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굴 제국의 역사』세부 내용 소개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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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 내용 소개
무굴 제국은 '불안정한 토대'라는 문제점을 반드시 극복해야 됐습니다. 인도 각지의 다양한 토착 세력의 존재는 통일 국가의 기반 형성을 방해하는 대표적인 요소였습니다. 인도의 험악한 지리적 특성은 토착 세력의 힘을 키우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습니다. 제아무리 강한 군대(무력)도 자연을 이기지는 못하죠. 인도 토착 세력을 모두 무력으로 정벌하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므로 인도에 통일 국가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동맹, 정략 결혼과 같은 방법으로 토착 세력을 '길들여야' 했습니다. 무굴 제국은 바로 그 길들이기를 통해 토대의 안정을 닦아야 했습니다.
인도 토착 세력을 길들이기 위한 변수는 '종교'였습니다. 역사적으로 인도는 여러 종교가 어지럽게 병존하는 공간이었습니다. 힌두교와 이슬람교가 양대산맥을 이루는 흐름이 오래 이어지다가, 무굴 제국 시기부터는 신흥 종교 시크교가 인도 종교 지도의 새로운 축을 형성했습니다. 인도 토착 세력이 각기 다른 종교를 수용했다는 사실은 무굴 제국을 더욱 시험에 들게 만들었습니다. 어느 한 종교만을 대변하고, 국교화한다면 다른 종교를 수용한 토착 세력의 저항을 받는 건 당연한 귀결이었습니다. 종교적 관용은 무굴 제국의 토대 안정을 위한 또 다른 과제였습니다.
3대 황제 아크바르는 불안정한 무굴 제국의 토대를 굳건히 했습니다.『무굴 제국의 역사』4~6장은 그가 황제 자리에 오른 과정, 주요 정책, 수도를 여러 곳에 두고 순회한 이유를 다루고 있습니다. 총 11장의 목차 중 '단 한 황제'를 설명하기 위해 3장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아크바르의 치세가 돋보이고, 무굴 제국의 역사를 새롭게 썼다는 증거입니다.
그가 치세를 이룩한 비결은 인도 토착 세력 길들이기였습니다. 무굴 제국은 이슬람교를 종교적 근간으로 하면서, 힌두교의 본고장인 인도에 터전을 잡은 국가였습니다. 그러므로 제국 운영에 있어서 힌두교를 믿는 사람, 토착 세력을 배제하기 어려웠습니다. 인도의 이슬람화가 진행되었더라도, 민족 종교로서 뿌리박힌 힌두교의 자리를 완전히 대체하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힌두교를 수용한 인도 토착 세력도 많았는데, 이들을 '라지푸트'라 불렀습니다. 아크바르가 길들이려 한 인도 토착 세력이 바로 라지푸트입니다. 라지푸트는 등용문을 통해 제국의 관리로, 결혼을 통해 황족의 신부로 뻗어나갔습니다. 이 제휴로 무굴 제국은 언제든 배신자가 될 수 있는 토착 세력을 협력자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힌두 세력과의 제휴는 종교적 관용으로 이어졌습니다. 전통적으로 이슬람 국가는 피지배층의 종교적 자유를 존중했습니다. 단, 이슬람교 외의 종교를 믿을 시 지즈야(인두세)를 내야 하는 조건이 붙었습니다. 지즈야의 존재는 '이슬람 우위'를 전제로 한 종교적 자유를 보장하는 수단이었던 셈입니다. 그런데 아크바르는 지즈야를 징수하는 관행을 없애버립니다. 무굴 제국 내 힌두교의 영향력이 커진 상황에서 이슬람 우위를 내세우는 건 무의미하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조치였을 겁니다. 지즈야 징수를 부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책의 pp.163-164). 때로는 통제보다는 가만히 내버려두는 게 더 나은 상황이 있습니다. 아크바르의 지즈야 폐지가 그 경우입니다.
다만, 아크바르의 종교적 관용은 '제국의 권위 보장'을 전제로 했습니다. 특정한 종교를 탄압하진 않았지만, 제국의 권위는 넘보지 못하게 나름의 선을 설정했습니다. 몇 가지 사례를 꼽아보겠습니다.
첫째, 무굴 제국 황실과 라지푸트 간의 결혼은 '대등한 관계'에서 이루어진 게 아니었습니다. 무굴 제국 황실은 라지푸트의 여성을 신부로 들였지만, 황실 여성을 라지푸트에 출가시키진 않았습니다. 고귀한 무슬림 가문과 결혼하는 경우에만 황실 여성의 출가를 허용했습니다. 이는 여성에 대한 순결과 제국의 권위를 지키기 위한 조치로 보입니다.
[4대 황제 자한기르의 어록]
그들(무슬림)은 힌두들과 스스로 동맹을 맺고 딸들을 교환한다. 딸들을 취하는 것은 좋으나, 딸들을 내어주는 것은 신께서 허락지 않으시기를! 나는 앞으로 그들이 그러한 짓을 해서는 안 되며, 이 죄를 범하는 자는 극형에 처한다고 명령했다.
