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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직장인 Aug 05. 2020

대기업 14년 차, 주 52시간 적용 후 달라진 모습

나는 14년 차 직장인이다. 제조 현장을 서포트하는 업무를 맡은 나는 입사 후 얼마 후부터 조금의 여유도 없이 일을 해야 했다. 출근은 8시까지였으나 자동차가 없었던 나는 회사 버스를 타야 했고, 버스는 7시에 회사에 내려다. 그렇게 7시부터 회사에 와서 보통 밤 8시에 일을 마무리했다. 일이 많거나 현장에 문제가 생겨 도움을 줘야 할 때는 11시나 12시까지 일을 할 때도 있었고, 입사 초기부터 주변 사람들 모두 그렇게 살다 보니 회사에 하루 종일 있는 삶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야근했고 그래도 일이 끝나지 않아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출근해서 일했다. 그렇게 회사에 내 몸을 갈아 넣으며 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퇴근 후에 전화가 와도 아무 불만 없이 전화를 받은 뒤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다 보니 회사를 벗어나서도 전화로 일을 해야 했고 24시간 가동되는 공장의 특성상 새벽 3시에 전화가 와서 업무를 본 경우도 있었다. 나뿐 아니라 부서 내 선, 후배 모두가 나처럼 일했다. 사실 나는 게으름을 부리는 타입이라 다른 사람들보다 일을 적게 했지만 휴일 근무까지 포함하면 나처럼 일을 적게 하는 사람도 주 60시간 정도 일한 것 같다.


그 당시 칼퇴하는 사람은 손가락질을 많이 받았다. 다른 사람들은 늦게까지 남아서 일하고 고생하는데 먼저 집에 가는 사람들에게 개념이 없다거나 동료애가 없다는 프레임을 씌우고는 험담을 많이 했다. 상사들은 귀신같이 근무시간이 적은 사람들을 알아냈고 그들에게 좋지 않은 평가를 줬다. 근무시간은 조직의 충성도를 평가하는 잣대로 사용될 뿐 아니라 업무의 성과를 판단하는 근거로도 쓰였다.


그런 상사들의 눈치를 봐서일까? 연차 높은 선배들은 일이 끝났음에도 회사에 남아 시간을 보냈다. 그들이 늦게까지 남아 있는 이유는 후배들의 일이 끝나지 않아서였다. 후배들의 일을 함께 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그들이 일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줌으로써 선배의 도리를 다하는 것처럼 굴었다.


일은 특정 인물들에게 몰렸다. 일이 많은 사람은 밤늦게까지 일을 했고, 퇴근 시간 레이스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을 마음 편히 칼퇴를 하는 양극화가 벌어졌다. 물론 칼퇴했던 대부분은 연말에 좋지 못한 평가를 받는 것에 암묵적인 합의가 있는 것 같았다.


시간이 흘러 점차 복지가 좋아졌다. 우선 제조 현장에서 근무하지 않는 간접 직군의 출근 시간은 자율로 변경되었다. 하루에 8시간 근무만 하면 늦게 출근해도 아무 문제가 없어졌다. 일찍 출근하면 일찍 퇴근하고 늦게 출근하면 늦게 퇴근하면 된다. 하지만 이런 제도하에서도 문제가 생겼다. 퇴근 시간 레이스에서 근무시간 레이스로 게임이 변경된 것이다. 예전에는 8시부터 근무가 시작되기 때문에 8시 이전에 오는 것은 근무시간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제는 새벽 6시부터 근무 시간이 집계된다. 늦게 퇴근하는 사람들은 이상하게 일찍 출근했다. 반대로 일찍 퇴근하는 사람들은 주로 늦게 출근했다.


사람들 간의 근무시간 격차가 점점 벌어지던 중 '52시간 근무제' 시행되었다.   

