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3분 서양사

권력의 그늘을 적은 펜

『비사』세부 내용 소개

by 샤를마뉴

이전 글 확인하기

https://brunch.co.kr/@charlemagnekim/63


세부 내용 소개

유명인에게는 이미지 관리가 그 어느 것보다도 중요합니다. 나쁜 이미지가 생기게 되면, 많은 공을 들여 쌓아온 좋은 이미지를 단번에 무너뜨리기 때문입니다. 유명인 스스로도 처신을 잘해야 되고, 유명인 주변 인물이 '유명인의 눈'이라는 점도 자각해야 합니다. 유명인 주변 인물은 유명인의 '사적인 면모'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이것에 약점이 잡히면 크게 곤란해집니다.

프로코피우스는 유명인의 눈이었습니다. 그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테오도라 황후(유스티니아누스의 아내), 벨리사리우스 장군과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그렇기에 일반 백성, 평범한 신하는 볼 수 없는 유명인의 이면을 많이 봤을 것입니다. 비록 『비사』의 내용을 온전히 믿을 수는 없지만, 개중에는 '그만이 볼 수 있었던 유명인의 이면'이 녹아들었을 겁니다.

그가 책에서 밝힌 유명인의 이면은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아내에 대한 사랑 때문에 공적인 일(군사 원정)을 그르친 벨리사리우스, 질투심이 많고 음탕해 부정하게 막후 권력을 행사한 테오도라, 국가의 경제를 파탄내고 법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는 유스티니아누스가 그것입니다. 그 이면이 사실인지는 그만이 알고 있습니다.

벨리사리우스의 사례는 스캔들(Scandal)이 가장 잘 표현해주는 단어입니다. 그는 안토니나(Antonina)를 아내로 들였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극장에서 일했는데, '음탕한 기질'이 가득했다고 합니다(책의 p.63). 이것이 복선인지, 모전여전인지는 몰라도 그녀는 남편이 양자로 들인 테오도시우스와 불륜을 저지릅니다. 목격자도 있었고 벨리사리우스의 친구도 아내를 처단하라는 말을 했지만, 벨리사리우스는 끝까지 아내를 두둔합니다. 벨리사리우스의 적자였던 포티우스와 복수를 결의했을 때도 '테오도시우스와 같이 있는 아내'가 잘못된 것이지, 아내 자체는 문제가 없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아내가 바람을 폈는데도 두둔하는 남편이라니! 그야말로 막장이 따로 없습니다.

이 또한 기억해두어라. 나는 여전히 아내를 지독하게 사랑하고 있다. 그래서 만약 내가 우리 집안을 망친 자만 골라서 벌할 수 있다면 그를 벌하고 아내는 용서하고 싶다. 하지만 테오도시우스가 함께 있는 한, 아내를 용서할 수가 없구나.

- 프로코피우스, 『비사』, 곽동훈 옮김, 들메나무, 2015, p.73

테오도라는 벨리사리우스 부부의 불륜 문제에 개입합니다. 벨리사리우스와 안토니나를 억지로 화해시키고, 포티우스를 두 번이나 감옥에 가뒀습니다. 포티우스는 세 번째 탈옥 시도에서는 성공을 거둡니다. 여기서 살펴볼 점은 테오도라의 '악독함'입니다. 종교 시설은 예로부터, 그리고 지금까지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통하고 있습니다. 포티우스는 두 번째 탈옥 때 '성 소피아 성당'으로 가서 보호받으려 했지만, 테오도라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끌어내 다시 가뒀습니다. 그녀는 '눈엣가시가 되는 인물'은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처단하는 악독함을 지녔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 탈옥 때 그는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경외해 마지않는 성 소피아 성당의 성스러운 세례반에서 보호를 청했다. 하지만 역시 거기서도 이 여자(테오도라)는 포티우스를 끌어내고 말았다. 그녀는 아무리 성스러운 장소도 경외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고, 어떤 금기도 마음대로 어길 수 있었던 것이다.

- 위의 책, pp 81-82.

