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 나도 날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by charles

한때는 오해를 받는 것을 무척 힘들어했다.

비단 이 오해의 어려움은 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나 내가 한 말과 행동에 대해 상대방이 오해를 하게 되면 그것을 해명하고 풀기 위해 무던히 노력을 해왔고 해명이 된 그제야 마음이 편해지고는 했다.

서른 중반이었을까, 내 행동의 오해를 가지고 있는 상대방과 관계의 회복을 위한 노력을 쏟지 않기 시작했는데, 귀차니즘일 수도 있을 테고 그런 의도가 아니었을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방에게 굳이, 해명하며 변명하는 에너지를 아끼게 된 이유도 있을 테다.

나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면 나의 말과 행동에 대해 곡해하지 않을 테고, 또 오해가 생겼다면 관계의 회복을 위해 나에게 먼저 와서 물어봤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 과정은 앞서 말한 서른 중반 이후 관계의 정리에 꽤나 도움이 되기도 하였다.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한 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 바람이 부는 날엔 바람으로 비 오면 비에 젖어 사는 거지 그런 거지.
김국환


립스틱 짙게 바르고를 작사한 양인자 작가가 인도여행 중 산스크리트어인 타타타*의 의미를 알고 나서 작사한, 꽤나 오래된 노래인데 있는 그대로의 것을 뜻하는 노래제목과 가사는 어찌 보면 현실적 타협일 수도 있겠다.

관계 회복을 위한 비노력 역시 나를 방어하기 위한 수단적 타협일 수도 있을 테고.


관계라는 것이, 그리고 상대방을 평가하는 것이 내 가치관과 기준에 이끌릴 테지만 누구든지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고 노력했고 내게 그런 행동과 말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과 심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때로는 무신경한 말로 들릴 수 있는 '너니까', 라든가 '그럴 수 있어'라는 말은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의지에서 나오는 말들이었다.



나조차도 나를 모르는데, 감히 내가 남을 알 수 있을까.




*타타타 : तथाता, tathātā, 있는 그대로의 것, 꼭 그러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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