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냄새로 인해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린 적이 있나요? 어떤 냄새인가요? 우리의 감각과 연결된 기억은 생생해서 거기 묻어있는 감정이나 기분까지 순식간에 소급해주는 것 같습니다.
어릴 적 아버지의 스킨 냄새가 아련하게 기억난다. 아버지의 몸에는 스킨 냄새가 짙었다. 나는 아버지의 스킨 냄새가 좋았다. 짙은 스킨 냄새만큼 아버지는 키도 크시고 잘생기셨다.
아버지는 매력적이셨다. 아버지의 빠르고 당당한 걸음은 멋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걷는 것이 좋았다. 아버지와 같이 걸으면 나도 아버지처럼 멋있어질 것 같았다.
시간이 흘러 아버지는 당당함을 잃으셨다. 어릴 적 좋아하던 스킨 냄새도 더는 맡을 수 없다. 아버지 몸에는 이제 담배냄새가 가득하다. 늙으셨고 위축되셨다.
면도를 하던 어느 날 거울 속에 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아버지와 놀랍도록 닮았다. 아버지께서 그랬던 것처럼 면도를 하고 스킨을 바르고 있다. 내 아이들도 어릴 적 나처럼 스킨 냄새로 나를 추억할까? 아버지의 시간이 나에게로 온 것처럼 나의 삶도 언젠가는 아이들의 추억이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 10년 전의 나를 만난다면 어떤 말을 하고 싶은가요?
- 10년 전의 나는 지금의 나에게 무슨 말이 하고 싶을까요?
- 10년 전에 상상한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내 모습과 얼마나 다르고 또 얼마나 비슷한가요?
겸손하고 꾸준하게, 열심히...
10년 전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은 '겸손하고, 꾸준하게 열심히 살라'는 것이다. 10년 전의 나는 불안했다. 서른 살이 되던 어느 겨울, 시리도록 차가운 원룸 바닥에 누워 하늘 아래 내 집은 없다며 우울했었다.
금전적으로도 불안했고, 감정적인 부분도 그랬다. 학교를 졸업한 것이 인격적이거나 지적인 완성을 뜻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사회에 첫 발을 딛고 난 후에도 배움을 놓으면 안 된다. 학창 시절보다 더 열심히 살고, 더 많은 것을 느끼려 해야 한다. 인생을 설계하고 꾸준히 하루를 보내야 한다.
행복해 보여.
10년 전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할 것 같은 말이다. 개인주의적이며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던 나는 가슴 충만한 사랑의 감정을 몰랐다. 마음속 안정감과 사랑 없이 그저 나만 생각하며 살았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과 함께 있는 지금의 내 모습은 심적으로 안정됐다. 세상에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행복하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내 모습을 10년 전의 내가 본다면 부러워할 것 같다.
마흔, 인생 절반을 살았는데 생각보다 괜찮다.
나이를 먹는 것이 육체적 노화와 지적 능력의 감퇴를 일으킨다는 인식으로 두려웠다. 성장을 생각을 하지 않고 하루하루 늙어감으로써죽음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했다.
태어나서 20대 중반까지는 나의 노력과 별개로 성장한다. 시간이 흘러 중년에 이르면 빛나던 외모는 희미해지고, 자신의 기질적인 특성보다는 살아온 삶의 향기가 더 드러나는 것 같다. 젊어서 볼품없던 외모도 나이가 들어 멋스럽게 변화하는 경우도 있다.
마흔이 되니 나이 듦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간다. 시간이 육체의 노화를 일으키지만 그건 내가 태어날 때 받은 것들에 국한된다.
늙음을 두려워하고 쇠락의 시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하루하루 성장하고 채워 넣는다는 마음으로 산다면 인생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매일을 열정적으로 치열하게 살며 조금씩 향기를 더해가는 삶을 살고 싶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쌓이면 시간이 흘러 멋스러운 노인이 될 것 같다. 50, 60살이 되었을 때 멋스럽기 위해 오늘도 정신없이 발버둥을 치며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