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생일이 있는 주에 남자 친구가 보르도에 일주일 내내 출장을 가 있어야 해서 내가 생일 전날 보르도로 갔다.
생일 당일에도 또마는 보르도 시내에 나갈 거냐고 물었지만 나는 과제를 하기로 했다고 대답했다. 최근 한 달은 2년 동안 미루고 미루던 프랑스에서의 온라인 학위 과정의 최종 과제를 하느라 정신머리를 차리고 집중하느라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오후 내내 호텔에서 열심히 일러스트레이터로 과제를 하고, 저녁에만 기분을 내려 호텔에서 식사를 했다.
외부 자극에 민감한 내 성격으로 인해 뷰가 괜찮은 호텔 안에서 이렇게 생일을 조용히 보내니 오히려 좋았다.
한국 친구들이 돈을 모아서 선물을 보내주고, 엄마도 돈을 보내줬다. 요즘은 환율이 별로라서 동생 역시 현금을 나에게 보내주고 내가 여기서 사고 싶은 백팩을 시켰는데 이 가방이 그렇게나 스트레스를 줄 원흉이 될 줄은 몰랐다.
연금 개혁 반대 시위 때문에 택배 배송일이 하루 늦어져서 보르도에 있는 동안 UPS 배달원이 집에 들렀으나, 내가 부재중이라 근처 가게에 소포를 맡기고 갔다. 워낙 사람과 대화하기 싫어하지만 선물은 빨리 찾고 싶으니 툴루즈에 도착하면서 바로 그 가게를 들렀다.
신분증을 내밀었더니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면서, 내일 오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그다음 날 비슷한 시간에 갔는데 이번에도 내 이름으로 도착한 소포는 죽어도 없다는 것이었다. 이것 때문에 배달원한테 연락해서 통화하고 UPS 고객센터에 민원 넣고 난리를 쳤다.
결국 그다음 주 월요일(생일은 이미 지난 지 오래)에 남자 친구랑 같이 다시 가게에 들렀다. 혹시라도 이름과 성을 바꾸어서 소포에 표시를 했나 싶어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가게 주인은 나를 보더니 소포를 찾았다면서 내밀었는데...
성이 Receiving으로 되어 있었다. 심지어 소포를 찾아서 고친다고 고쳐둔 것도 내 이름을 성이랍시고 써뒀다. 내가 두 번이나 이미 가게에 가서 신분증을 건네주며 그 난리를 쳤는데도 말이다. 아크테릭스가 캐나다 브랜드이다 보니 주소 라벨에
______________________
- Receiving
to 내 전화번호
Address
OOOOO OOOOO (내 이름)
프랑스 주소
______________________
라고 적혀 있었는데 그걸 보고 Receving을 성으로 써둔 것이다. 이름과 성을 바꿔서 써두는 것도 잘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이런 경우는 도대체 무슨 경우란 말인가.
어쨌든 그렇게 일주일 늦게 생일 선물을 받았고, 다행히 가방은 너무 귀엽고 마음에 든다.
20대 중반 정도부터 내 생일엔 엄마에게 선물을 해주고 있다. 프랑스에 오고 2년 정도 잊고 못 했던 것 같아서 올해는 통화하는 김에 쿠팡에서 장미를 사서 보냈다. 정말 좋은 세상이다. 12시간 안에 해외에서 부모님 댁 앞으로 꽃을 보낼 수도 있으니.
아빠에겐 내가 생일마다 엄마한테 그간 선물을 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는데, 설명하면서도 마음이 좀 심란했다. 부모님이 다시 함께 지내게 된 것은 삼 년 남짓이므로 아빠는 우리의 루틴을 알지 못하니 말이다. 어찌 보면 내가 엄마에게 이런 선물을 하기 시작한 이유가 아빠 때문이다.
내 생일에 엄마한테도 선물을 하기고 결심한 나는 대학원생이었는데 우리는 여전히 가난했고 엄마는 휴게소에서 일을 하느라 며칠에 한 번이나 집에 오곤 했다. 나에겐 엄마가 불행한 결혼 생활의 피해자로 보였고, 누구도 사치품을 챙겨줄 사람이 없는 것 같아서 엄마가 좋아하지만 절대 당신 스스로 사지 않는 향수와 꽃을 내 생일에 선물하는 루틴을 그때부터 시작했다.
세상에 나오는 만큼 나도 고생을 했지만 사실 엄마도 나만큼 고생을 한 날이니까. 여자 대 여자, 인간 대 인간의 존중을 담는 선물이다.
이렇게 지난달 내 생일은 지나갔고, 그렇게 나는 또 한 살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