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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시대 교회 내부자의 블랙 코미디

『우신예찬』개관

by 샤를마뉴
『우신예찬』책 표지

책 정보

저자: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Rotero damus, 1466?~1536)

제목: 『우신예찬』(Moriae Encomium)

옮긴이: 김남우

출판사: 열린책들

발행 연도: 2011년

쪽수: 284쪽

가격: 13,320원(교보문고 정가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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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개관

지금은 풍자를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라는 권리 안에 '풍자의 자유'도 포함되어 있죠. 그런데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았던 옛날에는 풍자를 목숨 걸고 해야 됐습니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국왕 혹은 황제를 비난이라고 했다간 목숨이 날아갔고, 유럽 문화권에서는 교회의 권위가 절대적이었기에 이에 반항하는 움직임은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에라스무스는 그 권위 있는 교회를 풍자하는 모험을 감행했습니다. 어떻게 그 모험이 가능했을까요? 풍자 너머에 사회적 메시지가 있듯, 역사를 증언하는 풍자 자료에는 그 너머의 역사적 메시지가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에라스무스가 『우신예찬』을 내놓았던 시대적 배경을 먼저 짚어보겠습니다.

르네상스 권역 지도
에라스무스의 그리스어 번역본과 라틴어 번역본을 함께 수록한 신약성서(Novum Instrumentum omne)

에라스무스는 북유럽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인문주의자입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알아도, 북유럽 르네상스는 생소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 예상합니다. 선후관계를 따지자면, 르네상스의 발원지는 이탈리아가 맞습니다. 그렇다고 이탈리아 르네상스 = 북유럽 르네상스는 아닙니다. 북유럽 르네상스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은 건 맞지만, 독자성도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독자성으로 대표되는 건 기독교(그리스도교) 비판입니다. 『우신예찬』은 기독교 비판의 대표적인 사례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북유럽 르네상스에서의 기독교 비판은 인문주의자를 중심으로 성경 자체를 연구하는 방식으로 행해졌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성경은 각국어로 번역되지 않아서, '직접 읽으려면' 그리스어(헬라어)와 라틴어에 대한 지식이 필요했습니다. 성경을 직접 읽느냐, 사제가 말해주는 걸 듣느냐에서 지식인과 非(비)지식인으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당대 인문주의자는 구어로 사용되지 않는 문어, 각종 고전 등에 해박한 '지식인 엘리트'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이탈리아의 로렌초 발라(Lorenzo Valla, 1407~1457)는 교황의 세속 지배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활용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전장'이 위조된 문서임을 밝혀냈다.

에라스무스는 인문주의자이기 이전에 신학자였고, 그리스어와 라틴어에 해박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성경에 쓰인 원어를 알아야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그리스어 및 라틴어 번역본을 함께 수록한 신약성서를 출간했습니다. 라틴어 번역본은 '불가타 성경'이라는 권위 있는 정본이 존재했지만, 그는 불가타 성경에도 잘못 번역된 부분이 있음을 확인하고 이 역시 새롭게 번역했습니다. 사료도 여러 판본이 있다면, 그것들을 꼼꼼히 비교해서 어떤 것이 진실인지 가리는 사료비판을 행해야 합니다. 사료비판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에서 대두되었으며, 에라스무스가 번역한 신약성서는 사료비판을 성경 연구에 적용한 사례입니다. 종교 개혁을 주도한 루터 역시도 그가 번역한 신약성서를 읽었을만큼, 그의 영향력은 결코 약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을 갈기갈기 찢고 다시 자신들이 찢기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는 희랍어(그리스어)와 히브리어를, 아니면 최소한 라틴어라도 배우는 것은 얼마나 바람직합니까? 이런 고대어들에 대한 지식은 성서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내가 보기에 어떤 사람이 교회 학자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이들 고대어 가운데 하나라도 배우지 않는다면 이는 끔찍한 후안무치입니다.

마지막으로 심지어 우리의 불가타 판본이 상이하다는 것을 우리가 알았을 때, 우리는 무엇을 말해야 하겠습니까? 이런 불일치는 분명, 무언가 변화가 있을 것을 예측하였던 종교 회의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친애하는 도르프 씨, 내가 바라는 것은 다만, 로마 교황청이 충분한 시간을 두고 이 문제를 발전적으로 검토할 위원회를 만들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훌륭한 저자들의 훌륭한 작품들을 복원하고 정확한 성경 판본으로 현 성경 판본을 대체하기 위한 준비 작업을 추진하였으면 하는 것입니다.

- 에라스무스, 『우신예찬』, 김남우 옮김, 열린책들, 2011, pp.233, 243.

『우신예찬』은 필자가 나름 자세히 탐구해봤던 책입니다. 그 계기는 대학 1학년 2학기 때 들었던 <역사와 인물> 수업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수업명에서 보아 알 수 있듯이, '인물'을 중심으로 각종 역사를 알아보는 수업이며, 교수님의 전공에 따라 운영 방식도 크게 달라집니다. 당시에는 (필자가 존경하는) 서양사를 전공한 교수님께서 수업을 담당하셔서 서양사 속 인물을 많이 다뤘습니다. 그 중에서 기억에 남았던 수업 내용은 '루터'를 주제로 종교 개혁을 다뤘던 것입니다. 중고등학교 때 세계사를 배우면 익숙한 주제라 접근이 쉽기도 하고, 종교 개혁과 관련해서 몰랐던 내용을 알게 되어서 흥미로웠습니다. 기말 과제로 인물 탐구 보고서를 작성해야 됐는데 종교 개혁으로 어떻게 보고서를 쓸지 고민하던 찰나, 사두고 읽지 않았던 『우신예찬』이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이름만 알았던 『우신예찬』을 탐구하게 되었습니다.

에라스무스에 관심을 가지며, 여러 의문도 생겨났습니다. '에라스무스는 교회를 신랄하게 풍자한 책을 썼는데, 왜 루터의 종교 개혁에는 동참하지 않았을까?', '에라스무스와 루터는 활동 연대가 비슷한데, 둘 간의 직접적인 교류는 없었을까?'가 인물 탐구 보고서를 쓰기 위한 핵심 질문이었습니다. 그 후 『우신예찬』과 에라스무스와 관련한 참고 문헌들을 읽으며 그 질문에 어느 정도 답을 내렸습니다. 루터의 종교 개혁은 기존의 기독교 틀을 완전히 혁파하는 운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에라스무스는 기독교의 틀을 유지하고, 개혁만 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기에 종교 개혁에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두 인물은 서로 교류도 했습니다. 이와 관련한 내용은 세부 내용 소개글에서 자세히 얘기할 예정이지만, '종교적인 얘기면 지루하지 않을까?'라고 의문을 가질 독자 여러분을 위해 미리 흥미로운 지점을 언급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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