서지중해와 소렌토, 저 멀리 구름에 가려진 산은 베수비오산이다.
절벽 중턱에서 본 소렌토 항구
절벽 중턱에서 서지중해와 소렌토를 보여주는 영상
소렌토의 절벽
소렌토 항구에서 본 절벽

소렌토 항구에서 카프리 섬으로 향하는 여객선을 탔다.

배를 타는 동안 생각하는 것을 잊었다.

짙푸른 서지중해는 시각과 청각을 지배하며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소렌토 항구
소렌토에서 카프리 섬으로 향하는 여객선 탑승표(왼쪽)와 여객선(오른쪽)
여객선에서 서지중해와 소렌토를 보여주는 영상

한 30분쯤 이동해 카프리 섬에 닿았다.

카프리 섬은 비유하자면, 우리나라의 울릉도 같은 곳이다.

좁은 면적의 섬에 높은 산이 솟아있고,

관광지 물가(?)가 적용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카프리 섬에도 유구한 역사가 깃들어 있다.

그런데 이 글에서는 딱 한 가지만 얘기하려고 한다.

아우구스투스(Augustus, B.C 63~A.D 14)의 뒤를 이은

로마의 2대 황제 티베리우스(Tiberius, B.C 42~A.D 37)가

은둔하며 국정을 돌봤던 곳이 카프리 섬이다.


은둔은 국정을 책임지는 최고 지도자에 걸맞지 않은 행위이다.

그럼에도 티베리우스는 오늘날 명군으로 평가받는다.

이는 그가 로마의 사정을 훤히 꿰고 있어

은둔을 해도 국정을 돌보는 능력이 되었다는 뜻이다.


아우구스투스가 로마 제국의 '창건자'라면,

티베리우스는 창건자의 유산을 지키는 '수성자'였다.

수성자에게는 창건자와 맞먹는 유능함,

특히 실무적인 측면에서의 유능함이 요구된다.

그는 준비된 수성자였으며,

후대 황제들에게도 통치의 모범이 되었다.

(참고: 배리 스트라우스, 『로마 황제 열전』, 최파일 옮김,

까치글방, 2021, pp.79, 92, 102-104)


카프리 섬의 존재를 이 글을 읽으며

처음 알게 된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 예상한다.

필자도 여행을 하며 그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카프리 섬의 역사까지는 잘 모른다.


다만, 티베리우스가 은둔 생활을 한 사실은 알고 있었는데

그 장소가 카프리 섬일 줄은 몰랐다.

그래서 그 놀라움에서 티베리우스와 관련한

역사 이야기를 간략히 풀어보았다.

카프리 섬

카프리 섬에 있는 산의 해발고도가 꽤 높다.

체력이 된다면 걸어서 올라가도 무방하지만,

산악열차의 일종인 푸니쿨라(Funicolare)를 타면

10분만에 산의 중턱까지 주파한다.


이후 아우구스투스 정원(Giardini di Augusto)으로 향했다.

이 정원은 카프리 섬의 명승지 중 하나이다.


당시 필자는 아우구스투스 정원이

로마 황제들이 대대로 소유한 정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정원은 19세기 독일의 기업가인

프리드리히 알프레드 크루프(Friedrich Alfred Krupp, 1854~1902)가

카프리 섬에 저택을 지으며 조성한 곳이었다(참고할 글).

그 사실이 좀 깼지만,

카프리 섬이 로마 시대부터 휴양지로 알려진 것은 사실이며

정원에서 바라본 카프리 섬의 풍경은 무척 아름다웠다.


카프리 섬의 풍경을 보며 감동을 느껴보자.

푸니쿨라 탑승표
카프리 섬 산 아래의 푸니쿨라 정류장(왼쪽)과 산 중턱의 푸니쿨라 정류장(오른쪽)
산 중턱의 푸니쿨라 정류장 옆에 있는 시계탑
산 중턱의 푸니쿨라 정류장에서 본 카프리 섬 풍경 (1)
산 중턱의 푸니쿨라 정류장에서 본 카프리 섬 풍경 (2)
산 중턱의 푸니쿨라 정류장에서 본 카프리 섬 풍경 (3)
아우구스투스 정원에서 본 카프리 섬 풍경 (1)
아우구스투스 정원에서 본 카프리 섬 풍경 (2)

다시 카프리 섬 산 아래로 내려온 뒤,

나폴리로 향하는 여객선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피자를 간식으로 먹었다.


카프리 섬에서 나폴리까지는 1시간 정도 거리이다.

아침 일찍 일정을 소화한 영향으로

피로가 몰려와서 여객선 안에서 잠을 청했다.


나폴리는 경유지였기 때문에,

나폴리 항구(Porto di Napoli)와

그 뒤편으로 있는 누오보 성(Castel Nuovo)만 사진으로 담았다.

피우지의 숙소로 이동하며 이탈리아에서의 넷째 날은 저물어 갔다.

남은 유럽여행 일정은 단 하루, 로마와 바티칸에서 남겨두고 있었다.


본래 무대 행사도 끝나가기 직전에 절정에 이르듯이,

소렌토와 카프리 섬 여행도 그러한 역할을 한 것 같다.

간식으로 먹은 피자(왼쪽)와 카프리 섬에서 나폴리로 향하는 여객선 탑승표(오른쪽)
20251103_172947.jpg 나폴리 항구, 대형 크루즈(사진의 중앙)와 필자가 탄 여객선(사진의 오른쪽)이 정박해 있다.
20251103_173145.jpg 누오보 성, 누오보는 이탈리아어로 '새로운(New)'이라는 뜻이다. 1282년에 완공되어 역사가 깊고, 나폴리의 랜드마크가 되는 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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