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박물관은 전부를 말하지 않는다

이탈리아에서의 여정 (11) - 가톨릭 세계의 수도 바티칸 관람기 III

by 샤를마뉴

닷새에 걸친 이탈리아 여행,

그리고 열흘에 걸친 유럽여행의 종착지는 바티칸 박물관이었다.

열흘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닌데,

일상을 떠나 새로움과 즐거움을 만끽하는 여행에서는

왜 그렇게 짧은 시간인지 모르겠다.


그간 영국,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의 4개국을 돌아다니며

책으로만 봤을 때는 몰랐던 현장의 유럽을 많이 알아갔다.

그 앎에 처음 다가갈 때는 모든 것이 새로웠다.


새로움은 이내 익숙함으로 변한다.

유럽여행을 시작할 때 느끼는 새로움이 100이라면,

끝으로 향해갈 때 느끼는 새로움은 50~70 같다.

식생활, 교통 같은 생활의 측면에서 익숙함을 느낀 게

새로움의 정도를 줄어들게 한 이유이다.


그럼에도 익숙함보다는 새로움의 정도가 높은 것은

현장의 유럽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하나를 알면 '열까지 알고 싶어지는' 욕구로 이해하면 되겠다.

그래서 유럽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면

생활의 측면에서는 익숙해지지만,

역사, 문화 같은 전통의 측면에서는 무지를 자각하게 된다.


즉, 눈에 보이는 모든 것만 봐도 놀라는

'표면적 새로움'은 줄어들었지만,

눈에 보이는 것의 보이지 않는 내력을 읽고 싶은

'깊이를 원하는 새로움'은 늘어난 게

유럽여행이 끝나갈 무렵 그리고

그 경험을 글로 옮기는 현재 필자의 상태이다.


그러나 현장의 유럽에서

깊이를 원하는 새로움의 욕구를 충족하기에는

더 이상의 시간과 필자의 정체성이 허락하지 않았다.

여행은 일상으로 복귀하는 끝을 전제로 떠나며,

필자의 모국은 한국이다.


사실 이 글의 주제인 바티칸 박물관은

깊이를 원하는 새로움의 욕구와

그것을 충족하는 정보 간의 차이가 제일 큰 공간이었다.


여타 글의 주제들에 관해서는

필자가 평소에 잘 아는 지식도 있고,

책과 같은 모르는 지식을 채우는 수단이 받쳐줬기에

사전/사후 조사가 비교적 어렵지 않았다.


반면, 바티칸 박물관의 경우에는 필자가 모르는 지식이 많고,

그것을 채우는 수단도 생각 이상으로 미비해서 당혹스러웠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최대한 필자가 알고 있던, 알아낸 지식을

바티칸 박물관과 연결하는 정도로만 내용을 전개하겠다.


바티칸 박물관 입장 절차는 특이하다.

박물관 이름에서 보듯, 이 건물의 주인은 바티칸 시국이다.

그런데 박물관의 출입구는 로마 시내에 있다.


그래서 동선이 비효율적이다.

성 베드로 광장, 대성당을 먼저 둘러본 뒤에

바티칸 박물관을 가는 경우에는

다시 바티칸 시국에서 출국해

이탈리아의 로마 시내로 입국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필자도 그 방식으로 바티칸 박물관을 갔다.


관람객 입장에서는 '왜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동선을 설계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 것이다.

필자 역시 같은 의문을 가졌다.


그 의문은 쉽게 해소되었다.

바티칸 박물관의 유물을 해설해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잠깐 만난 가이드가 말하기를,

그 작은 바티칸 시국 내에도

소수의 관계자만 드나드는 공간이 있다고 했다.


교황의 관저인 사도궁(Palazzo Apostolico),

바티칸 정원(Giardini Vaticani) 등이 그 공간에 해당하며,

두 공간 사이에 바티칸 박물관이 있다.

두 공간으로 일반 관람객이 함부로 출입하면 안 되니,

어쩔 수 없이 박물관의 출입구를 로마 시내 쪽에 만든 것이다.

