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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모 May 02. 2024

프리라이더가 되지 않을 용기

승자는 누구인가?

수십 년을 월급쟁이로만 살았다. 연구하면서 내 이름 붙여 나가는 글을 쓰면서 먹고살았다. 연구원들이 쓰는 글이 시장에 팔리는 글이 아니기에, 오로지 자신의 양심과 책임감으로 그리고 부끄럽지 않은 마음으로 보고서 커버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주면 그만이다. 내 글에 누가 뭐랄 사람이 별로 없다.

 

그렇지만 나는 늘 궁금했다. 성인 키만한 사무실 가림막 아래에서 숨은 듯 앉아서 다들 뭘 하고 있는지, 하루 종일 보이지 않던 동료는 왜 퇴근 무렵에 나타나 야근한다고 설쳐 대는지...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완성된 보고서들이 하나둘씩 올라올 때면 그들의 양심과 책임감을 과대평가했음을, 그럼에도 모두 교양과 상식있는 품위 있는 전문가라고 말해줘야 한다는 것을...


화이트 칼라들의 교양과 상식은 능력주의의 덜 익은 열매다. 그래서 시고 떫다. 시/분으로 급여가 오르락내리락하지도 않고, 내 손을 거쳐간 상품과 고객 수로 통장 잔고가 달라지지 않는 그들, 글과 말로는 이것도 저것도 사회 악으로 비판하고 있지만 정작 그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잠재된 고임금의 프리라이더인 그들. 이런 그들의 교양과 상식이 사회적 판단과 평가의 보편적 기준이 되고 있으니, 그들과 다른 절대다수에게는 그저 시고 떫을 수 밖에 없다. 


또한 그들 사이에 섞여 길게 살아왔으니 굳이 그들을 위한 변명을 한마디 하자면, 그들은 그들의 선생, 선배, 상사, 동료에게 이어져온 역사와 문화 속에서 그저 순응하면서 살아왔을 뿐이다. 못된 시어머니 밑의 며느리가 못된 시어머니가 되듯이...


내 생에서 만난 최악의 프리라이더는 지도교수라는 명분으로 학생들이 몇 달에 걸쳐 쓴 학회지에 슬쩍 자기 이름을 얹어놓는 그분들! 그다음은 현격하게 부족한 책임감과 배려심은 기본이고, 눈치보기 백 단의 기술과 놀라운 순발력으로 개인의 이익을 조직의 이익으로 둔갑시킬 수 있는 그분들! 사무실 가림막 아래 숨어있는 프리라이더들은 사실 얘깃거리도 안된다. 

 

그러나 오호통재라~

몇 십 년을 이 바닥에 있으면서 깨달은 것은 조직의 강자들은 양심적이고 정의롭기보다는 순발력과 유연성이 뛰어난 눈치 백 단의 프리라이더(이들을 체리피커라고도 하는데 본고에서는 프리라이더로 통일함)들이라는 것이다. 빠르게 기회를 포착하고 잡는 능력을 가지고 어느 누구와도 적이 되지 않는 사람들, 그냥 날 것으로 표현하면 시간과 장소, 특히 사람의 '쓸모'에 대한 셈이 빠른 속물인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원만해서는 손해보지 않는다. 반면 언젠가 볕 들날이 오겠지 하고 기다리는 자칭 양심적이고 정의롭다는 사람들은, 살신성인하지 못한다면, 애매한 피해의식 속에서 하이라이트의 언저리를 맴돌 뿐이다. 


사실 누가 프리라이더인지는 프리라이더 자신만 빼고 그의 주변 사람들 모두가 다 안다. 그럼에도 프리라이더가 승승장구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을 방관하고 그들을 필요로 하는 조직의 생리 때문이다. 조직이란 세상의 '쓸모'에 대한 셈이 밝은 사람들로 층층이 채워진 곳이다. 조직의 피라미드 꼭대기 가까이에 갈수록 날개를 펴고 비상할 날만을 학수고대하는 고단수의 프리라이더들로 채워진다.


'그래, 나는 나야! 나잇값, 밥값은 하고 살아야지. 조금 더 참자.....' 이렇게 '참자, 참자'하면서 쓰디쓴 쑥과 마늘로 곰처럼 시간을 버텨내고 나니, 피라미드 꼭대기 근처의 몇몇이 바짓가랑이를 잡는다. 조금 더 곁에 있어달라고... 프리라이더들의 생존을 위해 (눈치는 부족하고) '쓸모만 있는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장차 개구리가 될지 나비가 될지 모를 후배들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양심은 속일 수 없다고'

'사람은 머문 자리가 아름다워야 된다고'

'노력은 헛되지 않다고'


아니, 나처럼 살지 말라고 해야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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