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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3분 서양사

전쟁에 압축된 유럽 사회와 역사

『유럽사 속의 전쟁』세부 내용 소개

by 샤를마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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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 내용 소개

흔히 역사는 '발전'되어 왔다고 얘기합니다. 역사를 구성하는 요소의 발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발전이 반드시 역사의 발전으로 귀결되지는 않았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전쟁의 발전'입니다. 근대 과학혁명이 발생하면서, 사람들은 '합리성'을 점차 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도 합리성을 추구할 수 있다는 믿음은 사회 발전에 대한 낙관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서양 근대의 분위기가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서양 근대의 끝은 파멸적인 '세계 대전'이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세계 대전을 가능케 한 근저 중에는 '과학 기술의 발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과학 기술의 발전 방향이 좋지 않은 쪽으로 흘러가며 빚어진 비극입니다. 전쟁의 발전은 도리어 사회의 퇴보를 불러일으키는 역풍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전쟁의 발전이 역사를 구성하는 요소의 발전을 뒷받침하는 아이러니 또한 존재합니다. 하루아침에 발생하는 전쟁은 없습니다. 그리고 전쟁을 일으키려면, 여러 조건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전쟁을 위한 비용, 전쟁에 동원할 인력, 그 인력을 뒷받침하는 각종 지원 등이 말이죠. 결국 전쟁도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발생하는 현상인 셈입니다. 사회적 합의는 시대가 흐를수록 복잡하고 정교해지는 양상을 보이게 됩니다. 합의에 도달하기 위한 기준이 많아지기 때문이죠. 이렇게 볼 때 전쟁의 발전은 사회를 퇴보시키는 폭발력을 가진 재앙인 동시에 사회 발전이 낳은 산물입니다.

960px-Landsknechte.jpg 독일 지역에서 주로 활동했던 용병인 란츠크네히트(landsknechte, lansequenets)의 모습(책의 pp.48-50에서도 언급됨)

『유럽사 속의 전쟁』은 전쟁과 관련된 핵심 요소를 짚어내고, 유럽사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추적합니다. 책 목차이기도 한 전쟁의 핵심 요소는 기사, 용병, 상인, 전문가, 혁명, 국민, 기술자로 총 7가지입니다. 여기에서는 그 핵심 요소의 함의를 중심으로 몇 가지 기준에 따라 전쟁의 발전 과정, 전쟁을 규정하는 개념의 변화를 짚어보며 책을 이해하는 큰 맥락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첫째, 전쟁의 주체 차이입니다. '기사'와 '국민'을 전쟁과 연결해 비교해봅시다. 기사의 전쟁은 결투가, 국민의 전쟁은 징병이 연상되지 않습니까? 그 차이를 역사의 영역으로 확대해서 보면 기사가 전쟁의 주체가 되는 시대는 '봉건 사회'가 일반적이었던 중세, 국민이 전쟁의 주체가 되는 시대는 '국민 국가'가 일반적이었던 근대 이후가 됩니다. 전쟁의 주체가 소수에서 다수로 확대되고, 그 과정에서 시대상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둘째, 전쟁 배후 세력의 차이입니다. '용병'과 '상인'을 전쟁과 연결해 비교해봅시다. 용병은 어느 편에 구애되지 않고 '고용해서' 쓰는 병력이며, 상인이 갖고 있는 경제력은 전쟁의 향방을 가르는 관건이 되기도 합니다. 즉, 용병과 상인의 공통 분모는 '돈'입니다. 돈이 핵심 요소가 되었다는 것은, 전쟁의 승패가 돈에 달려있으며 전쟁에 충당할 돈의 확보가 중요해졌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 방법이 표면화된 것이 유럽에서는 용병과 상인이었습니다. 유럽 각국이 상비군을 안정적으로 운용하지 못했던 전근대에는 용병 고용이 일반적으로 행해졌습니다. 상비군이 마련된 근대 이후부터는 그들을 '먹여살릴' 재원 확보가 중요해졌습니다. 그 재원을 상인에게서 찾았습니다. 따라서 전쟁 배후 세력이 용병에서 상인으로 변한 것은 돈으로 군인을 고용하느냐, 고용된 군인을 돈으로 유지하느냐의 차이입니다.

폐하(루이 14세)께서는 유럽의 모든 국가에 맞서 부를 늘리기 위한 전쟁을 치르고 계십니다. 당신께서는 이미 스페인과 이탈리아, 독일과 영국, 그리고 다른 몇몇 나라를 정복하셨으며 이들 국가에 엄청난 불행과 가난을 안겨주셨습니다. 그리고 당신께서는 이들 국가를 약탈함으로써 부를 취하셨습니다. 이제 홀란트(네덜란드)만 남았습니다.

