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빌어먹을 ‘4’가 없는 세상에서 살게 해 주세요.’
저는 숫자 ‘4’가 죽기보다 싫습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한자 문화권에서 숫자 ‘4’는 죽을 사(死)와 음이 같아 보통 을씨년스럽고 불길한 정서를 자아내는데 저의 경우 주위 지인들이 납득하기 힘들어할 만큼 숫자 ‘4’가 지독하게 밉습니다.
‘4’가 들어간 날에는, 이를테면 매달 4일, 14일, 24일에는 되도록 일을 꾸미지 않으려 애씁니다. 지긋지긋한 외로움에 몸서리칠지언정 그리운 사람을 만나지 않습니다. 지하철을 탈 때는 ‘4’가 들어간 승차홈은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합니다. ‘4’를 피할 수 없을 때는 차라리 지하철을 먼저 보냅니다. 버스 탑승 대기 줄에서도 어쩌다 네 번째에 서게 되면 일부러 차례를 양보합니다. ‘4’에 대한 적대감이 지각으로 인해 예상되는 불이익을 압도합니다. 4시 44분에는 숨 쉬는 것 이외에는 부정한 행동을 일체 삼갑니다. 4차원의 세계가 있다면 그곳만은 꼭 피해야지 다짐하기도 합니다. ‘4’는 저를 바싹 엎드리게 합니다.
아무리 ‘4’가 죽을 사 (死)와 음이 같다고 해도 저처럼 싫어하는 사람이 드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4’를 싫어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아직도 생생한 그것을 떠올리면 당장이라도 ‘4’의 멱살, 머리끄덩이 같이 손에 잡히는 어디라도 닥치는 대로 낚아채 늘씬하게 두들겨 패고 싶어 집니다.
예상 밖의 과분한 결과라 지금도 가끔 믿기지 않지만, 제가 고등학교 때 전교에서 4등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 성적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고 목표한 대학에 입학할 수 없었습니다. 오랜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기에 좌절감은 꽤 오래 남았습니다. 2004년도에 입대한 군대에서는 자타공인 기피 부대에 자원한 후 군 생활 내내 불평을 일삼다가 종국에는 위장병을 얻고 말았습니다. 배낭여행 중이었습니다. 오후 4시 xx분에 인도네시아 발리를 출발한 비행기는 무자비한 난기류를 만나 급강하를 반복했고 기내는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제발 목숨만은 살려 달라고 ‘관세음보살’, ‘할렐루야’, ‘인샬라’ 등 존재하는 모든 신에게 기도했습니다. 운 좋게 살아서 착륙했으나 그 이후로 저는 오후 4시 언저리에 출발하는 비행기에 타지 않습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4급에서 3급으로 진급할 때는 누락의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제때 진급한 동기들에 비해 4를 무려 1년이나 더 달고 살았던 셈입니다. 동기들 이름 앞에 붙은 3에 비해 제 이름 앞의 4는 전에 없이 남루했습니다. 불행한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숫자 ‘4’가 두려워졌습니다.
부질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제발 빌어먹을 ‘4’가 없는 세상에서 살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도 해봤습니다.
그런 제가 내후년이면 나이 40, 즉 마흔이 됩니다. 숫자 ‘4’ 없이는 살 수 없는 10년이 제 앞에 놓여있습니다. 하지만 ‘4’가 밉고 두렵다고 이 찬란하고 아름다운 생을 마감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저는 ‘4’와 함께 살기로, 화해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끔찍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4’를 당당히 마주하기로 했습니다. 지하철 승차홈의 ‘4’를 피하지 않겠습니다. 버스 줄의 네 번째 자리도 의연히 지키겠습니다. 4시 44분에는 하루 중에 가장 가치 있는 일을 하겠습니다.
공포와 두려움, 미움을 이기는 방법은 결국 그 감정을 유발하는 원인과 용기 있게 마주하는 일뿐인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공포, 두려움, 미움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평생을 따라붙어 괴롭히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그것을 극복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련의 불행을 야기한 그래서 원수 같은 그 원인은 실체가 없고 우연만이 반복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니 오히려 나 스스로의 선택이 모든 일의 원인일지도 모릅니다.
꿈에나 그렸을 전교 4등의 성적표를 받은 저는 과대 포장된 성과에 심취했고 곧 교만해졌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를 더 이상 지킬 수 없었습니다. 분명히 예전만큼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남들이 다 마다하는 업무를 자처한 군대에서의 일은 따지고 보면 제 무식과 만용이 낳은 참사였습니다. 분통이 터졌지만 선택의 결과는 제 몫이었고 혼자 끙끙 앓기밖에 다른 수가 없었습니다. 비행 중 난기류는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난기류의 원인은 출발시간에서 찾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진급 누락은 경쟁 우위를 점하지 못한 제 무능력을 탓할 일이지 ‘4’를 나무랄 일은 아닙니다. 저는 제 불행을 책임질 ‘피고’가 필요했고 원망할 대상이 필요했을 뿐입니다.
마흔이 다 돼서야 ‘4’와 화해 준비를 한다니 참 더디고 무딘 인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으로는 이제라도 ‘4’에 대한 미움과 두려움을 멈출 수 있게 돼서 다행스럽기도 합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4’에게도 근사한 구석이 은근히 많습니다. 우리는 사(4) 계절이 있어 지루할 틈 없이 변화하는 자연을 만끽할 수 있고, 홈런 날리는 4번 타자가 있어 야구가 통쾌하고 청량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4인 가족의 완벽한 조화 안에서 지금껏 안전하게 살았습니다. 전 지구인이 열광하는 월드컵, 올림픽도 4년마다 한 번씩 개최됩니다. 그리움이 적당히 무르익는 시간이 4년입니다. 저는 ‘4’의 진면목을 애써 외면하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미워하고 증오했다가 필요할 때는 화해를 청하고 심지어 칭송까지 합니다. 제 변덕과 이기심에 스스로 한심함을 느끼게 되는 것을 보니 이제 글을 마무리해야 할 시점인 것 같습니다. 기왕 죽을 ‘4’와 함께 살기로 한 이상 ‘4’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 전하고 싶습니다. ‘진심으로 사과할게. 오해가 많았어. 우리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잘 부탁해, 나의 40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