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서] 미경일사면 불지일사라

2026. 1. 23.(금)

by charles

병실 침대에 누워 산소호흡기로 호흡을 도움받던 아버지는 죽음을 직감하고 계셨을까.

죽음을 앞두고 아내와 자녀, 세상과의 이별이 두렵고 슬펐을까, 아니면 더 이상 아프지 않을 것에 대해 좋았을까.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가신 이후부터 돌아가시기까지 한 달 동안 아버지의 음성을 듣지 못했고 그저 눈 깜박임으로, 대화라고는 할 수 없는 소통을 했는데 듣지 못한 많은 말이 있어서 아쉬움이 가득하다.

더 사랑한다 말하지 못하고 더 안아주지 못한 그 새벽, 세상과 작별하는 순간을 함께하지 못해 아빠에게 미안했고, 심장의 움직임이 멈춰 병실을 가득하게 채웠을 모니터링 기계음 속에 엄마를 혼자 둔 것에 미안했다.

내가 이 땅에 태어나던 순간 아버지는 내 곁을 지켰는데 나는 아버지가 이 땅에서 죽음을 맞닥뜨린 순간 곁을 지키지 못했다.

임종의 그 순간, 곁을 지키지 못한 것이 못내 사무친다.


영화 만약에 우리에서 극 중 이은호는 한정원에게 다 해 주고 싶었는데, 뭐든이라고 말하는데 그녀는 다 받았어.라고 답한다. 내가 아빠에게 더 해주고 싶었어라고 말했다면 아빠는 다 받았어라고 대답했겠지.

그럼에도 이 미안함과 아쉬움은 평생 가지고 살아가게 될 테다.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는 인생의 일부 때문에 울 필요가 뭐가 있나, 인생 전체가 눈물 날 일인데*라고 말했는데, 생각해 보니 인생이란 게 태어날 때부터 줄곧 눈물로 점철된다.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 한, 두 딸보다 내가 먼저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고 그때가 되면 아빠의 감정을 오롯이 이해하게 될 테다.

아이를 키워봐야 부모의 마음을 알게 되고 내가 죽을 때나 되어야 죽음을 앞뒀던 아빠의 마음을 알게 될 터이니 일을 경험해보지 못하면 알지 못한다는 미경일사면 불지일사라**라고 말한 선인의 사유는 가히 놀랍다.


먼저 다 받았다고 말해 줄 수 있는 아빠가, 더 받을 게 없다고 말해줄 수 있는 남편이 되어야지.



애도는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문득 솟는 그리움과 뒤늦은 감사,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을 천천히 정리해 가는 과정이라 믿습니다.

*세네카, 마르키아에게 보내는 위로 "Quid est quod ploremus partem vitae? Tota ploranda est."

**명심보감 권학편 未經一事 不知一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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