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 닦이의 성장기

만화방 집 아들 이야기

by 보통직장인

인생의 큰 목표와 방향이 없었기 때문에 세상을 너무 쉽게 봤다.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살았고, 희망과 미래라는 단어는 나와 상관없었다. 내 앞날은 안개가 끼인 듯 불명확했고 목표와 방향이 없어서 술 취한 사람의 걸음걸이처럼 이리저리 휘청거렸다. 수능 점수가 낮았지만 다행히 내가 지원하는 과가 정원 미달이라 운 좋게 대학교에 합격했고, 대충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갔다.

많은 사람들이 군대에서 철이 든다고 하는데 나는 군대에서도 변함없었다. 대충 살았고, 생각 없었고, 고민 따위는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전역했고 복학까지 10개월 이상 남아서 할 일을 찾다가 식당에서 접시 닦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군대에서도 버텼는데 별 거랴 싶어서 일을 시작했는데 너무 힘들었다. 하루 12시간을 일하고 한 달에 하루를 쉴 수 있다. 그런데 월급은 70만 원이었다.

손님이 오면 쉴 시간도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바빠서 밥을 못 먹을 때도 있다. 주방의 온도는 40도가 넘어서 한 여름에도 바깥이 더 시원했다. 물을 많이 사용하고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장화에 물이 가득 차서 군대에서도 걸리지 않았던 무좀이 걸렸고, 손에는 세제로 인해 습진이 생겼다. 평생을 이렇게 살 자신이 없었다. 일도 힘들고 환경도 열악하고 시간도 없고, 월급도 너무 작았다.

힘든 주방 일과 불판 닦는 일을 8개월 동안 했다. 군대에서도 느끼지 못한 세상의 쓴맛을 봤다. 내 삶은 이것보다 나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좀 더 안정적인 직장에서 좋은 환경에서 일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살아온 삶의 성적표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래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대로 살고 싶었다.

환경이 좋은 회사에 들어가려면 대학교 졸업장과 토익이 필요했다. 우선 학점을 잘 받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먼저였다. 살면서 영어와 수학을 제일 못했는데, 좋은 성적을 위해, 궁극적으로 취업을 위해서 복학하기 3달 전부터 수학과 물리를 공부했다. 그리고 영어학원을 등록해서 다녔다. 힘들게 접시를 닦아 번 돈을 스스로 공부하는데 썼다.

접시 닦은 기억이 너무나 선명하다. 인생을 대충 살고 싶지만 그러면 다시 접시를 닦을 것 같은 불안함이 든다. 지나간 기억들이 대부분 추억이 되는데 접시 닦은 기억은 추억보다는 힘들었던 생각만 떠오른다. 내가 너무 요령이 없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접시 닦는 것이 배수의 진이 되어서 열심히 살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접시닦이 #성장기 #만화방아들 #만화방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