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직업적으로 많이 읽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권유하는 책 읽기 방식에는 몇가지 단계가 있다. 첫째 혼자 읽기다. 당연한 단계다. 책을 읽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단계라는 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다음으로 책의 내용을 음미하며 사색하는 단계다. 기계적으로 텍스트의 구성이나 문장의 꾸밈새, 단어의 용법에만 천착해서는 도달하기 어려운 단계다. 기억에 남는 것은 단편적인 것이요, 사색해야하는 것은 좀 더 근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단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당연히 충실한 독서다. 마지막 단계가 내가 가장 등한시 했던 단계인 토론의 단계다. 같은 내용의 책을 읽고 사색과 명상을 통해 책의 내용을 각자의 방식으로 소화시킨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이 마지막 단계의 핵심인데 과거에는 이 단계를 불필요하게 생각했거나 낭비라고 생각했었다.
토론의 장점은 육성으로 된 말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사고는 처음에는 생각으로 발전하고 다음으로 문자로 익어가며 마지막으로 말의 형태로 진화한다고 생각한다. 누구든 친구나 동료들과 이야기하면서 기존에 자기가 가졌던 사고가 일보 전진 했다는 사실을 불현듯 느낄 때가 있을 것이다. 이처럼 말의 형태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자신의 사색을 좀 더 윤을 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생각은 최종적으로 말의 형태로 완성된다.
다음으로 토론은 상호 보완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토론의 본 목적은 타인을 설득하여 나의 의견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상호간의 부족한 점을 일종의 유쾌하고 박진감 넘치는 결투 속에서 보완하여 최선의 안을 도출해 나가는 과정이다. 니가 옳고 내가 옳고 하는 것은 남한 북한이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해 온 것이고 토론이라는 것은 유시민씨와 전원책씨가 케이블 티비의 한 예능 프로에서 하는 티격태격 상호 저격에 더 가까운 것이다. 일개 예능 속의 대화가 민족 간의 그것 보다 격이 높다는 것은 참 웃음 밖에 안 나오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토론은 이 각박한 각자도생의 시기에 좋은 벗을 만들 수 있는 장으로서 기능한다. 토론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최선의 안을 도출해 가는 협력의 과정이기도 하지만 서로를 알아가는 연애 같은 사교의 형태이기도 하다. 매번 다른 책과 다른 사안에 대해서 그 사람의 생각을 듣는 일은 그 사람과 한 걸음씩 더 가까워 지는 일이기도 하다. 토론 보다는 오히려 사려 깊은 듣기의 과정이기도 하고 다른 곳에서 쉽사리 하지 못한 과격한 생각을 실험해 보는 것이기도 하다.
토론은 재밌고 신난다.
- Charlie, the supertram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