17세기 말엽 영국의 논객 찰스 대버넌트[1656~1714]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오늘날 모든 전쟁술은 돈으로 단순화되었다. 오늘날 가장 확실히 성공과 정복을 취할 수 있는 군주는 가장 용감한 부대를 거느린 자가 아니라 자신의 군대를 먹이고, 입히고, 임금을 줄 수 있는 돈을 가장 잘 찾아내는 자이다."

- 위의 책, pp.117, 123.
A_view_of_the_Royal_Navy_of_Great_Britain%2C_published_15_Mar_1804_RCIN_735105.jpg 1804년에 출판된 영국 해군 소속 군함의 명칭과 등급을 나눈 표(책의 p.205에도 수록됨)

셋째, 전쟁 지도 방법의 체계화입니다. '전문가'와 '기술자'를 전쟁과 연결해봅시다. 군대는 매우 많은 병력을 포괄하는 집단입니다. 따라서 집단을 통제하려면, 통솔력이 있는 지도자 또는 기구가 필요합니다. 혹은 집단을 세분화하는 것도 효율적인 관리에 도움이 됩니다. 군대의 체계화는, 군대보다 상위의 집단인 국가 또한 체계화되었을 때 가능해집니다. 국가가 군대를 하나의 조직도로 그려내는 청사진을 제시하고, 군대 역량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방법론을 제시해야, 군대도 그 흐름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그 큰 과제를 해내는 인력이 관료로 대표되는 '전문가'와 좋은 무기를 개발하는 '기술자'입니다. 그러므로 전쟁 지도 방법의 체계화는 유럽 각국의 근대화와 깊은 연관이 있으며, 사람들의 전쟁에 대한 인식과 전쟁 양상도 '근대적'으로 변화하는 실질입니다.

마지막으로, 전쟁을 받아들이는 인식의 차이입니다. 다시 '기사'와 '국민'을 연결해 전쟁을 비교해보되, 이번에는 '혁명'이라는 개념까지 같이 고려해보겠습니다. 유럽에서는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을 시작으로, 19세기에는 유럽 전역으로 혁명의 물결이 확대되었습니다. 민족주의는 혁명의 대표적인 산물로, 19세기의 중요한 사조가 되어 민족 국가를 수립하는 움직임으로도 나타났습니다. 이탈리아와 독일의 통일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민족주의는 같은 민족 간의 유대감을 쌓는 이데올로기입니다. 그렇다면 민족주의가 있는 상태와 없는 상태에서의 전쟁 양상 또한 다를 것입니다. 국민이 동원되는 전쟁은 전자의 전쟁, 중세 기사들끼리의 전쟁은 후자의 전쟁에 해당합니다. 쉬운 예로, 우리나라 병역 제도를 생각해봅시다. 개인의 자유, 젊음 등을 희생하지만 '당연히 하는 것'으로 여기는 이유는 전시 상황에 우리 민족으로 구성된 국가를 지키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종합 정리>
(1) 중세 시대 기사 중심의 전쟁 -> (2) 근대 초기 국가의 부 축적을 위한 전쟁 -> (3) 프랑스 혁명 이후 민족을 위한 전쟁 -> (4) 제1차 세계 대전을 기준으로 국민이 총동원되는 전쟁(총력전)

핵심 요소를 (1)~(4)의 과정에 배열할 시:
(1)에 기사, (1)과 (2)의 사이에 용병, (2)에 상인, 전문가, (3)에 혁명이 해당
(3)과 (4)의 사이에 국민의 개념이 점차 부상하다가 (4)에 확립
(4) 이후부터 기술력의 중요성 증가

전쟁의 발전은 '이성적으로' 바라보면 역사의 한 축이자, 발전 증거입니다. 전쟁은 특정한 지역, 시대에만 국한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시대를 관통하는 개념이자 '사회 현상'입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코끼리를 만지면 전체적인 형상을 모르듯이, 전쟁 또한 그러합니다. 사회는 다양한 구성원 그리고 이해관계의 집합입니다. 전쟁에는 사회의 복잡한 단면이 묻어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역사도 여러 관점에서 해석하고 연구되어야 하는 분야입니다. 그러므로 전쟁의 이해는 사회의 이해가 수반되어야 하며, 사회와 같이 이해한 전쟁을 역사에 투영할 때 전쟁으로 역사를 통찰하는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책 뒷면의 홍보 문구처럼 "산맥을 관찰하는 독수리의 시선"을 획득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그 과정은 쉽지 않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대가의 지식과 통찰력을 번역된 책으로 음미할 수 있음에 기뻐하면 되겠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전쟁, 전쟁사, 일반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의 큰 발전이 이루어지길 기대합니다.


p.s 책에는 세부 사례가 많이 수록되어서, 그것들을 꼼꼼하게 다루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글이 장황해질 우려가 있고, 책의 큰 맥락을 이해하는 게 더 중요하겠다고 판단해 생략했습니다. 따라서 세부 사례가 궁금하신 분은 책을 직접 읽어보며 확인하는 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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