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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 히마스, 깅크 선언(GINK Manifesto)

Green inclinations, no kids

by 러련


https://grist.org/article/2010-03-30-gink-manifesto-say-it-loud-im-childfree-and-im-proud/



1969년, 졸업반이던 스테파니 밀스는 다가오는 생태 재앙을 맞아 재생산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을 담은 졸업 연설로 신문 1면을 장식했다. 그녀는 "제게 주어진 가장 인도적인 선택이 아이를 낳지 않는 일이라는 사실이 끔찍하게 비통"하다고 동기들에게 말했다.

오늘 나는 여러분 앞에서 같은 선언을, 다른 방식으로 하려 한다. 나는 내게 주어진 가장 인도적인 선택이 아이를 낳지 않는 일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기쁘다.

환경 친화적인 선택은 자주 희생이나 유난이나 비용으로 느껴지곤 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내게는 엄청난 비용을 감축하고 탄소로 포화된 대기에는 엄청난 부담을 덜어주는 사치스런 방종으로 느껴진다.

나는 이런 나를 깅크GINK라고 부르기로 했다: 환경 친화green inclinations, 아이 없음no kids.

우선, 부모들에게 한 마디

이것부터 깔고 가자: 나는 아이들—중 다수—를 좋아한다. 소위 말하는 나의 '베스트 프렌드' 중에도 부모가 있다. 재생산했거나, 하고 있거나, 할 예정인 이들에 대한 악감정은 없다. 윤리적이거나 도덕적인 우위를 차지하려는 것도 아니다.

당신이 부모 되기를 바라고 계획했거나 실천 중이라면 당신의 선택을 존중하고 행운을 빈다. 정진하여 행복하고 건강한 아이를 키우기를. 그들이 당신에게 기쁨과 보람을 가져다주고, 착실하게 세금을 납부하는 생산적인 사회의 일원이 되기를 바란다.

물론 부모들과 부모가 되고 싶은 이들에게 더 많은 동기 부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우리 사회가 이미 압도적으로 당신들의 선택을 지지하고 있다. 그래, 미국은 유급 육아휴직과 모두를 위한 보육 서비스가 부족하고, 아이를 가진 동성 부부를 위한 기본적인 권리도 부족하고, 그런 한계는 극복해야 한다. 하지만 세제 혜택부터 항공권 할인까지, 독촉하는 마음 급한 조부모나 아이는 언제 낳을 거냐고 묻는 친구나 사촌이나 심지어는 생판 모르는 사람까지, "임신하면 당신이 알아야 할 모든 것" 시리즈부터 수많은 '엄마' '아빠' 블로그까지, 우리 사회는 당신의 선택을 지지한다—때로는 그런 선택을 요구하기까지 한다. 신체적인 조건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니 이 글은 당신을 위한 글이 아니다. 사회로부터 지지받지 못하는, 비출산이거나 비출산이 궁금한 이들을 위한 글이다. 부모 여러분, 계속해서 읽는 것은 괜찮지만, 애를 낳아보면 마음이 바뀔 거라고 말하지 않기로 약속하라!

그럼 본론으로

사람들 앞에 말할 수 없는 지저분한 비밀을 공개한다: 아이 없는 삶에는 이점이 많고, 그 중에는 오염되고 포화된 지구에 새로운 존재를 들이지 않는 데서 오는 환경적인 이점도 있다.

물론 비출산을 선택해서 놓치는 것도 많을 테다: 출산의 기적(솔직히 말하자면 그걸 건너뛴다고 그리 속상하지는 않지만). 아이들만의 지각에서 나오는 폭소 나오게 웃긴 말들. 해리 포터 시리즈를 다시 읽기 위한 핑계. 우리 애는 나보다 똑똑하고 멋지고 나은 사람일 거라는 기대감. 에너지 넘치는 명절. 가족의 이름을 이어나갈 사람(아이에게 누구의 성을 물려줄지에 대한 팔씨름을 내가 이겼다는 전제 하에). 교육 받고 자리 잡은 성인으로 자라나도록 아이를 도왔다는 만족감과, 노후에 나를 돌봐줄 이가 있다는 마음의 평화까지도.

