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동남아시아 읽기: 개별에서 통합으로

『동남아시아史』세부 내용 소개 II

by 샤를마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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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 내용 소개

[1] 18~19세기 전반의 동남아시아

토머스 래플스(Thomas Raffles, 1783~1826)
1828년 존 크로퍼드(John crawford)가 쓴 인도 총독이 시암(타이)과 코친차이나 법원에 보낸 대사관 일지에 수록된 영국의 싱가포르 정착(위) 및 도시 계획(아래) 그림
(1) 서양의 영향
영국의 대두: 플라시 전투(1757)에서 프랑스에 승리한 후 인도에 대한 독점적 지배권 확보 -> 중국 시장으로의 진출을 위해 동남아시아의 전략적 활용 모색 ->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에 관심

(2) 중국의 영향
청(淸, 1616~1912, ~1636까지는 후금)의 등장: 청 대에는 중국의 인구가 4억을 넘기고 경제적으로 번영 + 타이완의 정씨 세력(정성공 세력, 반청 운동을 벌임)을 진압한 후 천계령(일종의 해금령) 해제 -> 화교가 동남아시아로 대거 진출

(3) 세계 추세
사람들의 구매력 증가 -> 대량 소비 상품의 생산 중요성 증가, 여기에는 상품 작물 또한 포함됨
상품 작물 재배를 위한 토지 필요 -> 무역 정책이 '대륙 우위'로 변화

(4) 동남아시아 각국의 역사적 양상
미얀마: 알라웅페야가 꼰바웅 왕조 수립(1752), 중앙 집권에 의한 지방 통치 강화, 영국과 3차례 전쟁 발생(1824~1826, 1852~1853, 1885~1886) -> 인도와 함께 식민지화
베트남: 분열기(꽝남의 응우옌 씨 정권, 하노이의 찐 씨 정권) -> 떠이 선 응우옌이 분열기를 종식하고 떠이 선 왕조 수립 -> 꽝남 응우옌 세력이 부활하여 떠이 선 왕조 멸망 -> 응우옌 아 인이 응우옌 왕조 수립(1802)
- 응우옌 왕조 대부터 베트남이라는 국호를 사용, 중앙집권화 및 가톨릭 방해 정책 추진
타이: 딱신이 톤부리 왕조 수립 -> 딱신이 반란군에 의해 처형 -> 짜오프라야 짜끄리가 짜끄리 왕조 수립(1802), 짜끄리 왕조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음
캄보디아: 분열기 통일
라오스: 타이의 속국화

(5) 서양 세력의 동남아시아 진출
네덜란드: 인도네시아 자와섬에서 커피와 사탕수수 재배 -> 나폴레옹의 등장 후 동인도회사가 일시적으로 해산되면서 영국이 그곳을 차지 -> 빈 체제(프랑스 혁명 이전의 유럽 정세로 되돌리는 보수 체제) 이후 지배권 회복, 정부의 직접 통치
에스파냐: 갈레온 무역의 쇠퇴에 따라 상품작물 재배 진행 -> 갈레온 무역 중단(1815) 및 마닐라 개항 단행(1843)
영국: 인도와 중국을 잇는 삼각 무역 전개, 말레이반도의 페낭을 무역 거점으로 확보(1786), 토머스 래플스의 싱가포르 건설 및 자유무역항 지정(1819~1820)

[2] 동남아시아의 식민 지배와 민족주의

동남아시아 식민 지배 지도(책의 p.186)
판보이쩌우(왼쪽)와 호세 리살(오른쪽)
숨빠 뻐무다 선언(Sumpah Pemuda, 청년의 맹세)
[숨빠 뻐무다 해석]
하나, 우리 인도네시아의 청년 남녀는 인도네시아라는 하나의 조국을 가졌음을 확인한다.
하나, 우리 인도네시아의 청년 남녀는 인도네시아 민족이라는 하나의 민족임을 확인한다.
하나, 우리 인도네시아의 청년 남녀는 인도네시아어라는 하나의 언어를 사용한다.

- 후루타 모토오, 『동남아시아史』, 장원철 옮김,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2022, p.241(37번 각주)
(1) 식민 지배 과정
영국: 미얀마, 말레이시아, 보르네오 북부를 자국령으로 편입
프랑스: 뜨 득 황제의 스페인 선교사 처형(1858) -> 전쟁 감행, 제1차 사이공 조약 체결(1862) -> 청프 전쟁(1884~1885) 승리 후 제2차 후에 조약 체결, 베트남을 보호국화 -> 자국령 인도차이나 수립(1887) -> 라오스 추가(1899)
네덜란드: 인도네시아와 보르네오 남부를 자국령으로 편입
에스파냐: 미국과의 전쟁 패배로 필리핀 지배권 상실(1898) -> 미국이 뒤를 이어 필리핀 지배
타이: 영국과 버니 조약, 바우링 조약을 체결해 자유 무역 허용, 쭐랄롱꼰 왕(라마 5세)의 근대화 정책 -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독립국 지위 유지