결국 테오도라의 조치는 안토니나의 불륜을 용인한 셈입니다. 왜 그녀는 그런 행동을 했을까요? 그녀는 안토니나보다 더한 음탕한 기질의 소유자였기 때문입니다. 테오도라는 비천한 출신에서 황후가 된 '입지전적'인 여자입니다. 그런데 이 비천한 출신이 '매춘부'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도 매춘부에 대한 이미지는 좋지 못하죠. 책에서는 테오도라의 본래 출신에 대해 서슴없이 까발리는데, 그 내용이 매우 충격적입니다. 굉장히 적나라하므로, 여기에서는 그 내용을 제한적으로만 밝혀둡니다. 안토니나의 불륜을 용인한 그녀의 행동은 '가재는 게 편'임을 잘 보여줍니다.

그녀는 자주 임신했지만 그때마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 즉시 유산을 시켰다.

테오도라는 워낙 음란하기로 소문났기 때문에, 그녀는 평소에 다른 여자들처럼 은밀한 부분뿐 아니라 얼굴까지도 숨기고 다녀야 했다.

그녀의 이름은 모든 남자들의 입에서 일반적인 음란의 차원을 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 위의 책, pp.122-124.

유스티니아누스는 '천박함 그 자체'인 여자와 결혼합니다. 책에서는 이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기 전에, 그의 삼촌인 유스티누스(Justin I)의 무지함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언급합니다. 그는 비천한 출신이었지만, 군대에서 경력을 쌓아 끝내 황제 자리에 오릅니다. 신분 역전 자체가 놀랍지만, 문맹이었다는 큰 결점이 있었습니다. 이때 유스티니아누스는 그를 보좌하며 실권을 행사했고, 뒤를 이어 황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프로코피우스가 유스티니아누스와 테오도라가 결혼한 이야기를 다룬 것은 '역시 밑바닥 출신은 어디 가지 않는다.'라는 의도를 함축한 것으로 보입니다.

『전쟁사』(1914년 판본, 왼쪽), 『건축론』(1663년 판본, 가운데), 『비사』(1674년 판본, 오른쪽) 표지

『전쟁사』1914년 판본 확인하기


프로코피우스는 『비사』를 쓰기 전, '황제의 업적을 예찬하는' 역사서들을 저술했습니다. 『전쟁사』에서는 벨리사리우스의 군사 원정을 칭송했으며, 『건축론』에서는 성 소피아 성당을 비롯한 수도의 건축 사업을 칭송했습니다. 이 두 책이 프로코피우스의 '공식적인 역사서'입니다. 그런데 『비사』에서는 공식 역사서의 서술 내용을 완전히 뒤집습니다. 건축 사업을 '쓸데없는 건물들을 세워 재정을 낭비'한 것으로 표현하고(책의 p.183), 군사 원정의 주축이 되는 군인들의 급여를 강탈한 것을 폭로합니다(책의 p.206). 이외에도 '재정적인 문제'를 중심으로 여러 방면에서 유스티니아누스를 비난합니다. 사실상 '유스티니아누스 뒷담화'라고 봐도 될 정도로, 벨리사리우스와 테오도라를 책에서 비난한 분량을 합쳐도 유스티니아누스를 비난한 분량을 넘지 못합니다. 황제를 예찬한 만큼, 비난했습니다.

책의 줄거리는 '믿거나 말거나'입니다. 야사(野史) 정도로 받아들이는 게 적절합니다. 역사적 사실을 다룬 기록이 신빙성을 가지려면, '교차검증'이 되어야 합니다. 교차검증은 '증인 찾기'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범죄가 발생했을 때, 증인의 진술이 중요한 증거가 됩니다. 증인은 다다익선입니다. 한 명의 증인보다는, 여러 명의 증인이 있어야 더 많은 정보를 확보하고 '공통된 내용'을 추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 기록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기록에서 '공통된 내용'을 얘기하고 있어야 신빙성이 높아집니다. 그런데 프로코피우스의 『비사』외에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시대의 이면을 말해주는 당대 자료가 없습니다. 그래서 『비사』는 비잔티움 제국의 1차 자료(당대에 당대의 일을 기록한 자료)로써는 역사성이 있지만, 그 내용을 신뢰하기는 어려운 한계가 남습니다. 다만, 책이 쓰인 의도만큼은 시대를 관통합니다. 살아있는 권력에 맞서는 건 언제나 어렵고 큰 용기를 필요로 하니까요. 그건 지금도 앞으로도 깨지지 않을 '믿음(정의)'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역사가 된 1,500여 년 전의 뒷담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