하지만 부모들이 놓치는 것도 많다(때로 그들이 재빠르게 일러주듯): 우정이나 로맨틱한 관계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과 감정적 노동력. 직장이나 교육이나 취미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 방해받지 않은 '어른들의' 대화. 순수히 즉흥적이거나 여유롭거나 도전적인 (그리고 동물원을 포함하지 않는) 여행. 미리 계획하지 않아도 되는 시내에서의 토요일 밤과 일요일 브런치. 정치 활동과 커뮤니티 활동의 기회. 읽거나 쓰거나 쉬기 위한 조용한 시간. 어린이 사고 방지 장치가 없는, 어린이 장난감이 흩어져있지 않은, 금붕어 모양의 과자 부스러기로 가득하지 않은 집안. 밤마다 평화롭고 끊기지 않는 여덟 시간의 수면. 이 모든 것을,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죄책감 없이 말이다.

비출산은 또한 경제적 자유를 의미하기도 한다. 아이 키우기란 얼마나 비싼가? USDA 통계에 의하면 2008년에 $57,000에서 $98,000 사이를 벌어 오는 부모에게 아이당 $291,570 정도 된다. 대학을 포함하지 않은, 첫 18년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더 벌면 더 쓸 가능성이 높다. 일 년에 $98,000 이상을 버는 부부는 첫 18년 동안 평균 $483,750을 소비한다. (경과와 조건을 전부 보고 싶다면 직접 숫자를 확인하라.)

하버드대의 심리학 교수이자 행복 전문가 다니엘 길버트가 최근 NPR에 말한 것에 의하면 아이 키우기를 포기하는 것은 당신의 행복도에도 여유를 가져다줄 수 있다:

아이가 없다면 하루하루 느끼는 만족이 더 높다는 측면에서 당신의 결혼생활이 더 행복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아이를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하기 때문에 이걸 들으면 놀랍니다. 내 아이가 어떻게 행복의 원천이 아닐 수 있단 말이지?

그런 이유 중 하나는 아이가 행복의 원천이기는 하더라도 다른 행복의 원천을 차단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첫 아이를 출산한 사람들은 보통 1-2년 내에 그들에게 기쁨을 주던 다른 일들을 하고 있지 않다는 걸 깨닫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영화관이나 극장을 찾지 않는다. 그들은 친구들과 나가 놀지 않는다. 그들은 파트너와 섹스하지 않는다.

길버트는 2006년에 출간한 우연한 행복에서 이 주제에 대해 더 깊이 다룬다:

여성들이 하루 일과 중 느끼는 감정을 세세하게 다룬 연구에 따르면 그들이 먹거나 운동하거나 쇼핑하거나 낮잠 자거나 텔레비전을 볼 때보다 어린이를 돌볼 때 덜 행복하다. 어린이를 돌보는 것은 집안일을 하는 것보다 약간의 만족감을 줄 뿐이다.

이건 놀라운 결과가 아니다. 모든 부모는 아이 키우는 게 엄청난 일—엄청나게 고된 일—이라는 것과, 부모 되기에 따르는 보람의 순간도 많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수십년이 지나야 마지못해 감사를 표할 사람들을 위한 지루하고 희생적인 봉사의 반복이라는 걸 알고 있다.

선동자였던 스테파니 밀스도, 처음에는 그의 선택이 희생이라고 주장했지만, 이제는 말이 바뀌었다:

... 스스로를 위한 좋은 선택이었다. 나는 고집스러울 만큼 독립적이고 나의 고독함과 자유를 사랑한다. ... 다른 여성들은 직업의 부담과 엄마 되기를 모두 이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 부모 되기의 책임감과 혼란은 내게 엄청난 보람을 주는 작가로서의 일을 추구하는 것을 막았을 것이다 ...

자신의 결정에 대해 의문을 전혀 갖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할머니가 될 정도의 나이에 도달하니 때로는 함께 시간을 보낼 손녀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지만, 내 친구들 중에 엄청난 젊은이들이 있고 그들로부터 배우고 내가 축적한 일말의 지혜로 그들에게 전해줄 수 있다. 그걸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결국 밀이 말하는 것은 삶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아이 갖기를 포기함으로써 몇 개의 문은 닫히지만, 다른 문은 열리고, 그 문들의 손잡이는 끈적끈적하지 않다.

초록의 관점에서

끊기지 않은 수면과 반짝이는 문손잡이 너머, 비출산의 환경적 이점을 생각하자.

