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생에 있어 타인에게 끼친 행위는, 어느 것이건 태양 아래 얼음이 녹듯이 그렇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가 상대에게서 멀어져 전혀 생각지 않게 되더라도, 우리의 행위는 마음속 깊이 흔적을 남기다는 점을 몰랐던 것이다.
엔도 슈사쿠.
엔도 슈사쿠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침묵이라는 책이었다.
17세기 일본을 배경으로 한 기독교 박해 시대의 배신과 침묵하는 신에 대한 성찰을 담은 작품인데, 포르투갈 출신의 신부가 고통받는 이들을 구하기 위해 예수의 얼굴이 새겨진 후미에를 밟고 신앙을 부정해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그는 예수의 성화를 밟는 행위로 타인의 고통을 끝내게 된다.
성화를 밟는 것이 지금에 와서는 신앙을 부정하는 것과 동일시되지 않지만 당시 시대적 상황을 보면 신부에게는 배교의 행위였고 그 행위 속 선택과 그 과정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신의 침묵, 응답일지 모른다는 역설을 품은 작품이다.
책을 읽고 난 후 사람을 살리는 것과 신앙을 부인 또는 부정하는 척하는 것에 대해 가지고 있던 고민의 답이 명확해졌다. 인간을 살리기 위해 이 땅에 와서 죽은 예수를 부인해야만 누군가가 사는 선택의 기로에서 나는 주저 없이 예수를 부인할 테고 신앙이란, 행위가 동반되어야 하는 것임에도 생존보다 우선시 될 수 없음을 느끼게 되었다. 물론 로마 제국의 기독교 박해 속 배교를 거부하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잃고 카타콤베에 숨어 예배를 드렸던 수많은 크리스천들의 삶이 있었기에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가 공인을 받게 된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시간이 흘러 다시 읽게 된 엔도 슈사쿠의 책은 김기석 목사님의 책 속에 인용되었던 내가 버린 여자였다.
즐겨 찾는 작가가 인용하고 추천한 책을 다음 순번으로 읽게 되는 과정은 출판되는 수많은 책 사이에서 책을 고를 고민과 시간을 줄여준다.
내가 버린 여자라는 책은 사랑을 받기만 했던 남자 주인공과 모든 걸 주고 떠나간 여자의 이야기로 이기심과 사랑의 본질, 속죄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는데 사랑을 가장한 이기심이 한 여자의 인생을 무너뜨리고, 한 남자의 삶을 평생 후회로 물들인다로 요약할 수 있다.
타인에게 끼친 행위가 그 타인과 멀어져 전혀 생각하지 않게 되더라도 마음속 깊이 흔적을 남기다는 글을 읽으며, 나에게 남겨진 누군가의 흔적과 내가 남겼을 흔적을 생각해 보았고 단순한 소설책이 아닌 무거운 주제들이 녹아져 있는 책을 읽은 이유로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 되었다.
간서看書 책을 소리 내어 읽지 아니하고 눈으로 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