위성 사진으로 본 바티칸 시국(구글 지도), 하얀 선은 로마 시내와 바티칸 시국 간의 경계이다.
바티칸 박물관 내부에 있는 바티칸 시국 축소 모형, 나무가 많은 곳이 바티칸 정원이며, 그 왼편으로 바티칸 박물관이 있다.

사실 비효율적인 박물관 입장 동선은 큰 불만거리는 아니다.

그냥 몇 분 더 걸으면 되는 일이다.

진짜 문제는 '입장 대기 시간'이다.

필자는 1시간 40여 분만에 박물관에 입장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곳에 입장하기 위해

1시간 40분을 기다리라 하면,

차라리 안 가고 말겠다며 포기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바티칸 박물관 입장을 위한

1시간 40분의 대기 시간은 '정말 짧은 편'이다.

여행을 시작할 때부터 끝마칠 때까지 함께한 가이드,

피렌체부터 로마를 여행하기까지 2박 3일을 함께한

현지 가이드가 그 정도면 짧은 거라고 입을 모았다.

성수기에는 8시간이 기본 대기 시간이라고 한다.

그렇게 평가를 내리니,

필자는 참 적기에 유럽여행을 갔다고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박물관 출입구에는

'Musei Vaticani'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고,

그 문구 위로 세 개의 조각상이 있다.

그리고 출입구 주변으로 성벽이 둘러싸고 있다.


보통 박물관을 갈 때는 내부에 전시된 유물이 궁금하지,

흔한 문 중의 하나인 출입구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다만, 바티칸 박물관 출입구의 경우는 좀 다르다.

출입구 위에 있는 세 조각상 중

왼쪽에는 미켈란젤로,

가운데에는 교황 비오 11세(Pope Pius XI/

Papa Pio XI, 1857~1939)의 문장(紋章),

오른쪽에는 라파엘로를 표현했다.

바티칸 박물관의 출입구, 왼쪽 사진은 입장 대기를 할 때, 오른쪽 사진은 박물관 관람을 마친 직후에 촬영했다.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를 표현한 이유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일단 두 인물은 너무나 유명하고,

너무나 유명한 작품을 바티칸 시국에 남겼다.


미켈란젤로는 20화에서 본 바티칸 피에타를 조각하고,

시스티나 성당(Cappella Sistina)의 벽화로

<천지창조(본명은 아담의 창조, Creazione di Adamo)>를 그렸다.

라파엘로 역시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아테네 학당(Scuola di Atene)>을 사도궁 내부에 그렸다.

그렇기에 두 인물을 박물관 출입구의 상징물로 표현할 이유는 충분하다.


반면, 르네상스 시대의 두 예술 거장 사이에 끼여있는

20세기 교황의 존재는 어딘가 안 어울려 보인다.

그 부조화가 조화롭게 보이려면,

출입구 주변을 비롯해 로마 시내와 바티칸 시국 경계에 둘러싸인

성벽에 의미를 부여해야 된다.


본래 로마에는 교황이 다스렸던 땅인 교황령이 존재했다.

당연히 오늘날 바티칸 시국의 영역보다 훨씬 넓었다.


교황령의 기원은 중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476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

유럽 각지에는 게르만족이 세운 여러 왕국이 들어섰다.

중세 초기 이탈리아를 근거지로 삼은 왕국으로는

동고트 왕국(Regno Ostrogoto, 5세기 말~553),

롬바르드 왕국(랑고바르드 왕국, Regno Longobardo,

568~774)이 있었다.


그리스도교를 공인하고 국교화한 서로마 제국은 사라졌지만,

그리스도의 대리인인 교황까지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그러나 세속 세계의 강력한 지배자인 황제의 부재는

교황에게는 큰 타격으로 다가왔다.

롬바르드 왕국은 교황에게 큰 위협이 되었다.