세계 인구는 내년이나 내후년에 70억에 도달할 궤적을 그리고 있다—밀스가 40년 전 잔뜩 성냈을 때보다 30억 늘어난 것이다. 다수의 기후 과학자들이 말하는 백만 분의 350 이산화탄소의 안전 지대를 벗어날 만큼의 온실가스를 대기에 뿜어낸 상황이다—이미 390을 넘어섰고 숫자는 빠르게 늘고 있다. 그리고 미국 사람들은 지구에서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를 생산하는 사람들 중에 있다. 미국인은 평균적으로 방글라데시 사람이 일 년에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66배를 배출한다—0.3톤 대 20톤의 규모로.

내 자식의 탄소발자국 뿐 아니라 자식의 자식까지 생각한다면, 숫자는 점점 극명해진다. 미국인 후손의 장기적인 영향을 고려한 글로벌 환경 변화의 2009년 연구에 의하면, 각각의 어린이는 부모의 탄소 발자국에 9,441 미터톤의 예측치를 더한다—일생 동안 직접적으로 배출하는 것의 약 5.7배 정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하급수적인 인구 증가의 힘에 대해 모른다"고 해당 연구의 공동저자인 오레건 주립대 통계학과 교수 폴 머토가 말한다. "복리 계산 방식이 통장 잔고를 키우듯, 미래의 증가량은 현재 인구의 재생산 결정의 결과를 증폭시킨다." (극단적인 사례를 들자면, 비출산인 나와 올해 93세의 나이에 사망하며 약 2,000명의 후손을 남긴 뉴욕 먼로 시의 이타 슈바르스를 비교하라.)

살만한 환경을 보존하려 애쓰는 사람이 제 몫을 다하기 위한 선택지는 많고, 당신은 아마 전부 들어봤을 것이다: 걷기 좋은 동네에서 에너지 효율이 높은 집에 살기, 가능한 한 자전거를 타거나 걷거나 대중교통 이용하기, 자가용을 몬다면 효율이 높은 것을 선택하기, 비행량 줄이기, 채식하기, 유기농과 지역에서 자란 것을 섭취하기, 소비 줄이기, CFL이나 LED로 교체하기, 뱀파이어 전자 제품 죽이기, 탄소발자국 상쇄하기, 기후에 대한 의식이 있는 후보자에 투표하기, 그리고 그들이 기후 약속을 지키도록 요구하기.

그러나 이걸 전부 모으더라도 지구에 새로운 인간을—특히 미국인을—들이지 않는 것의 영향 근처에도 미치지 못한다.

진실은 간단하다: 나같은 평범한 사람에게—앨 고어처럼 수백만 명의 사람에게 가닿거나 낸시 펠로시처럼 획기적인 환경 정책을 진척시키거나 (실제로 시행하지는 않더라도) 밴 존스처럼 완전히 새로운 관심층에 영감을 줄 (그리고 분노케 할) 능력이 없다면—깨끗하고 친환경적인 지구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유의미한 기여는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다.

이제는 말해보자

왜 이런 얘기를 하는 게 무례하게 느껴질까?

비출산이기를 선택하는 우리는 소수이지만, 이런 생활 방식에 대한 공적 담론을 기반으로 판단한다면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부모들은 아이 키우기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다른 부모와 우리 모두에게 항상 이야기하고 그것에 대한 악감정은 없다.

우리 같은 비출산인들은 아이 없는 삶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공적으로 발화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그게 바뀌어야 한다.

당신이 비출산을 선택했다면, 누군가 당신에게 "애는 언제 낳을 거냐"고 물었을 때 실제 답변은 "절대"이면서 "잘 모르겠다"거나 "우리한테는 그날이 안 올지도 모르겠다"거나 "언젠가..."라며 솔직하지 못하게 웅얼거린 적이 몇 번인가?

비출산인들은 마치 우리가 다른 선택을 한 이유에 대해 진실을 말하는 게 그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인 것처럼 부모들 앞에서 지나치게 조심스러워하곤 한다. 하지만 그들이 가족 계획에 대해 그렇게나 유약하고 확신이 없다고 전제하는 게 오히려 무례하다—그리고 비출산이라는 가당한 선택지에 대해 공개적으로 발화하지 않음으로써 우리 자신과 사회 전반을 속이는 일이기도 하다.

당신이 아이 질문에 대해 솔직하게 답변한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지금 이대로 사는 게 좋다"라든가 "우리 계획에 아이가 들어올 자리는 없다"라든가 "나는 아이는 별로"라든가 "이미 이 세상에 사람이 충분한 것 같다"라든가 말이다.

