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nville Island
태평양의 푸른 물결이 반짝이는 해안을 따라 걷다 보면, 마치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듯한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그랜빌 아일랜드의 퍼블릭 마켓에서 갓 구운 5불짜리 연어 파이를 손에 들고, 거리 공연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에 몸을 맡기며 느긋한 오후를 보낼 수 있는 곳이다. 잔잔한 물길을 가로지르는 배들과, 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지루함은 금세 사라진다.
밴쿠버의 대표적인 관광지이자 지역 주민들도 즐겨 찾는 그랜빌 아일랜드는, 예술과 문화를 품은 도시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거리 공연의 음악을 들으며 예술가들의 작업 스튜디오와 갤러리를 둘러보는 일은, 이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즐거움이다.
밴쿠버 시 한가운데에 있으면서도 여전히 캐나다 연방 정부 소유로 남아 있는 작은 섬, 그랜빌 아일랜드는 한때 주택난 해소를 위해 대규모 부동산 개발이 검토되기도 했지만, 수차례 논의 끝에 섬 전체를 예술과 기술 혁신의 중심지(Hub)로 조성하기로 결정되면서, 그랜빌 아일랜드는 앞으로도 도심 속 여유와 낭만을 대표하는 명소로 남게 되었다.
아직 세부 계획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오가고 있지만, 이는 그랜빌 아일랜드를 향한 밴쿠버 시민들의 깊은 애정과 관심은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다. 현재는 이러한 의견들을 반영하기 위한 수렴 과정이 진행 중이다. (Granville Island 2040 Plan)
https://granvilleisland2040.ca
에밀리 카 예술 대학(Emily Carr University of Art + Design)은 40년 넘게 그랜빌 아일랜드 중심부에 자리한 캠퍼스를 통해 밴쿠버 예술계의 심장 역할을 해왔다. 최근 캠퍼스 확장을 위해 새로운 부지로 이전했지만, 그 자리는 여전히 예술의 열기로 가득하다. 대학이 떠난 공간에는 비영리 예술 교육 단체인 Arts Umbrella가 들어서며, 또 다른 예술과 교육의 장이 열렸다.
이 새로운 캠퍼스는 밴쿠버, 써리에 이어 네 번째로 개설된 공간으로, 매년 24,000명 이상의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연기, 춤, 아트, 디자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내부에는 6개의 댄스 스튜디오, 4개의 소극장, 10개의 아트 스튜디오가 갖춰져 있으며, 132석 규모의 극장과 전시 공간도 마련되어 있어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영감과 만남의 장을 선사한다.
Arts Umbrella의 존재는 그랜빌 아일랜드의 예술적 정체성을 고스란히 이어가며, 더 많은 세대가 예술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이곳은 단순한 교육의 공간을 넘어, 예술가와 아이들, 그리고 지역 사회가 함께 어우러지는 창의성의 허브로 자리잡고 있다.
(Granville Island Brewing Company)
그랜빌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기업 중 하나는, 1984년 설립된 캐나다 최초의 소규모 양조장 중 하나이자 밴쿠버를 대표하는 맥주 브랜드로 성장한 그랜빌 아일랜드 브루잉 컴퍼니(Granville Island Brewing Company)다. 이 양조장은 그랜빌 아일랜드의 독특한 분위기와 조화를 이루며, 지역 주민과 방문객 모두에게 오랜 시간 사랑받아 왔다.
2016년 대기업인 Molson Coors에 인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랜빌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맥주 브랜드로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특히 이 기업의 성공을 벤치마킹한 수많은 소규모 양조장들이 등장하면서, 밴쿠버는 지금 ‘크래프트 비어’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섬 입구에 자리한 그랜빌 아일랜드 브루잉은 그랜빌 아일랜드를 찾는 이들이 반드시 들르는 명소 중 하나다. 가볍게 들러 맥주 시음을 즐기며 하루를 시작하거나 마무리하는 그 순간마저, 이곳의 여유로운 분위기와 어우러져 특별한 기억이 된다.
그랜빌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Tap & Barrel – Bridges는 1980년, UBC 대학 교수였던 Seelig와 Divinsky 두 사람에 의해 설립된 음식점이다. 당시 비어 있던 오래된 창고를 개조해 만든 이 캐주얼 레스토랑은 40년 넘게 밴쿠버 주민들과 희노애락을 함께하며 사랑받아 왔다. 이후 2018년, 맥주 전문점 Tap & Barrel에 인수되었지만, 다른 지점들과는 달리 Bridges만의 추억을 간직한 이들을 위해 기존의 음식과 메뉴를 유지하며 많은 이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밴쿠버는 1900년대 초부터 본격적인 도시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가진 도시다. 하지만 그 안에는 고유한 정체성과 지역 사회의 추억이 깊이 스며 있다. 이 때문에 밴쿠버 주민들은 오래된 건물을 허물고 획일적인 새 집을 짓거나, 전체 지역을 재개발해 완전히 새로운 도시로 탈바꿈하는 대대적인 변화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부동산 개발 신청 후 열리는 시 주관 공청회에 가보면, 이러한 개발 계획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자주 들을 수 있다.
물론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는 불가피하지만, 많은 주민들은 추억과 역사를 보존하면서도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방식의 도시 개발을 더 선호한다. 이는 단순한 과거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도시의 정체성을 지키고 공동체의 역사를 존중하려는 의지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도시 개발 철학은 밴쿠버 시민들의 바람을 반영하며, 밴쿠버가 새로운 시대에 맞는 도시로 나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