교황을 비교적 안전하게 만든 인물은

프랑크 왕국(Regno Franco, 481?~843, 843년 이후에는

중프랑크/동프랑크/서프랑크 왕국으로 분열)의 궁재이자

카롤루스 왕조를 개창해 국왕 자리까지 오른

피피누스 3세(피핀 3세, Pippinus III, 714~768)였다.

그는 로마를 위협하던 롬바르드 왕국의 국왕

아이스툴프(Aistulf, ?~756)를 굴복시키고

그 대가로 얻은 로마 공국과 라벤나 총독령을 교황에게 기증했다.

이것이 교황령의 기원이다.

피피누스 3세(왼쪽)와 폴리스(Follis) 주화에 새겨진 아이스툴프(오른쪽)의 모습

교황령은 천 년 넘게 존속하다가,

19세기 이탈리아 통일 운동의 물결이 일면서 위기를 맞이했다.

이탈리아의 통일은 곧 교황령의 멸망을 의미했다.

당시 교황인 비오 9세는 통일 운동을 반대했고,

'일방적으로' 통일이 이루어진 뒤에는 바티칸에서 은둔했다.


그렇게 이탈리아 왕국과 '옛 교황령을 그리워하는'

바티칸에 은둔한 교황 간의 불편한 동거는 반 세기가량 이어졌다.

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바로 교황 비오 11세이다.

그의 재위기(1922~1939)인 1929년에 체결된

라테라노 조약(Patti Lateranensi)을 통해

바티칸 시국이 독립 국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바티칸 시국을 둘러싸는 성벽 또한 그 이후에 지어졌다.

(참고: 유희수, 『낯선 중세』 , 문학과지성사, 2018, pp.62-63 ;

호르스트 푸어만, 『교황의 역사』 , 차용구 옮김, 길, 2013, pp.229, 244-245)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가 바티칸을 빛내는 걸작을 남겼다면,

교황 비오 11세는 근현대, 특히 이탈리아 통일 이후

바티칸의 고립과 쇠락을 막았다.

그런데 라테라노 조약의 체결을 성사한 인물 중 하나가

파시즘의 선봉장인 무솔리니라는 사실은 비판적으로 생각해볼 지점이다.

교황 비오 11세의 모습(왼쪽)과 그를 상징하는 문장(오른쪽)
라테라노 조약 체결 직후 촬영된 사진, 앉아있는 두 인물의 왼쪽은 교황청 국무장관 피에트로 가스파리(Pietro Gasparri, 1852~1934), 오른쪽은 무솔리니이다.

바티칸 박물관 내부의 유물을 보여주기 전부터 얘기가 길었다.

유감스럽게도, 정작 박물관 내부의 유물에 대한 얘기는

그만큼 많이 하지 못한다.


세 가지의 이유가 있다.

첫째, 박물관을 관람할 때 거의 '멈춰있지 못했다.'

필자 일행은 30여 명이므로, 일시에 멈춰서 유물을 보면

다른 관람객에게 민폐가 되어서 계속 걸어야 했다.

가이드는 박물관 내부에서 계속 걷는 게 '암묵적인 예의'라고 강조했다.

그것이 이해는 되지만 사진을 촬영하기 쉽지 않았고,

겨우 촬영해도 잘 담기지 않은 건 아쉬웠다.


둘째, 시간이 촉박했다.

바티칸 박물관에 입장한 시각은 오후 5시가 조금 못됐을 때였다.

박물관 자체는 오후 8시까지 개관하지만,

박물관 출입구로 가는 나선형의 브라만테 계단(Bramante Staircase)은

오후 6시까지만 통행이 가능하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박물관을 관람한 시간은 3~40분 남짓이었다.


셋째, 시스티나 성당 내부의 촬영을 금지했다.

바티칸 박물관의 하이라이트이기도 한

<천지창조>의 생생한 모습을 일반인의 카메라로는 담지 못하게 한다.


그럼에도 바티칸 박물관 내부, 유물의 모습과

그것을 이해하기 위한 지식을 최대한 충실히 담으려 노력했다.

독자 여러분의 너른 양해를 바란다.

