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평범한 거리들
꼭 해외여행을 가서가 아니고, 나는 원래 골목골목을 걸어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특기는 걷기, 취미는 공원 가기라는 것이 괜히 하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역시 낯선 장소를 거니는 것만큼 재미있는 일은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길을 잃어버릴 위험의 소지는 있지만, 그래도 나에겐 구글맵, 애플맵, 시티 매퍼가 있으니까요!
이렇게 생각해 보자. 매일 보는 똑같은 풍경에서도 이따금씩 사진을 찍고 싶어 지는 순간들이 생기곤 하는데, 낯설고 생소한 장소라면? 그런 순간이 50배는 더 많이 찾아오는 것이 아주 당연한 이치 아닐까? 그래서 나는 런던에 머무는 동안 런던의 평범한 길거리 사진을 굉장히 많이 찍었다. 아마 출퇴근 중이던 런더너들이 보기엔 조금 이상해 보였을지도 모른다. 나도 종각역 먹자골목의 간판을 촬영하고 있는 외국인들을 볼 때면 대체 저걸 왜...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 어느 나라에서나 그런 것을 보면 어떤 도시의 가장 일반적이고 평범한 거리에는 현지인에게는 잘 통하지 않지만, 여행자들만 느낄 수 있는 어떤 특별함이 존재하는 모양이다.
여행 중 가장 많이 지나다녔던 블룸스버리의 거리는 조용한 멋이 있다. 주로 이른 아침과 저녁에 돌아다녀서 사람이 별로 없었던 것일 수도 있지만, 10분 정도 걸어서 킹스크로스 역 근처까지 가지 않는 이상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여서 마음에 쏙 들었다. 약간은 차갑기까지 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조용한 블룸스버리의 거리를 걷는 것은 완벽한 하루의 시작이다. 여기에 따뜻한 플랫 화이트를 한 잔 더하면 완벽함은 200%가 된다.
영국에 왔으면 피쉬 앤 칩스를 먹어야지! 하고 피쉬 앤 칩스를 먹기 위해 찾았던 캠든. 캠든은 블룸스버리에 비하면 훨씬 활기차고 사람으로 북적거렸다. 우리나라로 치면 홍대 같은 느낌이려나. 90년대 밴드의 인터뷰를 보다 보면 빠지지 않고 들리는 이름이 캠든타운이어서 약간 반가운 기분도 들었고, 저녁 무렵이어서인지 클럽에 들어가려고 길게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에 확실히 '그런' 분위기구나 싶었다.
여전히 젊음의 기운이 물씬 풍겨 나는 캠든 거리를 지켜보고 있자니 평범한 단골 펍에서 좋아하는 밴드를 만나고, 원한다면 그들에게 술을 한 잔 사는 것이 어렵지 않았던 90년대의 캠든이 조금 더 궁금해졌다. 어쨌든 이 분위기에 섞기기엔 나는 너무 겁이 많고, 수줍음을 타는 인간이므로 피쉬 앤 칩스를 먹고 거리를 한 바퀴 돈 다음 바쁘게 캠든을 벗어났다.
리젠트 파크 로드는 내가 생각하는 영국의 이미지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거리였다. 영화 패딩턴에 나왔던 동네나, 노팅힐의 분위기와 흡사한 매우 조용한 주택가의 이미지랄까. 아침이나 저녁에 음악을 들으며 이 거리를 조깅하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이 아름다운 거리를 따라 조금만 더 걸어가면 리젠트 파크와 프림로즈 힐에 갈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완벽한 동네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여유가 있고 행복한 삶이란, 일을 끝마치고 잠깐 공원에 들러서 노을 지는 도시를 바라볼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닐까. 물론 단순식으로 계산해 보면 지금의 내 생활에서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원래 이런 생각은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서 반짝하고 떠올랐다가 일상으로 돌아오는 순간 증발하는 법이다.
더블 데커 버스의 2층 맨 앞자리에서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홀번의 거리를 영상으로 남겼다. 정말로 평화롭고 아름다운 순간이어서 이 것만큼은 꼭 영상으로 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건너편에 앉은 현지인은 나의 이런 모습을 의아하게 여겼을지 모르지만, 이 순간을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게 되어서 정말 기쁘다. 언젠가 2019년의 런던에 대한 기억이 모두 휘발해 버린다고 해도, 적어도 이 영상에 담긴 순간만큼은 영원히 따뜻한 추억으로 남아 있을 테니까.
단지 낯설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에서 행복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니 정말 멋지지 않은가! 단순히 유명한 관광지를 보고, 쇼핑을 하는 것을 떠나서 이거야 말로 여행을 다니는 진짜 즐거움이 아닌가 싶다.
나의 현실과 일상에서는 떠올릴 수 없는 아이디어를 발견해 내고, 또 소소하게 행복을 느꼈던 이 모든 기억들이 여행지에서 남긴 사진들처럼 오래오래 내 마음속 깊이 좋은 감정으로 남아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