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사 속의 전쟁』개관
책 정보
저자: 마이클 하워드(영국의 전쟁사학자, Sir Mich ael E. Howard, 1922~2019)
제목: 『유럽사 속의 전쟁』
옮긴이: 안두환
출판사: 글항아리
발행 연도: 2015년
쪽수: 397쪽
가격: 20,700원(교보문고 정가 기준)
구매 링크(눌러보세요)
책 개관
역사는 일명 '덕후력'이 강하게 작용하는 분야입니다. 역사덕후가 되면, 일반인의 관점에서는 '어떻게 자세한 내용을 다 알지?'라고 놀랄 정도로 특유의 덕후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역사덕후가 되는 계기는 다양합니다. 역사의 스토리텔링에 익숙해지면, 자연스레 역사적 사실을 술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거기서 '내가 역사를 좀 잘한다.'라는 자신감을 가지면, 역사덕후의 길로 갈 확률이 높아집니다. 혹은 '모든 분야를 포괄하는' 역사의 특성상, 역사 속 한 분야에 유달리 관심을 가져 역사덕후가 되기도 합니다.
전쟁사(군사사)는 역사덕후의 영역으로 강하게 인식되는 분야입니다. 사실 역사 속 어떤 분야든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사람은 전부 역사덕후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전쟁사를 역사덕후의 영역으로 먼저 꼽는 이유는, 그 분야가 역사덕후 고유의 의미를 정확히 대변하기 때문입니다. 덕후는 아마추어와 전문가를 가리지 않습니다. 그저 어떤 분야에 대한 열정과 흥미만을 갖고 있으면 됩니다. 전쟁사는 다른 분야의 역사와 달리, '아마추어 역사덕후'까지 포용하고, 그들이 목소리를 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전쟁사 덕후의 주요 관심사는 보통 양차 대전, 군사 편제, 무기(군수)로 꼽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전쟁에서 '배우는 흥미'를 찾습니다.
그렇다면 전쟁을 흥미의 대상으로 여기는 자세는 옳을까요?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쟁은 분명한 비극입니다. 일상이 멈추고, 매일 생명의 위협을 받고, 극한의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죠. 전쟁사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자세 자체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전쟁사 공부를 통해 능동적인 역사가가 되고자 한다면, '왜 전쟁사를 공부하는지' 스스로에 질문을 던지고, 전쟁사를 공부하는 방법이 역사를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방법과 대응되는지 고려해야 됩니다. 이 두 가지 생각해볼 지점에 대해 자신 있게 답변을 내놓지 못한다면, 전쟁을 단편적으로 바라보지 않았는지, 흥미의 대상으로만 여기지 않았는지를 되새기면 좋겠습니다. 냉정히 말하자면, '아마추어 전쟁사 덕후'가 이에 해당됩니다.
『유럽사 속의 전쟁』은 전쟁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전쟁사를 공부하는 의미와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 통찰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교범이 될 만합니다. 저자 마이클 하워드는 영국의 전쟁사학자로, 일평생 전쟁사 연구에 매진했습니다. 전쟁사 덕후이자, 전문적 역사가인 그가 유럽의 전쟁사를 풀어내는 방식은 일반적인 전쟁사 접근 방식과 사뭇 다릅니다. 전쟁 자체를 보기 이전에, 사회를 보기 때문입니다. 그는 책에서 전쟁을 다룰 때, 전쟁이 일어나던 시대의 사회 동향, 사회 동향이 전쟁의 발현으로 이어진 과정, 전쟁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등을 반드시 언급합니다. 전쟁을 사회 현상의 하나로 보고, 인문학적으로 해석하는 그의 관점은 신선하고 동의할 만합니다. 전쟁사의 단편에 집중해 정작 전쟁을 둘러싼 역사의 메커니즘을 보는 것을 간과하기 쉬운 아마추어 전쟁사 덕후에게는 관점을 수정 및 발전시키는 데 탁월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 책은 일반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 역사 전공자에게도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전쟁을 핵심 주제로 '유럽사'라는 통사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보통 역사책에서 전쟁은 양차 대전을 제외하면, 전쟁 이름만 나열하거나 과정만 간단히 기술하고 끝납니다. 즉, 역사교육이나 역사 연구에 있어서 전쟁을 주인공으로 세우는 일이 많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 점에서 이 책은 전쟁이 역사의 들러리가 되는 서술 방식을 타파하고, 전쟁을 전면에 세우고 역사를 조망하는 '흔치 않은 책'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전쟁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역사의 큰 줄기를 읽게 하는 역할로, 역사의 큰 줄기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에게는 '분야사'로 역사를 재정의해보는 역할로 작용합니다.
문제의식을 갖고 행동으로 옮기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역사학은 인문학의 한 분과로서, 문제의식을 갖는 자세를 생활화해야 합니다. 그런데 역사학도 '역사학 내부의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부족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이클 하워드는 전쟁사를 역사와 분리하고, 도구적 성격으로 연구하는 태도 등에 문제를 삼고 전쟁사 연구에 일평생을 매진한 배경을 책 서문에서 밝혔습니다. 일반 역사학자도 아니고, 전쟁사학자라는 독특한 지위를 가졌으니, 그에 대해서도 충분히 궁금증을 가질 만합니다. 옮긴이는 글 말미에 저자의 전쟁사 연구 여정을 해제함으로써 궁금증을 해소시켰습니다. 그 내용을 아래 인용문으로 옮기며 글을 마치고, 세부 내용 소개에서 저자가 유럽사 속의 전쟁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저자 서문 中]
전쟁 연구는 주로 교훈의 도출, 즉 불변하는 '전쟁의 원칙들' 혹은 미래에 좀 더 효과적으로 전쟁을 치르기 위한 길잡이로서 일련의 전개 과정을 파악하는 데 관심을 둔 대중작가들과 군사전문가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전쟁 연구는 단지 두 영국 대학(옥스퍼드대, 런던대)에서만 진지하게 받아들여졌으며, 안타깝게도 오늘날 여전히 대부분의 서점이 그러하듯, 서점에서는 '군사사'를 서가에서 눈에 띄지 않도록 일반 역사로부터 격리하여 진열했다.
[옮긴이 해제 中]
하워드가 보기에 전쟁사는 전체 사회에 대한 연구였다. 다시 말해, 한 사회가 무엇을 위해 싸웠으며, 왜 그러한 방식으로 싸웠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당 사회의 문화를 공부해야만 했다. …(중략)… 하워드에게 전쟁사는 그의 후임자 중 한 명인 브라이언 레이드가 최근 헌정 논문에서 정확히 집어냈듯이, 전쟁을 사회 현상의 하나로 다루는 인문학적인 연구였다. 이러한 점에서 하워드는 엄밀히 말하자면 군사 전문가가 아니라 전쟁이 사회 일반에 미치는 영향에 주된 관심을 두는 전문 역사가라 칭할 수 있을 것이다.
- 마이클 하워드, 『유럽사 속의 전쟁』, 안두환 옮김, 글항아리, 2021, pp.8, 333, 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