바티칸 박물관의 1층(왼쪽)과 0층, 2층 지도(오른쪽)
기존의 바티칸 박물관 입장표(왼쪽)와 새 디자인의 바티칸 박물관 입장표(오른쪽), 기존의 입장표 디자인은 <아테네 학당> 속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모습이었다.
브라만테 계단
솔방울 분수(Fontana della Pigna)
솔방울 정원(Cortile della Pigna)과 그 앞으로 있는 바티칸 박물관 1층 3번의 브라키오 누오보(이탈리아어로 '새로운 팔'을 의미, Braccio Nuovo)
브라키오 누오보의 라틴어 문구
[원문] Pius VII* P(ontifex) M(aximus) Fecit An(no) XXII
[해석] 교황 비오 7세가 재위 22년째에 (이를) 만들었다.

* 1742~1823(생몰연도)
20251104_171756.jpg 바티칸 박물관 1층 4번의 비오 클레멘스 박물관(Museo Pio-Clementino)에 있는 팔각형 안뜰(Cortile Ottagonale)
팔각형 안뜰에 있는 벨베데레의 아폴로(Apollo Belvedere), 1489년 로마에서 발견되었다. 이후 바티칸으로 옮겨졌다.
팔각형 안뜰에 있는 승리한 페르세우스(Perseus Triumphant), 페르세우스가 메두사의 머리를 들고 있다.
20251104_172034.jpg 팔각형 안뜰에 있는 라오콘 군상(Gruppo del Laocoonte), 16세기 초 로마에서 발굴된 뒤, 한동안 루브르 박물관에 있었다가 반환받았다(9화 참고).

(참고: 박윤덕 외, 『서양사강좌』(개정증보판), 아카넷, 2022, p.63 ;

이혜준 외, 『파리의 미술관』, 클로브, 2023, p.361)

20251104_172220.jpg 뮤즈 홀의 돔(Cupola della Sala delle Muse)
뮤즈 홀에 있는 벨베데레의 토르소(The Belvedere Torso), 15세기 말 로마에서 발견된 대리석 조각상이다.
원형의 방(Sala Rotonda)에 있는 네로의 욕조(Terme di Nerone, 사진 중앙)와 금박을 입힌 헤라클레스의 동상(Hercules Mastai, 사진의 오른쪽)
바티칸 박물관 2층 6번의 촛대의 방(Galleria Dei Candelabri) 내부
바티칸 박물관 2층 8번의 지도의 방(Galleria Delle Carte Geografiche)에 있는 옛날 이탈리아 지도들, 지도의 방이 앞서 본 새로운 입장표의 디자인이다.
지도의 방 천장 벽화, 마치 조각처럼 입체적인 느낌을 준다.
지도의 방을 보여주는 영상
바티칸 박물관 1층 12번의 시스티나 성당 내부 (1)
시스티나 성당 내부 (2), 유심히 살펴보면 <천지창조> 벽화를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가서 볼 때는 고개를 완전히 젖혀야 겨우 보인다.

바티칸 박물관은 대영박물관, 루브르 박물관과 함께

유럽의 3대 박물관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 대영박물관, 루브르 박물관은

우리나라 사람들 누구나 이름 정도는 알고 있으며,

국내에서 관련 정보를 얻기도 어렵지 않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바티칸 박물관은

유럽의 3대 박물관 중 하나라는 칭호가 붙음에도,

생소하게 여기는 곳이다.

필자도 바티칸 박물관에 직접 가기 전까지

그곳의 이름만 들어봤지, 무슨 유물이 전시되었는지 알지 못했다.


1주일 넘게 유럽여행을 하며 표면적 새로움이 줄어들고,

깊이를 원하는 새로움이 늘어난 상태에서

여전히 무지의 대상인 바티칸 박물관을

짧은 시간에 훑어봤으니 아쉬움이 더 컸다.

사후조사 역시 한계가 있었다.


바티칸 박물관과의 첫 만남은 짧았지만,

재회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릴 듯하다.

재회를 한다면, 그곳을 제대로 관람해볼 것이다.

이렇게 유럽여행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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