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굴 제국의 역사』세부 내용 소개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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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 내용 소개
거대 제국은 역사에서 롤모델이 되어왔습니다. 동서양의 거대 제국을 꼽으면, 단연 로마 제국과 몽골 제국이 되겠습니다. 두 제국은 존재했을 당시에는 찬란함을 선보였고, 사라진 뒤에도 많은 유산을 남겼습니다. 거대 제국의 계승국(후예국)이 들어서기도 했습니다. 계승국의 등장은 거대 제국의 정통성을 이었다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재밌는 점은 그 계승국도 세대 교체를 거듭했습니다. 가령, 거대 제국의 뒤를 바로 잇는 1세대 계승국이 나름의 위용을 자랑하다가 사라지면, 2세대 계승국이 1세대 계승국을 잇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거대 제국의 흔적, 색채는 많이 변형되지만, '정신적 지주'의 역할은 공고해집니다. 거대 제국을 잇는다는 미명으로 계승국들의 역사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거대 제국은 사라져서도 역사의 롤모델이 되었습니다.
무굴 제국은 몽골 제국의 2세대 계승국쯤 되는 국가였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무굴 제국에 앞서 몽골 제국의 1세대 계승국이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티무르 제국이 바로 몽골 제국의 1세대 계승국이었습니다. 몽골 제국에서 티무르 제국으로, 티무르 제국에서 무굴 제국으로 역사적 흐름이 이어진 것입니다. 몽골 제국이 '정신적 지주'가 되어 계승국들의 역사를 만들어낸 것이죠. 이 사실을 모르면, 무굴 제국이 건국된 사건을 '인도 내의 세력이 분열을 수습하고 통일한 것'으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필자도 그렇게 잘못 알고 있었고요. 무굴 제국의 건국에 이르기까지 복잡하고 많은 전사(前史)가 숨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그 전사를 쉽게 짚어보겠습니다.
제일 먼저 짚을 것은 '티무르는 누구이고, 티무르 제국은 무엇인가?'입니다. 무굴 제국이 실질적으로 계승한 국가는 티무르 제국입니다. 무굴 제국을 세운 바부르도 티무르의 후손이었죠. 그렇다면 티무르는 몽골인 또는 몽골인의 피가 섞인 후손이라는 추측을 하게 될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티무르는 몽골'계' 중앙아시아인입니다. 전문적인 표현으로는 '차가타이 몽골인'이라고 합니다(이주엽, 『투르크사』, 책과함께, 2025).
쉬운 이해를 위해 '한국계 미국인'을 생각해봅시다. 이들은 민족적으로는 한국인이나, 미국에서 살면서 그곳의 문화, 생활 양식에 더 익숙해합니다. 즉, 'X계 Y인'이라는 표현은 민족적으로는 X가 맞으나, 문화적으로는 Y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이질성은 정주 지역의 차이에서 기인합니다. 차가타이 몽골인에서 '차가타이'는 몽골 제국을 구성하는 여러 칸국(울루스) 중의 하나로, 중앙아시아 일대를 지배한 차가타이 칸국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같은 몽골인이더라도, 어느 지역에 사느냐에 따라 문화적 정체성이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차가타이 칸국의 사람들도 그 경우에 해당됐습니다. 차가타이 몽골인을 'X계 Y인'의 방식으로 표현하면, '몽골계 중앙아시아인'이 되는 겁니다.
따라서 몽골 제국에서 티무르 제국으로 이어지는 '첫 계승'은, 칭기즈 칸 아래 하나의 광활한 몽골 제국이 느슨한 연합체인 여러 칸국으로 나뉘고, 그 칸국 내에서 '민족적으로는 몽골인'인 티무르가 몽골 제국의 재건을 내걸고 계승국을 건립한 과정입니다. 티무르 제국은 중앙아시아 일대의 강력한 대제국으로서 위용을 자랑했습니다. 그 결과, 티무르 제국이 몽골 제국을 롤모델로 삼은 것처럼, 티무르 제국 또한 롤모델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티무르 제국에서 무굴 제국으로 이어지는 '두 번째 계승'의 연결고리가 만들어졌습니다.
두 번째로 짚을 것은 '바부르는 정말 인도를 원했는가?'입니다. 『무굴 제국의 역사』1~2장은 바부르의 일생과 무굴 제국을 건국한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부분을 읽으며 그려지는 그의 모습은 '중앙아시아의 패자가 되고 싶었으나,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인도에 제국을 세운 사람'입니다. 그의 준거집단은 중앙아시아이지 인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럴 만한 것이, 그는 일생 대부분을 중앙아시아에서 보냈고, 무굴 제국의 황제로서 재위하던 기간은 4년뿐입니다. 게다가 위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그가 재위한 시기의 무굴 제국 영토는 중앙아시아 남쪽 끝부분에서 북인도 일부에 불과했습니다. 심지어 그의 뒤를 이은 2대 황제 후마윤은 인도 토착 세력의 반격으로 제국의 영토 대부분을 잃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설령 그가 인도를 원했더라도 전부 가지지는 못할 운명이었습니다.