- 마이클 피셔,『무굴 제국의 역사』, 최하늘 옮김, 이옥순 감수, 더숲, 2025, p.166
악바르(아크바르)와 그의 강력한 후계자들이 절대로 일족의 여성을 라푸트나 다른 비무슬림 가문에 내주지 않았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중략)… 악바르는 라지푸트에게서 신부를 취하기만 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티무르 왕조 구성원을 비롯한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 출신 고귀한 혈통의 무슬림에게는 여자 형제와 딸을 내주었다.
- 위의 책, pp.165, 169.
둘째, 같은 이슬람 세력이어도 '제국에 위협이 된다면' 대립 관계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이를 보여주는 대외적 사례로, 무굴 제국과 오스만 제국 간의 대립이 있습니다. 양국의 대립은 메카 순례를 둘러싼 외교적 결례에서 촉발되었습니다. 메카는 아라비아반도에 있는 이슬람의 성지로, 무굴 제국이 존재하던 당시에는 오스만 제국의 영토에 속했습니다. 무굴 제국의 무슬림들은 메카 순례를 갈망했는데, 아크바르는 이를 위한 보조금을 지급했습니다. 그런데 오스만 제국은 무굴 제국에서 온 순례자를 적대적으로 대하고, 아크바르가 공식적으로 보낸 서신도 무시하는 결례를 범했습니다. 무굴 제국의 권위를 땅바닥으로 떨어뜨린 행위죠. 이에 아크바르는 더 이상 메카 순례를 후원하지 않았고, 정통 이슬람 교리를 충실히 따르지 않게 되었습니다(자세한 내용은 책의 pp.216-218 참고). 대내적으로도 제국에 저항하는 이슬람 세력은 가차없이 응징했습니다. 데칸 지방의 이슬람교를 수용한 토착 세력인 칸데시 술탄국과 40여 년간 전쟁을 벌인 게 그 예시입니다(책의 p.166).
평소에 화를 자주 내는 사람보다, 착한 사람이 화를 낼 때 더욱 무서운 법입니다. 아크바르의 종교적 관용 정책은 '모든 걸 용인해주는' 착함은 아닙니다. 제국의 권위에 대항하는 움직임이 있을 때는 관용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제국의 권위를 항상 중심에 두면서 여러 종교, 토착 세력을 포용하는 게 아크바르의 리더십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리더십은 무굴 제국을 불안정한 이방인 국가가 아니라 안정적이고 '인도적인' 국가로 나아가게 만들었습니다. 험악한 인도를 휘어잡은 것입니다.
통일 국가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핵심은 '중앙집권화'입니다. 그러나 지방 분권의 시대가 오래 이어졌던 인도에서 중앙집권화를 이룩하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아크바르는 통일 국가의 격에 맞는 중앙집권화 정책의 모델을 고안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것의 결과물은 자브트 제도와 만사브다르 제도였습니다. 두 제도는 '완벽한 중앙집권화'를 달성시키진 않았지만, '제국이 다스리는 영역 내에서 중앙집권화'는 어느 정도 가능하게 만들어줬습니다. 중앙집권화가 완벽할 수 없었던 이유는 무굴 제국이 통일 국가의 위상을 확립한 뒤에도 지역적 편차, 다양성을 획일적으로는 바꾸지 못했고, 여전히 제국의 지배를 받지 않는 영역(남인도)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두 제도가 무굴 제국의 통치력을 한 단계 끌어올린 것은 명백합니다.
자브트 제도: 세금을 현금으로 거두는 제도.
- 운용을 위해 무굴 제국의 관리가 토지를 측량하고 세입을 계산함.
만사브다르 제도: 몽골 제국의 십진법 군사 체계(천호제)를 참고한 군사와 행정이 결합된 제도.
- 상위 관료층은 다트(개인의 지위를 나타내는 척도)와 사바르(개인이 거느리는 기병 수를 나타내는 척도)를 부여받음.
- 경력 및 황제의 신망을 얻는 방법으로 다트와 사바르 수치를 올릴 수 있음. 단, 다트는 사바르보다 작아서는 안 됨. (Ex. 어떤 만사브다르의 계급이 5,000/3,000이면 왼쪽이 다트, 오른쪽이 사바르임.)
- 위의 책, p.178, 193(더 자세한 내용은 해당 쪽수가 포함된 책 목차 5장을 참고할 것).
이렇게 고난을 이겨낸 무굴 제국은 번영의 달콤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아크바르 재위기는 물론이고, 자한기르(4대 황제), 샤자한(5대 황제), 아우랑제브(6대 황제) 재위기까지 번영은 지속되었습니다. 하지만 번영이 지속되면 긴장이 풀리게 됩니다. 혹은 번영 상태가 너무 익숙한 나머지, 번영을 위해 필요로 하는 원칙을 망가뜨리는 실수를 범하기도 합니다. 그 내용은 다음 글에서 마저 짚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