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by Charlie Sung


‘야생초 찾아 다니는 사람이 이야기합니다.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를 조용히 들여다보면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 속에 우주가 있습니다. 꽃 한 송이의 신비가 그렇거늘 사람의 경우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누구나 꽃’입니다. 그 속에 시대가 있고 사회가 있고 기쁨과 아픔이 있습니다.’

신영복 선생이 쓴 『담론』이라는 책의 한 구절입니다. 여행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어느 곳 하나 세심하게 살펴보면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사람 냄새 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고 저마다의 꿈이 있습니다. 하나의 작은 우주입니다. 블라디보스톡도 마찬가지입니다. ‘동방을 지배하라’라는 뜻을 가진 이 도시는 이름부터 호전적인데다 러시아 특유의 건조한 표정으로 무장한 생경한 곳입니다. 초행길인 여행자들이 긴장할 법도 합니다.

하지만 차분히 들여다보면 참 선량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입니다. 주말에는 배우자와 부모님의 손을 잡고 나들이를 나가 여유를 즐기고,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배려 할 줄 아는 살가운 사람들의 공간입니다. 또한 우리 민족의 얼과 한이 사무친 도시이기도 합니다. 조선 시대 후기 흉년을 피해 한인들의 이주가 시작됐고 반세기가 지나서는 연해주 지방에 20만 명이 넘는 한인사회가 형성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주 한인들은 남다른 근면성과 강인함으로 불모의 땅을 개척했으나 결국 강제 이주의 시련을 겪게 됩니다. 눈감는 날까지 고향 땅을 그리워하고도 고향의 봄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조상을 기리는 경건한 마음이 여행의 시작부터 함께 했습니다.

블라디보스톡은 동해 연안의 최대 항구도시이자 군사항구로서 특유의 짠 바다 냄새로 방문객을 맞이합니다. 공항에서 시내로 향하는 길에서는 모스크바와는 다른 차분함과 소박함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 첫 인상은 블라디보스톡을 떠나온 지금도 제 머릿속에 잔잔하게 남아있습니다. 번화하지는 않으나 반대로 부산하지 않은 우리네 시골 같은 정겨운 도시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까운 유럽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동•서유럽에서 흔히 감상할 수 있는 유럽식 건축물이 도처에 즐비합니다. 또한 지리적인 근접성에도 불구하고 언어와 인종, 문화의 차이는 극적인 것이어서 방문객들의 가슴은 연신 방망이질 칩니다. 짧은 시간의 비행에도 이토록 이국적인 공간에 발을 딛고 모험할 수 있다는 사실에 잠시 어리둥절해 지기도 합니다. 세상은 넓고도 또 좁습니다.

일명 예술의 거리라 불리는 아르바트 거리를 지나 해양 공원에 이르는 길은 블라디보스톡 여행의 정수라 할 수 있습니다. 아르바트 거리의 중간 중간에 놓인 분수대에는 나른한 태양 아래 주말을 만끽하는 가족 단위 나들이 객들이, 해양 공원의 끝자락에 위치한 카페에는 색소폰 소리와 함께 맥주를 음미하는 청춘 남녀의 달콤한 속삭임이 있습니다. 누가 러시아에 낭만이 없다고 하겠습니까?

한 때 우리 조상들의 삶의 터전이자 독립 운동의 거점이기도 하여 숙연한 마음으로 찾았던 블라디보스톡은 우리 역사를 돌아보는 학습의 장이기도 했고 투철한 민족주의만이 아닌 여유와 낭만이 있는 러시아를 다시 조망하는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인류의 역사상 가장 이상적인 실험을 감행한 러시아는 그저 실패한 혁명국가로 남아 있지 않고 그 유구한 역사와 풍부한 문화유산으로 세계인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Charlie, the supertra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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