  

주 52시간 근무제는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기존 68시간에서 52시간(법정근로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으로 단축한 근로제도이다. 국회가 2018년 2월 28일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52시간(법정근로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으로 단축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킴에 따라, 그해 7월 1일부터 우선 종업원 300인 이상의 사업장을 대상으로 시행됐다. 개정안은 ‘일주일은 7일’이라는 내용을 명시하면서 주 최대 근로시간이 현재 68시간(평일 40시간+평일 연장 12시간+휴일근로 16시간)에서 52시간(주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으로 16시간이 줄어들었다. 한편, 근로기준법은 근로자 보호를 위한 강행 규정이기 때문에 노사가 합의해도 52시간 이상 일할 수 없다. 만약 이를 어기면 사업주는 징역 2년 이하 또는 2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네이버 지식백과] 주 52시간 근무제


기존 68시간 근무시간인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들은 주 70시간을 훌쩍 넘길 정도로 일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주 최대 52시간 한도로 근무해야 하고 만약 이것을 어기면 사업주에게 불이익을 준다고 한다. 이런 제도하에서는 주 52시간을 지킬 수밖에 없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초기에는 짧아진 근무시간으로 일이 전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별 탈없이 그럭저럭 돌아가는 것 같다.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 후 약 2년이 지난 시점에 내가 느낀 점을 말해본다.


1. 칼퇴하는 것에 크게 눈치 보지 않게 되었다.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 전에 칼퇴를 할 때는 마치 내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하루에 10시간씩 일한다면 주에 50시간이 되기 때문에 긴급 업무로 야근한다는 가정하에 주에 최소 1, 2회 칼퇴는 필수가 되었다. 그리고 예전처럼 근무시간 레이스를 할 수 없는 분위기가 되어서 일까? 사람들의 엉덩이가 다소 가벼워진 것 같다. 꼭 해야 할 긴급한 업무가 없는 경우 퇴근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2. 월급이 더 많아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근무시간은 줄어들었지만 월급은 더 많아지는 일이 발생했다.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 전에는 교통비 개념으로 잔업에 대해 아주 적은 돈을 받았고 그 돈 조차도 결재를 통해 청구하지 않으면 받지 못했다. 2시간을 기준으로 정산하기 때문에 1시간 59분 잔업을 했을 경우 받을 수 있는 돈은 0원이다. 하지만 이제 근무시간을 기준으로 급여를 산정하기 때문에 10분 기준으로 월급이 정산된다. 또한 기존의 교통비와 달리 시급 기준으로 계산되기 때문에 전체적인 임금이 상승되어 근로자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다.


3. 근무시간이 평가의 기준으로 쓰기 힘들어졌다.

물론 지금도 근무시간이 평가의 기준으로 전혀 작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중요도가 낮아진 건 사실이다. 예전처럼 70시간씩 일할 수 있었을 때는 근무시간이 비교 잣대가 되었지만 이제는 가장 오래 근무하는 사람과 가장 적게 근무하는 사람의 시간 차이가 크지 않다. (월로 환산하면 아직도 많기는 하다. ^^;;)


4. 쓸데없는 일이 줄어들었다.

70시간 일을 할 때는 일이 일을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 이제는 상사가 지시를 할 때 직원의 근무시간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예전에는 꼭 필요하지는 않은 보고서, 회의도 있었다면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 후에는 불필요한 회의와 보고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물론 지금도 시급을 다투는 일이나 큰 문제가 생겼을 때는 몸을 갈아 넣어야 한다. 그럼에도 예전처럼 시급하지 않은 일에도 잔업을 밥먹듯이 하던 때와 지금은 다르다.


5. 가정에 신경을 쓰거나 본인의 건강을 위해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주 52시간 근무제' 때문인지 시대가 변해서인지 정확한 원인은 모르지만 더 이상 예전처럼 부서 회식이 많지 않다. 대신 퇴근 후 본인의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거나 가정에 충실한 직원들이 많아지고 있다. 회사의 근무시간 경쟁에서 한발 물러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 시간을 쓰는 직원들이 늘어나고 있다.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이 회사의 많은 부분을 바꿔놓았다. 예전처럼 회사에 오래 있는 것이 성과가 되거나 충성심을 표현하는 것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하지만 '주 52시간 근무제'가 우리에게 혜택만 준 것은 아니다. 예전에는 능력이 부족해도 오래 일하는 것으로 성과를 보완하거나 상사나 회사에 동정표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짧아진 근무시간으로 더 이상 그런 활동을 할 수 다. 이제는 스마트하게 일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한정된 시간에 더 많은 성과를 얻기 위해 본인의 능력이 중요해진 시점이 왔다. 더 이상 농업적 근면성이 직장에서의 성과를 보장하지 못한다. 단위 시간당 더 높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직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직원들은 상대적으로 많아진 시간을 활용하여 본인의 건강을 지키거나 심리적인 안정을 찾는 활동을 계속해야 한다. 그리고 본인의 능력 향상을 위해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노력을 등한시한다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주52시간 #퇴근 #자기계발 #잔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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