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는 결혼을 하지 않으려 한다.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별다르지 않은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싫었다. 무엇보다 조가 자라면서 보았던 결혼은 어쩔 수 없는 인생의 선택지였다. 메그가 가족들에게 가난을 개의치 않는다는 티를 내기 위해 애쓰는 모습과, 성공하는 길은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 것뿐이라는 고모의 말은 조를 확신시켰다. 자신에게 찾아오는 기회들을 놓치지 않으리라 다짐했고, 자신은 다를 수 있다고 믿었다.
7년이 지나 과거를 돌아보는 조는 자신의 인생에서 어쩔 수 없이 내렸던 결정들이 생각보다 많았음을 깨닫는다. 미술공부가 하고 싶은 에이미를 위해 무척이나 가고 싶었던 유럽을 포기했고, 어려운 집안을 돕기 위해 소중한 머리카락을 자르기도 했다. 어린 조의 눈에 '어쩔 수 없다'는 말은 그저 핑계에 불과했지만, 돌아보면 그것은 현실의 벽을 느낀 사람들의 씁쓸한 체념이었다. 조가 과거를 돌아보게 되는 것 역시 자신의 재능이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떄문이다.
<작은 아씨들>은 자매들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가득하다. 그럼에도 어딘가 슬픈 느낌을 주는 까닭은, 모든 자매들이 어찌할 수 없는 인생의 순간들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을 배우던 에이미는 어느날 자신의 평범함을 깨닫는다. 그러자 미술을 그만두기로 마음먹고 그것을 바로 실행에 옮긴다. 조 역시 그동안 써왔던 소설들을 남기지 않고 불태워버린다. 예술을 직업으로 삼은 두 사람이 타인의 평가를 받기도 전에 스스로의 결정으로 예술을 그만두는 것은 그들이 처한 현실을 말해준다. 돈이 좀 더 많고, 시간이 좀 더 있었더라면 두 사람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수년간 이어진 로리에 대한 에이미의 감정과, 절대 감정을 숨기는 법이 없는 조의 성격을 보면 너무도 뻔했다.
가난은 조로 하여금 소설가의 꿈을 접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안타까운 것은, 가난이 접었던 꿈을 다시 펼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소설을 다시 쓰기 시작하게 되는 것은 아픈 동생 때문이며, 소설가가 되려는 조의 길을 열어준 것은 자신과 가치관이 달랐던 고모의 유산이었다. 소설가로서 조가 거둔 성공은 고모가 생전에 이야기했던 성공의 경로를 벗어나지 않는다. 좋은 조건을 가진 남자를 만나 성공하는 것과 돈이 많은 고모의 유산을 통해 성공하는 것은 다르지 않고, 무엇보다 조가 원치 않았던 타인에 의한 성공이었다.
그런 조를 변호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인생에는 '어쩔 수 없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조가, 고모의 유산 역시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였을 수 있다. 또한 조는 유산을 그녀의 고모라면 쓰지 않았을 방식으로 사용한다. 그럼에도 조는 유산을 통해 가난이 주는 걱정을 한순간에 벗어던지고, 그러한 걱정으로 점철된 자신의 유년시절을 책으로 내 성공을 거둔다. 그 결말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며 넘기고 싶지는 않았다.
외려 조의 성공으로 인한 기쁨보다, 소설가를 꿈꾸는 조의 걱정들과 소설을 태울 때의 먹먹함을 기억하고 싶다. 어찌할 수 없음을 깨닫는 것은 모든 것을 쏟아부었기에 가능하고, 조가 소설을 태울 때 망설이지 않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그녀는 언젠가 받게 될지 모르는 유산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손으로 소설들을 불태우는 인물이고, 로리에게 주려던 진심이 담긴 편지를 미련없이 찢어버리는 인물이다. 조는 가난을 핑계로 삼지 않고, 패배를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기에 그녀를 '소설가로서의 성공'이라는 결과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에이미는 누가 읽을 것 같지도 않은 소설을 쓰는 일의 의의는 그러한 이야기를 남기는 데 있다고 말한다. 그 과정을 믿었기에 소설이 탄생할 수 있었고, 시간이 흘러 영화로 제작될 수 있었다. 영화를 통해 기억해야 할 것은 꿈을 이루고자 하는 인물들의 꺾을 수 없는 고결한 의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