인도는 역사적으로 '험악한 땅'이었습니다. 먼 옛날 알렉산드로스도 파죽지세로 동방 원정을 떠났지만, 인더스강 일대에서 회군해야 됐고, 역사상 어느 인도 왕조도 인도 전역을 통일하지 못했습니다. 인도 역사에 절대적인 승자가 없었던 이유는 온화하지 않은 기후, 히말라야 산맥과 정글이라는 지리적 장애물의 존재, 각지에 할거한 여러 토착 세력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험악한 땅을 중앙아시아의 이방인이 철저한 준비 없이 전부 손에 넣으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죠. 인도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녹아들어야 지배권을 겨우 가질까말까한데 말입니다.
무굴 제국은 몽골 제국과 티무르 제국이 보여준 '처음부터 강력한 지배권'을 확립하지 못했습니다. 몽골 제국과 티무르 제국이 롤모델로 받들어지는 공통 요건이, 무굴 제국에게는 없었습니다. 이렇게만 보면, 무굴 제국은 첫단추부터 잘못 꿰맨 것처럼 보입니다. 다른 방법으로 무굴 제국은 초기의 부족함을 만회해야 됐습니다. 3대 황제 아크바르가 만회에 성공하게 되는데, 이는 다음 글에서 짚어보겠습니다.
티무르 제국에서 무굴 제국으로 이어지는 두 번째 계승은, 바부르가 중앙아시아의 패자가 되어 티무르 제국의 영광을 되찾고자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인도에 제국을 세워 후일을 도모한 과정입니다. 하지만 바부르/후마윤 재위기 이후의 무굴 제국은 인도에 깊숙이 뿌리내리는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선택은 몽골 제국 그리고 티무르 제국을 잇겠다는 본연의 목표는 희석되지만, '역사상 인도에 가장 잘 뿌리내린 제국'이라는 몽골 제국도 이루지 못한 목표 달성에 성공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몽골 제국도 인도를 지배하는 것에는 실패했습니다.
이상으로 무굴 제국 건국에 얽힌 전사를 살펴봤습니다. 무굴 제국의 건국은 단순히 한 국가의 역사가 '시작'되는 사건이 아니라, 계승국을 세우려는 움직임이 거듭되어 나타난 '결과'였습니다. 몽골 제국 - 몽골 제국 내의 칸국(울루스) - 칸국이 지배한 영역에서 세워진 몽골 제국의 1세대 계승국(티무르 제국) - 몽골 제국의 1세대 계승국을 잇는 2세대 계승국의 장구한 흐름에서, 무굴 제국은 그 마지막에 해당합니다. 별개의 독립된 국가처럼 보이는 티무르 제국, 무굴 제국이 '몽골 제국의 계승국'으로 묶여 인과관계가 성립되는 게 신기하지 않습니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역사적 흐름의 연원을 추적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추적에 성공해서 하나로 관통하는 역사적 흐름을 찾아내면 그거만큼 짜릿한 순간도 없습니다. 필자도 글을 쓰면서 끙끙댔지만, 퇴고하니 '어려운 역사를 그래도 쉽게 이해하는 도구'를 하나 만든 것 같아서 뿌듯합니다.
이 글은 『무굴 제국의 역사』세부 내용 소개글이지만, 무굴 제국 건국에 얽힌 전사를 명료하게 설명하기 위해 『투르크사』를 많이 참고했습니다. 『무굴 제국의 역사』도 그 전사를 설명하긴 하지만, 티무르 제국에서 무굴 제국으로 이어지는 흐름만을 주로 다룹니다. 아무래도 책의 주제가 '무굴 제국'이다보니, 그 전사를 다 설명하는 건 무리가 있겠죠. 반면, 『투르크사』는 투르크 계열 민족 모두의 역사를 다루며 각 민족의 기원, 주요 국가 및 주요 국가의 계승국을 짚기 때문에, 전사를 구체적으로 알기 좋습니다. 다만, 무굴 제국과 관련한 서술은 간략합니다. 따라서 무굴 제국 건국 이후의 역사뿐만 아니라, 그 이전의 역사까지 제대로 알고 싶으면 두 책을 함께 읽는 걸 강력히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