우리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한다면, GINK든 아니든 우리와 비슷하게 생각하거나 적어도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많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우리 주변의 부모들과 신선하리만치 솔직하고 유쾌한 대화를 나누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부모 되기를 주저하는 이들에게 비출산이라는 선택이 얼마나 유효하며 외롭지만은 않다는 걸 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조그만 (기쁨)덩어리가 모두를 위한 것은 아니다—이제는 그걸 말할 때가 됐다.





2010년에 쓰인 글이라 인용된 링크가 유효하지 않은 게 많고, 특히 기후 변화는 2010년 이후로 가속 & 악화가 진행되어 통계나 측정치는 정확하지 않은 게 많을 것. (기본적으로 인구는 70억이 아닌 80억을 넘어선 상태라고요 ... ) '온실가스'도 '탄소발자국'도 이제는 자주 쓰이지 않는 용어가 되었으니 말이다.


다만 깅크 매니페스토에 대해 들어보지 못했다는 게 놀라워 때지난 글이지만 옮겨보았다.


지난해 기후환경 분야의 전문가인 디페시 차크라바티 교수의 특강에서 이를 다룬 것을 들은 이후 인구 과밀 현상을 조심스럽게나마 분명 다루어야 하는 현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동시에 재생산에 대해 자유롭게 선택할 수 기회가 균등하게 분배되어 있지 않은 사회에서 (퀴어 부부의 출산/가족됨, 비혼모, 여성을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 혹은 재생산 도구로 규정하는 제도와 국가 시스템) 시스젠더 백인 여성이 '비-재생산 선택하기'를 선언한다는 점은 여러모로 복잡하다. 그래서 위 선언문에서 깅크의 논리를 뒷받침하기 위해 미국인의 평균적인 탄소발자국을 다른 나라의 그것과 비교한 내용이나 (중산층) 미국인으로서 할 수 있는 선택이라는 점에 집중한 것이 흥미로웠고.


환경도 마찬가지임. 이 글은 환경을 위한 '개인의 선택'은 대부분 백인-선진국-중산층에게만 주어지는 환상인 경우가 많다는 것(유기농 먹기, 비거니즘, '걷기 좋은 동네'의 에너지 효율 높은 집에서 살기와 같이)을 어느정도 인지하고 있고, 이에 저항할 수 있는 (장기적으로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선택지로 깅크-비출산을 제시한다는 점 또한 흥미로움. 다만 2010년 이후 '개인적인 선택'으로 환경을 보호하는 것에 대한 전반적인 사회 인식이 변화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출산-비출산이라는 선택과 이에 따르는 결과에 집중하는 이 글이 지금 이 시대의 정서와는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물론 이 글의 목적이 그 선택을 정당화함에 있어서 그렇겠지만, 출산-양육의 환경적 영향에 대한 기업-국가에 대한 구조적 비판이 부재하다는 점에서. 지금 시점에서 깅크를 선언하기란 거대 기업과 기후를 부정한 국가 앞에 선 미약한 절규쯤-그 절규의 미약함을 개탄하는 것쯤-될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인지 깅크 선언은 크게 2010년 언저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좀 찾아보았으나 이에 대한 최근 인용이나 연구, 글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깅크가 지니는 정서의 일부는 대중에게 제법 친숙해진 것도 같다. 반복되는 기후 재난과 경제/사회 위기, 지속되는 가부장제와 성별불평등으로 인해 미래를 비관하는 청(소)년이 급증했고, 이렇게 다층적인 미래에 대한 불안 탓에 비출산은 흔한(?) 선택지가 되었으니. 다만 최근 트럼프 정권을 비관하며 제작된 밈 중 '이렇게 백인 우파들만 재생산하다 보면 그들밖에 남지 않을 것이니 우리(인종소수자, 퀴어, 좌파 사회주의자 등)도 분발해야 한다'는 내용의 조소섞인 글을 보고는 잠시 위기감을 느끼기도 했다. 아이 낳기-혹은 낳지 않기-는 정말로 계급화/성별화된 특권이지 ...


내가 아이를 키우게 된다면 기저귀를 하나 버릴 때마다 가슴이 찡하고 아리겠지. 그 아픔 피하고 싶어 비출산을 선택한다면 그것도 유효하다고 해줄까? 와중에 제로웨이스트 기저귀를 매일 빨아 쓰는 멋진 엄마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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