(2) 민족주의 대두 배경
식민지 엘리트의 태도 변화: 서양 열강, 식민 지배의 수월함을 위해 근대 교육 도입, 서구권 유학 허용 -> 식민지 내 엘리트의 출현, 그러나 이들은 유럽인보다 낮은 대우를 받음 -> 식민지 엘리트는 차별 대우에 불만을 품고 자신들이 중심이 되는 국민 국가 수립 움직임
근대적 조세 제도의 문제점: 전통 국가에서는 농산물 수확량에 따라 '변동적'으로 세금 부과 -> 근대 국가에서는 '정액'으로 세금 부과 -> 농민 생활의 악화, 폭동 발생
민족자결주의의 원칙: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개최된 파리 강화 회의에서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제창한 원칙 -> 민족주의에 힘을 싣는 근거로 작용

(3) 동남아시아 각국의 민족주의
<대륙 국가>
미얀마: 청년 불교도연맹 결성 -> 인도로부터의 독립 요구(사실상 영국의 식민 지배에 저항)
타이: 대공황 이후 입헌 혁명 발생(피분 쏭크람의 쿠데타) -> 입헌 군주제로의 변화 및 헌법 제정 -> 국명을 타일랜드(Thailand)로 변경(1939), 랏타니욤이라 불리는 국민통합 정책 실시
베트남: 판보이쩌우와 판쩌우찐이 중심이 되어 민족운동 전개, 사회 진화론의 영향을 받아 베트남만이 문명개화가 가능하다고 주장 ->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온건적 민족 운동을 전개하다가 1930년대를 기점으로 급진화, 베트남 공산당 조직
캄보디아, 라오스: 反베트남 성향의 민족운동 전개 -> 그 배경에는 프랑스가 식민 지배 과정에서 캄보디아, 라오스와 베트남을 이간질한 것이 있음

<도서 국가>
필리핀: 에스파냐의 본국인과 혼혈인(크리오요) 차별 + 에스파냐로 유학한 필리핀인을 중심으로 계몽 운동 전개 -> 호세 리살의 민족 운동, 안드레오 보니파시오의 카티푸난 결성이 대표적 -> 필리핀인이라는 국민 의식 형성
인도네시아: 네덜란드의 정책 변화로 복지 및 교육 여건 개선 -> 그 영향으로 계몽적 성격의 민족주의 출현 -> 부디 우토모, 동인도협회(인도네시아 공산당 전신), 인도네시아 국민당 결성이 대표적
- 인도네시아의 의미가 지리적 의미에서 정치적 의미로 변화, 숨빠 뻐무다 선언 발표가 계기

(4) 기타 민족주의
화인: 중국 민족주의가 동남아시아에 유입 및 확산 -> 중화 총상회 설립, 남양 화교 중학 설치(중국어 교육기관), 싱가포르에 중국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 지부 설치, 국공 합작 및 항일 투쟁에 동참
국제 공산주의 운동: 민족주의자들 사이에서 소련을 우호적으로 인식, 동남아시아 각국의 공산당이 코민테른에 동조
- 코민테른: 소련에서 조직한 국제 공산주의 조직, 각국 공산당은 코민테른의 지부와 같은 역할 수행

[3]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의 동남아시아

제2차 세계 대전 시기 일본의 최대 영역(1942년 기준)
(1) 의의
동남아시아 정치적 노선의 분화: 식민지로부터의 독립을 공통 목표로 하되, 이를 위한 현실적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뉨
- 反파시즘 진영에 협력, 파시즘 진영에 협력해 식민 지배국에 대항, 어느 진영에도 소속 X
동남아시아의 용례 변화: 정치적 의미의 용어로 사용, 지역적 결속 시작

(2) 일본의 동남아시아 지배
배경: 국제적 고립의 극복을 위해 동남아시아를 점령하자는 주장 제기
전개: 1940.9 북부 인도차이나, 1941.7 남부 인도차이나에 군대 주군, 1942.1 마닐라 점령, 1942.2 싱가포르 점령, 1943.3 미얀마 및 자와 점령 -> 일본의 전황이 악화되자 동남아시아 각국의 독립을 지원해 전세 타개를 도모했으나 실패
- 동남아시아 점령 과정에서 진주만 공습(1941.12)과 미드웨이 해전(1942.6) 발생, 미국과 충돌

(3) 일본의 동남아시아 지배에 대한 각국의 대응
<대륙 국가>
미얀마: 일본에 협조하면서 동시에 자체 역량 비축 -> 영국군이 일본군을 반격하자 이에 편승
타이: 초기에는 일본에 협조 -> 일본의 전황이 악화된 후 '전범국에 협조'했다는 오명을 피하기 위해 강요받은 것이라 해명 + 자유 타이 운동 전개
베트남: 일본, 기존의 프랑스 식민지배를 허용 -> 전황이 악화하자 독립을 보장 -> 일본에 협조하는 쩐 쫑 낌 내각 수립, 이내 붕괴 -> 자주 독립 세력이 힘을 얻어 베트남 민주 공화국 수립(1945.9)

