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된 1,500여 년 전의 뒷담화

『비사』개관

by 샤를마뉴
『비사』책 표지

책 정보

저자: 프로코피우스(Procopius, 5~6세기, 생몰 연도에 대한 주장이 각각 달라서 세기로만 표기함.)

제목:『비사』

옮긴이: 곽동훈

출판사: 들메나무

발행 연도: 2015년

쪽수: 247쪽

가격: 13,500원(교보문고 정가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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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개관

뒷담화를 안 해본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뒷담화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 답답한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서일 겁니다. 어떤 사람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나를 괴롭히는 상황이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무지 답답하고 화가 날 겁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 앞에서 대놓고 싫어하는 티를 내거나, 싸우면 내게 불이익이 올 것이 뻔합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보지 않는 데에서 뒷담화를 해야,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면서도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뒷담화가 주는 쾌감은 상당합니다.

뒷담화는 돌고 돌아 나에게로 돌아옵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유명한 격언처럼, 비밀은 어떤 언어적 수단으로 표출된 순간부터 없는 법입니다. 소문이 퍼지는 원리를 생각해봅시다. 한 사람이 소문의 내용을 얘기하고 그것을 불특정다수의 사람이 들었다면, 이제 그 소문은 '몇몇'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두'의 이야기가 되어버립니다. 뒷담화를 포함한 비밀을 지키는 방법은 내 마음 속으로만 생각하는 겁니다. 아니면 뒷담화 자체를 안 하는 게 현명합니다.

먼 옛날의 사람들도 뒷담화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뒷담화의 내용을 모두 알 방법은 없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이미 죽었고, 그들의 목소리도 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역사학자가 기록(사료) 하나하나에 간절한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시간이 흘러가 '과거'가 된 순간부터는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없으며, 그 순간에 남긴 것만으로 '이러한 모습이 있었겠구나'라고 추측하니까요. 그리고 지금과 달리, 기록할 권리가 제한적이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옛날에 무언가를 기록해서 남겼다는 건, 기록자가 '지식인, 상류층'인 증거가 되기도 합니다. 뒷담화마저도 기록으로 남아야, 그 내용을 알 수 있는 게 역사의 현실입니다.

비사 원서.jpg 『비사』의 한국어 번역을 위해 사용된 리처드 앳워터의 영문 번역본. 표지 그림의 가운데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그의 바로 왼쪽이 벨리사리우스 장군이다.
합성 자료 1.png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옛 서로마 제국의 영토를 회복하고,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웅장한 건축물인 성 소피아 성당을 짓게 했다.

비잔티움 제국의 역사가 프로코피우스는 뒷담화를 '똑똑한 방법'으로 남긴 사람입니다. 그는 수사학에 능했고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모두 사용할 수 있어 '지식인의 자격'을 갖췄습니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 도래한 중세 시대에는 구어(口語)와 문어(文語)가 달라지게 됩니다. 로마 제국의 강력한 통치력이 사라지면서, 지역의 판이성이 대두되었기 때문입니다. 서유럽에서는 더 이상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말할 필요성이 사라진 셈입니다. 그런데 정통한 기록은 여전히 그리스어 또는 라틴어로 쓰였기 때문에, 두 언어를 알아야 지식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석박사 과정에 재학하고, 연구자가 되려면 제2외국어를 알아야 하듯이 말입니다. 문어를 알았던 프로코피우스는 뒷담화를 지식인의 방법인 기록으로써 남겼습니다. 그 결과, 천 년은 족히 넘은 지금도 그 기록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보통 뒷담화는 불만이 있을 때 하기 마련입니다. '배운 사람'인 프로코피우스가 뒷담화를 쓴다면, '지위나 대우가 좋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Justinian I, 482~565) 시대의 명장 벨리사리우스(Belisarius, 505?~565)를 따라 군사 원정에 참여해 전공을 쌓았고, 황제에게 자신이 집필한 책을 바치는 등 사회적으로 충분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벨리사리우스를 비롯해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테오도라 황후를 신랄하게 비난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이 책의 중역에 참고한 영역본을 쓴 리처드 앳워터는 책을 '진실되게' 썼을 때와 '황제에 대한 찬양 일색'으로 썼을 때에 대한 황제의 엇갈린 반응, 황제의 권세에 지식인의 정직함이 짓눌린 것에 대한 수치심이 『비사』를 쓰는 데 영향을 줬을 거라는 추론을 하고 있습니다(책의 pp.20-22). 이 추론대로라면, 권력의 더러운 면, 그것을 이기지 못한 지식인의 양심이 프로코피우스에게는 '불만'이었을 것입니다.

뒷담화는 왜곡되고 과장되기 쉽습니다. 프로코피우스의 『비사』도 예외가 아니며, 책의 내용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습니다. 가령 책의 내용 중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사실 악령이었다'는 서술이 있는데,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기이하고, 비현실적'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이 책의 의의는 먼 옛날에 살던 사람도 뒷담화를 했고, 그것이 기록으로 남으면 이 또한 역사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이 책을 통해 비잔티움 제국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가진다면 더욱 좋겠죠. 이를 위해 세부 내용 소개에서는『비사』와 관련한 역사적 배경을 자세히 풀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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