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서] 우리 아빠, 복이 많으셨다.

by charles

2021년 1월에 출판된 박근호 작가의 책 당신이라는 자랑에는 곳곳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추억이 담겨있다. 떠난 아버지와 남겨진 가족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이 책을 읽을 당시에만 해도 아버지께서는 살아계셨으므로 앞으로 마주하게 될 양가 부모님의 상황에 덜컥 겁이 났다. 내가 먼저 죽지 않는다면 4번은 겪어야 할 슬픔이었으니까.

내 지인 중 장례식장에 누가 올까 고민해 보았는데 학창 시절과 대학시절을 포함한 이십 대 때의 모든 관계가 끊어져 있어 동창 그 누구도 소식을 알 길이 없었다.


시골에서 자라며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보아왔던 친구들의 위로가 없는 장례를 상상하니 꽤나 쓸쓸한 장례식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불쌍한 우리 엄마 장례식에 화환이라도 하나 제대로 박혀 있고 쪽팔리지 않을 만큼 문상객 채울라믄 엄마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회사에 꼭 붙어 있어야 돼.
드라마 나의 아저씨


4년 전 외할머니의 장례를 마친 후 시골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어머니는 내게 출석하는 교회에 교인 등록을 했으면 하셨다. 부고 소식을 주보를 통해서라도 알리게 되면 교회 소모임인 다락방 식구나 누구든 와보지 않겠냐는 기대 때문이셨다. 이 나이까지 교회에서 봉사의 자리 나 직분도 하나 없이, 무엇보다 이렇게나 큰 대형교회에 등록 교인이 아닌 가나안 성도*로 교회를 다니고 있는 내 모습이, 신학까지 공부해 놓고는 교회를 방황하고 있는 내 처지가 어머니의 눈에는 정상적이지 않았을 텐데 그 시각에 대해 나는 변명 거리가 없다.


시간이 흘러 우리 가족은 어머니의 말씀에 순종은 아니었지만 교회에 등록하여 신앙생활을 시작했고 다락방이라는 소모임에 소속되어 2년을 넘게 많은 교인들과 교제하며 인맥을 넓혀갔다. 또 직장을 옮겼고 새로운 곳에서 3년을 지내왔으며 다행스럽게도 전 직장의 몇몇 직원들과는 여전히 안부를 물으며 끊임이 없는 관계를 이어왔다.


11월 중순 아버지의 장례를 준비하며 영정사진을 고르는 것부터 장례식장 예약, 장지, 그리고 부모님과 자녀들이 다니는 교회가 달랐기에 집례를 담당할 교회를 선정하는 것까지 이야기가 오고 갔으며, 상조회사를 통하지 않고 직접 발품을 팔고 둘째 누나의 직업으로 할인을 받는 장례식장과 부모님이 다니는 교회에서의 집례 하는 것으로 일사천리 진행되었다.

성경 창세기 12장 속 아브람이 집을 떠난 것**처럼 오랜 세월을 보내셨던 본적에서 떠나 여러 곳을 돌며 일을 하셨던 아버지께서는 대전의 한 교회에서 은퇴 후 집에서 줄곧 보내셨고, 사촌들과도 연락을 끊고 지내셨기에 어머니께서는 장례식장에 조문객이 많지 않을 테니 작은 빈소에서, 장례 용품도 최소한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며 의견을 내셨다.

증명사진 같은 사진이 아닌 어머니와 함께 웃으며 찍은 사진을 영정사진으로, 수의는 아버지께서 평소 입으시던 정장을 준비하였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이후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상황이었던 터라 병원 의사 선생님은 자유로운 가족 면회 허용을 승인해 주셨고 2인실도 혼자 사용하셨다. 돌아가시기 직전의 환자는 1인실로 옮겨 가족들을 배려한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아버지께서 임종하시던 새벽,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버지를 지켜보고 어머니와 소통을 나누던 간호사들은 어머니를 안아주며 위로했다. 호스피스 병동은 아니었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돌아가시는 최후의 병실 같은 이곳에 있는-아버지보다 앞서 돌아가신 옆 배드의 아저씨는 추모공원 봉안당 아빠 옆에 먼저 놓여 있었다.- 병동의 간호사들을 보며 세상에 쉬운 직업은 없지만 참 힘든 일을 하고 있구나 싶었다.


그 주 교회의 주보에는 4년 전 어머니의 바람대로 아버지의 소천 소식이, 그리고 아내의 외할머니 소천과 함께 실려 광고가 나가게 되었다.





11월 초 아내의 외할머니께서 위독하셔서 아버지와 동시에 장례가 생기면 큰일이겠다는 걱정으로 꽤나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일주일 후 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장례의 큰 어려움은 없었으나 한 달 새 가족을 두 명이나 잃은 나와 아내는 슬픔에 허덕일 수밖에 없었다.


3일간 치러진 장례 중 장례 소식을 전한 친구 한 명이 동기 단톡방에 소식을 전했고, 대학 동기, 직장동료, 출석 교회의 목사님부터 다락방 식구들까지 많은 분들이 조문을 해주었다. 장례식장은 집 근처로 어린 자녀들이 오고 가며 휴식을 취하기에 좋았고, 부모님이 출석하는 교회에서 모든 일정을 챙겨 상주인 내가 크게 신경 쓸 것이 없었으며, 먼 곳에서부터 위로해 주기 위해 오신 어린 시절 알던 어른들은 반가움과 슬픔에 부둥켜 안아 울기도 하였다. 조의금은 장례비용을 다 치르고도 남아 손주들까지 할아버지를 기억할 수 있는 유산으로 받을 만큼 충분했다. 이후 어떤 방법으로든 갚아야 할 것들이 많은, 어머니의 걱정이 무색하리만큼 위로가 되고 감사가 넘치는 장례일정이 되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 최종회에 이지안의 할머니 장례식장에서 청소부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복이 있으셔 라며 연고가 거의 없던 할머니의 장례식장에 조문객이 가득 찬 모습을 보고 이야기한다.


우리 아빠, 복이 많으셨다.



애도는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문득 솟는 그리움과 뒤늦은 감사,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을 천천히 정리해 가는 과정이라 믿습니다.

*가나안성도 : 주로 개신교에서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지만 교회에 나가지 않는 교인을 말한다.

**성경 창세기 12:1~2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고향, 네 친척, 네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크게 할 것이니 네가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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