<도서 국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화인의 경제적 협력을 기대하고 일본이 접근했으나 실패
인도네시아: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았기에 일본군을 '해방군'으로 인식 및 협력(이용 목적) -> 일본, 전황이 악화하자 독립 보장 -> 인도네시아 독립 준비위원회 결성, 공화국 선포(자주독립 강조)
필리핀: 일본에 대항하여 게릴라 활동 전개, 마누엘 케손이 미국에 망명 정부 수립

[4] 냉전 이후의 동남아시아

1955년, 아시아 및 아프리카 29개국이 참여한 반둥 회의의 모습
1967년,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ASEAN]이 출범하는 순간
(1) 냉전 속의 전쟁
인도네시아 독립 전쟁: 네덜란드의 인도네시아 식민 지배 재시도 -> 공화국의 지도부 체포, 공화국에 대항하는 쿠데타 발생 -> 네덜란드에 대한 국제적 여론 악화, 국제 연합은 공화국 지도부 석방을 요구 -> 헤이그 협정 체결(1949) -> 인도네시아의 독립 공인
베트남 전쟁: 두 차례에 걸쳐 발생 -> 첫 번째는 프랑스로부터의 독립, 두 번째는 미국과의 국지전
- 전쟁 시기를 해석하는 세 가지 관점 -> 베트남의 관점에서는 1954~1975년, 미국의 개입부터 시작으로 볼 시 1960~1975년, 미국이 직접 전쟁에 참전한 것을 시작으로 볼 시 1965~1973년
- 미국은 한국 전쟁을 교훈으로 삼아 전면전이 아닌 국지전의 방식으로 참전

(2) 동남아시아 각국의 개발 독재
배경: 동남아시아 각국이 미국 중심의 질서에 편승하기 위해 경제 발전을 우선시, 정치적 자유는 억압
<사례>
미얀마: 네 윈이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 사회주의 체제 구축
타이: 싸릿 타나랏 정권 수립 후 ‘타이적인 원리(민족, 불교, 국왕)’를 근간으로 하는 독재 체제 구축, 고도 경제 성장 이룩 -> 권위주의 통치에 대한 국민적 저항 발생(1973)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정권의 개발 독재 체제, 친서방 및 반공 정책 추진, 고도 경제 성장 이룩
필리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의 개발 독재 체제, 토지 개혁 및 외자 유치 추진

(3) 동남아시아의 지역적 결속
제3세계의 성립: 뉴델리 회의(1948) -> 콜롬보 회의(1954) -> 반둥 회의(1955)를 통해 제3세계 출현 공식화
- 반둥 회의에서의 평화 10원칙 발표가 상징적 사건
지역 공동체: 동남아시아 연맹(1947) -> 동남아시아 연합(1961) ->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간의 대립 문제 해결 후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ASEAN] 출범(1967) -> 제1회 정상회의 개최(1976), 동남아시아 우호 조약 체결 -> 가입국의 확대(베트남은 1995년, 라오스와 미얀마는 1997년, 캄보디아는 1999년에 가입)

(4) 1980~1990년대의 변화
배경: 세계화의 진전으로 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 재편 필요성 증가, 사회주의 경제 체제의 실패, 개발 독재 체제에 대한 저항
<대륙 국가의 사례>
미얀마: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의 전국 민주 연맹 압승, 그러나 군사 정권이 지속 -> 군사 정권도 사회주의 경제 체제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개혁 개방 정책 추진
태국: 군부 정권과 민정 정권의 교체 반복, 1978년 헌법을 통해 국왕의 정치적 실권 획득
베트남: 도이머이 정책 채택(1986), 외교 노선의 확대(모든 국가와 친구가 된다는 원칙 견지)
라오스: 개혁 개방 정책 시행(찐 타나칸 마이)
캄보디아: 총선 실시 후 캄보디아 왕국 수립(1993)

<도서 국가의 사례>
인도네시아: 1990년대 아시아 경제 위기 이후 수하르토 독재 체제에 저항하는 민주화 운동 발생 -> 수하르토 퇴진(1998)
필리핀: 1986년 혁명(피플파워 혁명)으로 마르코스 독재 체제 붕괴, 대통령 6년 단임제 개헌

[5] 종합 정리

1.
전근대와 달리, 근현대 동남아시아는 '통합적'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통합적 움직임은 민족주의와 지역적 결속입니다. 그 결과, 오늘날 동남아시아는 여느 국가들처럼, 국민 국가가 형성됐으며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이라는 지역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2.
근현대 동남아시아의 역사적 흐름이 한국과 유사한 부분이 많습니다. 식민 지배, 개발 독재, 민주화의 측면에서 특히 그렇습니다.
3.
동남아시아 역사는 일종의 '뒷마당'입니다. 동남아시아 역사 속 서양 국가, 동아시아 국가가 어떻게 영향을 줬는지를 살펴보면, 동아시아사 또는 세계사를 좀 아는 사람들도 몰랐던 부분, 반쪽짜리 인과관계가 완전히 풀리는 부분을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그간 알았던 역사의 공백 지대를 메울 수 있다는 뜻이죠. 이 중간 지대 역사를 이해함으로써 동아시아 및 세계사를 보는 관점, 지식의 넓이와 깊이를 점검해보는 경험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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